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1. 도광터에서 된장국 끓이기</STRONG>
여름에 카라코람 K2를 트레킹 때문에 도광터를 비워놨더니, 콩을 심었던 밭은 잡초로 발 디딜 틈 없이 우거졌고, 물론 콩은 멧돼지와 고라니들이 모두 잡수신 뒤였지만, 샘도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다행이 오히려 더 잘 된 것이 있었으니 그게 간장과 된장이었다. 뜨겁고 찐덕한 여름 햇볕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간장과 된장은 말 그대로 그냥 자연 그대로였다. 그동안 사람의 손길 한 번 탄 적 없이 바람과 햇볕과 맑은 공기에 노출되었던 간장과 된장은 그냥 맨 으로 먹어도 그 맛을 형용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매주 도광터에 갈 때마다 우거지나 두부, 또는 미역, 시금치만 가지고 가서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여러 가지 조미료와 직 간접적으로 익숙해진 입맛이 매주 색다른 맛을 경험하는 것이다. 도광터에서 오면 위장이 깨끗한 물로 닦여 있는 듯 하며 더구나 소식하는 습관이 점점 몸에 뱄다. 그리고 입맛도 다시 돌아왔으며 약간 답답하던 위장도 비가 갠 뒤처럼 깨끗하고 시원해졌다. 아무래도 이 된장국 덕분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쉽고 또한 맛이 간결하고 산뜻한 시금치 된장국 끓이는 방법을 이야기할까 한다.
밤에는 은하수와 대화를 하고
폭풍우 속에서는 스스로 고민하누나.
햇빛이 비치면 제 몸에 맛을 숨기며
이슬을 받아 향을 만드누나.
땅 위에 생명이 변하여
다시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되었나니
이 깊은 골 안에서
맛과 향을 깃들인 이야기를
오! 이제야 들었노라.
[ 맑은 물에 시금치 씻기 / 샘이 완성이 되지 않아서 우선 바로 옆에 계곡에서 시금치를 씻는다 ]
손 물에 닿으니
지난 밤 고래니 노래 들리누나.
손님은 잠깐이고
나무의 키도 유한이네.
변하지 않으면
그 고통이 무한보다 깊으리.
[ 집을 지을 자리에 임시로 장독을 놓았다 ]
숲에 안개 깊고
나뭇가지 밑에 낙엽은 소리도 없네.
장 숨소리 독 안에 있는데
낯선 이의 발소리 알아차렸나.
냄새 은은하니
독 여는 마음 처녀 같아라.
[ 된장 / 보이는 것은 서리태 된장이다. 서리태 된장과 백태(멧콩) 된장을 한 층씩 겹겹이 넣었다 ]
맛은 바람으로부터 배우고
향은 햇빛으로부터 거두었으며
밤이 깊어 이슬을 모았나니
밤이 은하수를 몰고 오면
차가운 달빛으로부터 담백함을 얻었네.
[ 독에서 떠 낸 된장 / 검은 빛이 도는 것은 서리태 된장이기 때문이다 ]
밤 새 꿈을 꾸었는데
큰 산 밑에 뛰는 고라니와 멧돼지 꿈이었다.
낙엽 땅에 부딪치는 소리에 깨어
책 펴고 글을 썼다.
적막함이 유일한 친구이니
여기 아니면
그것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 밥과 된장국 준비 / 밥은 압력솥에 앉히고 / 된장국을 끓일 물은 계곡에서 길어와 국물을 내기 위해 멸치를 조금 넣는다 ]
산 깊어 외져도
분주한 마음은 잡을 수 없네.
발소리도 큰데
파도소리 더 커 꼭대기 바라보니
능선에 나무들 휘누나.
[ 국물 우리기 / 펄펄 끓여서 국물을 낸다 ]
낙엽송은 노란 잎을 떨구고
단풍은 붉은 잎새 아직도 달고 있네.
봄 되어야 떨어지려나.
명아주는 뼈처럼 서 있고
바라구 씨앗은 땅에 숨었네.
[ 된장 풀기 / 다음은 된장을 끓는 멸치 국물에 푼다 ]
가래나무 바위에 기대어 있고
잎은 모두 떨어져 불쏘시개로도 쓸 수 있네.
한참 여름에는 그리도 푸르렀는데
서리 내리니
그대도 별 수 없구려.
[ 국물 우려내기 / 된장을 푼 후 충분하게 끓인다 ]
들쥐들은 낙엽 밑에서 바스락거리고
다람쥐들은 찍찍거리네.
샘에 물 솟는 소리 들으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나.
생명은 모두 숨었어도
큰 기운은 숲에 있나니
겨울도 봄처럼 희망이 있어라.
[ 시금치 넣기 / 불을 약간 죽이고 시금치를 넣는다 ]
밤에 읽은 책 속에 구절
책 덮었는데도 살아 눈앞에 서 있네.
잘 새기면 지혜가 되고
헛되이 드러내면 독이 되리라.
[ 된장국 완성 / 취향에 따라 더 푹 끓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렇게 살짝 데치는 정도로 끓이는 게 좋다 ]
도랑 건너에 소나무
낙엽 지니 푸른 몸 드러나네.
겨울 한철에 자태를 뽐내어도
봄 되면 다시 숲에 숨으리니
지고한 모습이라 하여도
인내하는 마음이 어찌 저리 깊을까.
한참을 바라봐도
마음 초조하지 않네.
[ 밥과 된장국 ]
밥에 국 한 그릇
앞에 놓고 보니 마음 뿌듯하여라.
수십 가지 진미를 보아도 기쁘지 않았거늘
수저 들고 맛보고 싶은 마음
마치 아이를 보는 것 같네.
[ 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그릇 ]
나는 진수성찬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소박한 밥상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먹는것은 곧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또한 그것은 스승이다. 과하거나 탐하면 화를 주며, 절제하고 겸손하면 좋은 생각을 들게 하는 육체를 만들어준다. 그러니 어찌 큰 스승이라 할 수 없겠는가. 즐기지 아니하며 집착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으며 기다리지 않고 또한 떠나지도 않는다. 그것이 식사가 아닐까?
국에 밥을 말아먹고
더 먹고 싶으나 자제하나니
한 뼘 시간 지나고
더 먹고 싶었던 생각 후회스럽네.
운명도 그러하니
멈추어도 두려워 말고
고통스러워도
떳떳하게 그 엄중한 의미를 품으리.
[ 시금치 된장국 한 사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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