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K 가 집에 온다는 토요일 ,
아침 일찍 도토리묵 쑤어 놓고 텃밭에 갔다 .
감자를 캤다 . 콩과 호박과 가지도 걷었다 . 쌈채소 외에도 .
두어 시간 기분 좋게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
연꽃 구경하며 잠시 그늘에서 쉬었다 .
“K 랑 내일 아침 여기 올까 ? 아침에 꽃구경하러 .” 라고 얘기하며 .
도토리묵과 감자샐러드에 치즈 , 호박과 가지볶음, 사과채 , 쌈채소를 양념간장과 함께 .
K 를 위한 토요일 점심
호박꽃 쑥갓꽃 오크립꽃
이건 수박 아니다. 호박이다
갓꽃
#2
버섯들깨탕 남은 게 있었다 . 토요일 저녁은 수제비를 했다 .
들깨탕에 물 좀 더 넣고 감자수제비를 떴다 .
수제비는 삶은 감자를 채반에 한번 받쳐 밀가루와 반반정도로 섞어서
삶은 감자 수분만으로 반죽했다 .
들깨수제비와 딱 김치만을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데 K 가 이리 저리 TV 채널을 돌린다 .
“ 아까 그 드라마 봐 !” 하는 내말에 “ 왜 재밌어 ?” 하고 묻는다 .
“ 그냥 , 딱히 막장 캐릭터가 없어 ” 라고 대답했다 .
‘ 아이가 다섯 ’ 인가 하는 드라마다 . 몇 주 전부터 보기 시작한 것 같다 . 그렇게 저녁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데
H 씨 “ 저 배우 어머니 닮지 않았어요 ? 입매가 ?” 라고 묻는다 . “ 알아 !” 라고 심상히 대답했지만 속으로 놀랐다 .
드라마 보는 이유를 들킨 것 같아 .
결혼한다는 아들과 이런저런 갈등을 빚는 어머니 역의 배우를 보며 대사와 표정에서 그냥 어머니 생각이 났었다 . 그 배우가 젊었을 때는 어머니 닮았단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 . 착각일수도 있고 매일 보던 어머니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이유가 없어서였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그 배우 때문에 보는 드라마다 . H 씨도 나와 같은 것을 보았나 보다 . 하지만 서운한 듯 , 원망인 듯 , 애처로운 듯 젖어있는 , 아들을 바라보던 눈빛은 아마도 나만 보았을 거다 .
“ 이거보다 더 재밌는 드라마 있는데 ” 라며 ‘ 아이가 다섯 ’ 이 끝날 즈음 H 씨가 채널을 돌렸다 .
‘ 디어마이프렌드 ’ 란 드라마가 있다 . ‘ 노년의 배우들이 떼로 등장하는 , 조인성이 조연인 독특한 드라마네 ’ 하며 이따금 봤다 . 드라마에 ‘ 살면서 언제가 제일 기뻤냐 ? 제일 슬펐냐 ?’ 를 묻는 장면이 나왔다 . H 씨 똑같이 네게 묻더니 , ‘ 자신은 언제 제일 슬프고 기뻤을 것 같으냐 ?’ 고 묻는다 . “ 글쎄 …… .” 라고 얼버무렸다 . K 처음 보았을 때 기뻤을 거고 슬픈 건 나와 관련이 있을까봐 차마 묻지 못했다 . 내 무심함이 들어날까 봐 .
#3
“ 그냥 과일이랑 빵 가져가면 안 돼 ?” 라고 김밥을 싸겠다는 H 씨에게 K 가 말한다 .
“ 그래 , 커피랑 식빵 구워갑시다 . 언제 김밥 싸 !” 라고 나도 거들었다 .
일요일 아침 연꽃 보러 가자는 말끝에 H 씨는 ‘ 김밥 싸가자 ’ 하고 나와 K 는 반대 .
그러나 김밥 좋아하는 H 씨 꿋꿋이 김밥을 쌌다 .
그렇게 일요일 한나절 신선놀음했다 .
살짝 흐린 하늘과 간간히 부는 바람은 덤이었다 .
작년 묵은 동치미 무를 단무지 대신 넣고 싼 김밥과 커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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