명왕성은 11월 하순이면 추수감사절 방학을 일주일간 합니다.
배추가 맛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넉넉한 시간도 있고, 명왕성에서는 귀한 김치 냉장고도 있으니 김장하기 좋은 때이지요.
그런데 올해 11월은 뜬금없이 첫눈이 얼음비와 함께 내려서 추수감사절 방학이 시작하기 직전에 이런 날씨를 맞이하고 말았어요!
이건 뭐...
엘사의 얼음 궁전도 아니고...
길이 미끄러워서 아이들 학교는 휴교하고, 정전이 된 곳도 생기고...
얼음때문에 무거워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끊어버리면 정전이 된답니다.
정전이 되면 난방도 어렵고 인터넷도 안되고 전기 렌지 쓰는 집은 밥도 못해 먹어요.
그나마 저희집은 전기가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죠.
얼음 눈 비가 골고루 종합적으로 내린 다음 날은 금요일.
남편은 수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명왕성을 탈출해서 워싱턴 디씨 근처의 한국 마트로 김장 재료를 사러 떠났어요.
다행히도 날씨는 다시 풀리고 개어서 괜찮았지만 한국 마트로 가는 고속도로는 추수감사절 방학을 맞이한 사람들의 귀성 차량에다 물류 수송 트럭으로 붐비고, 그러다보니 곳곳에 사고도 나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렇게 쇼핑 리스트만 만들어 주고 집에서 아이들과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배추 김치를 주종목으로 정하고, 곁다리로 알타리무 김치를 조금 담아볼까 계획했어요.
김장 김치가 있으면 날도 추우니 뜨끈한 설렁탕을 끓여 국밥 한그릇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뼈도 좀 사오라고 하고...
아이들 좋아하는 일본 카레와 과자, 다 떨어져가는 양념 종류, 등등...
사야할 물건을 목록으로 만들면 남편 전화기에도 자동으로 동기화가 되어서 실시간으로 전달이 됩니다 :-)
왕복 여덟 시간 거리, 그러나 사고로 길이 막혀 근 열 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남편이 한밤중에 귀가했습니다.
배추 세 박스와 함께...
일단은 너무 늦었으니 얼른 잤죠.
다음날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서 배추를 살펴보니 속이 노랗게 잘 익었고 싱싱하네요.
올해 김장도 벌써부터 성공 예감!
아흥~
멸치액젓, 새우젓, 기타등등...
쇼핑을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영감 이라지~~
물건을 검수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갓하고 파하고 생강이랑 무는?
이렇게 생긴 것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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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다른 사람과 쇼핑 카트가 바뀌어서...
알타리 무를 사오랬더니...
무청도 한 단 가져오고...
열무도 세 단 가져오고...
대신에 무와 생강과 파와 갓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갔더라는...
슬픈 이야기...
(참고로, 저희 남편이 젊었을 때 이 냥반이랑 닮았단 소리 많이 들었어염 ㅎㅎㅎ)
계산대에서도 까다로운 마트 규칙 때문에 배추를 한 계산대에서 한 번씩, 세 군데 계산대에서 세 번 싸인하고 사야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있어서 (저 배추가 한 박스에 20달러인데, 50달러 이상 구매 고객에게는 할인해서 10달러에 파는 거래요. 한꺼번에 세 박스를 계산대에 찍게 되면 할인가로 계산이 안되기 때문에 그래야만 했다고 하더군요) 왔다갔다 하면서 싸인하느라 카트 바닥에 실려 있던 물품은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그냥 실어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둥~
열무, 무청, 알타리무...
갑자기 무와 관련한 작물이 넘쳐나게 되었어요.
무청은 배추 겉껍대기와 함께 삶아서 말려놓고...
명왕성 국제시장으로 가서 조금 비싸고 조금 덜 싱싱하지만, 그래도 빠뜨린 재료를 사왔어요.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김장을 담아보아요!
일단 절임 배추를 주문해볼까요?
명왕성에 절임 배추 배달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죠! 흥!!
세 박스 서른 두 포기 배추를 반으로 혹은 사등분으로 쪼개서 대략 70쪽 정도 되는 배추를 절이고, 헹구고, 짜고...
명왕성의 배추는 생명력이 강해서 꼬박 하룻밤을 절여야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절이기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에 절여진 배추를 헹궜어요.
배춧잎 골짜기 사이마다 끼어있는 흙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하고, 물기를 꼭 짜야 하니, 한 쪽 씻는데 2분 30초가 걸리고, 10분 일하면 네 쪽 완성, 한 시간이면 스물 네 쪽, 세 시간을 꼬박 일해서야 겨우 배추 세 박스를 다 씻을 수 있었어요.
ㅠ.ㅠ
눈물 젖은 배추를 씻어보지 않은자
복이 있나니...
절임 배추를 구입할 수 있는 자는 전생에 선한 일을 많이 했음이니라...
명왕성의 파는 요만큼에 5달러 씩이나 해요.
한국 마트에서는 반값도 안했을텐데...
ㅠ.ㅠ
한국 마트를 안갔으면 모를까, 거기까지 가서 버젓이 쇼핑 리스트까지 체크해가며 쇼핑을 해왔는데, 카트가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다시 명왕성 국제 시장에서 김장 재료를 사야 하다뉘...
청갓도 슬퍼서 우는 것 같아 보이지 않나요?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어요?
내년에는 김장 쇼핑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해야겠다고 남편과 의논을 모으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김장을 시작했습니다.
사진도 스무 장을 올렸고, 아직도 김장 이야기는 많이 남았으니 2편에서 다시 만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