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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백오이소박이의 최후-오이가 살아있네..

| 조회수 : 11,826 | 추천수 : 1
작성일 : 2013-05-24 13:58:47

밥집에서 우연찮게 백오이소박이를 먹어보고 "이렇게 담그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담가 봤었죠.

이렇게..


잘 절여진 오이에 무,사과,당근,대추....를 액젓으로 하얗게 양념을 하구..

풀을 쑤어 식혀 속을 넣은 절인 오이에 자박하게 부으면 끝..


빨간색깔의 오이소박이야 익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그럼 하얀소박이는..?

역시나 익지 않아도 아삭아삭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색깔도 그대로여서 훨씬 깔끔해 보이고요..

 

어쩜 이렇게  이 날 식탁에 차려진 음식 색깔에 딱 들어 맞는지..?

청포도가 있긴 하지만 얌전한 백오이소박이 없었음 너무 꿀꿀한 색깔의 식탁일뻔..

 

귀찮아서 김치볶음밥으로 한 끼 때우던 날!!

다른 찬도 없지만 시원한 국물 오이소박이랑 곁들이니

이것도 기름진 김치볶음밥이라 개운했어요.

배추김치에 또 오이김치라...?
여기서 오이소박이는 김치가 아닌 오이샐러드처럼 개운한 맛이었지요.



색깔도 참 곱죠?

심플하지만 색깔과 구성은 꽤 괜찮았던...

 


이렇게 예뻤던 오이소박이가 점점점 늙어 갑니다.

여자나 오이나 늙어가니 칙칙해지네요.-.-

산뜻한 녹색에서 누리끼리한 색깔로 변해 갑니다.

이 날이 제 생일날 제가 차린 상차림이었는데요, 산뜻한 오이소박이가 없어도 충분히 화려했지만

밥 먹는데 김치 한 조각이 없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냄새 심하게 나는 김치를 푸짐하게 내 놓을 수 없었는데

마침 상차림에 어울리는 김치가 있어서 딱이었어요.


이렇게 익어 갑니다.
색깔은 이래도 전혀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했었어요. 아직까지..
국물에도 맛이 들었구요.

매콤한 무생채가 있고 기름 넉넉히 두르고 부친 김치전과 삼치구이가 있던 날!!

개운한 오이소박이가 또 한 몫 톡톡히 하더라구요.


마치 오이소박이가 아닌 오이지처럼 보이는데..

냉장고에 오래오래 있어서 오이 속까지 시원하지만 전혀 짜지 않았어요.

국물도 물론이요..


이 날 밥상은 꽤나 토속적이죠?

된장찌개에 고구마밥과 풋고추,코다리무조림..

된장찌개 뚝배기 뒤로 보이는 게 백오이소박이인데 검정색깔 그릇에 국물까지 넉넉히 담았더니

존재가 묻히네요.ㅋ

입맛 없을 때 물에 말은 밥과 오이지 길게 쭉쭉 찢어서 같이 먹으면 이 이상 근사한 찬이 없잖아요.

.

.

.

.

이렇게 여러번 먹고 한동안 냉장고에 이 백오이소박이가 있다는 거 자체를

매번 냉장고 문을 열 때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맨 구석에 하얀색깔의 국물이 있는 게 뭐지?"

마치 남의 집 냉장고를 보는 듯 전혀 기억에 없는 김치통에 살짝 긴장했거든요.

.

.

.

"아...백오이소박이닷..."

백오이소박이를 확인하고 그때 번뜩 드는 생각?
"오이소박이가 썩어서 하얀 곰팡이가 폈겠지? 시간이 얼마야...?"
오,마이,갓!!
.
.
.
.
겁 먹고 슬쩍 뚜껑을 빼꼼히 열어 보니..?


세상에나 세상에나...오이소박이가 이렇게 살아 있더라구요.
오이는 물론이고 곁들임 무도 전혀 무르지 않았고 담글 땐 짭짜름 했는데 익으니 슴슴하니
그냥 국물과 먹기에 딱 좋터라구요.
 
오이의 안쪽을 봐도 이래요. 전혀 무르지 않았더라구요.
오이소박이 귀신이 아닌 오이지 귀신인 저로서는  횡재한 기분이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오이절이에 대한 상식?
"오이는 싱거우면 무른다." 그렇게 알고 있어서 무조건 짜게 절이고 간도 짜게 하거든요.
근데 익으니까 슴슴한데도 전혀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하더라구요.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오이소박이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저녁상을 차리게 됐네요.
 

고등어도 굽고..


꺼뭇꺼뭇해져가는 버섯 넣고 서둘러 버섯밥도 짓고..

버섯밥 한 뚝배기랑 텃밭채소,고등어구이,백오이소박이로 얼떨결에 차린 처녁상..


보기보다,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푸짐하게 잘 먹었네요.


이렇게만 먹었어도 잘 먹었을 밥인데...
아삭아삭 백오이소박이도 있고,고등어구이도 있었으니...
.
.
.
.
백오이소박이의 최후가 이렇게 근사했으니...?


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사실 이 백오이소박이는 제가 시원,깔끔하다고 표현했지만 엄청시리 맛있는 맛은 아니고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었거든요.
근데 그랬던 오이소박이의 최후가 이렇게 근사하니 또 도전해 보고 싶어지네요.
또 다시 담가도 또 최후가 이렇게 근사할까요?
 
"백오이소박이 이렇게 하면 맛있다." 하는 나만의 시크릿 레시피 있음 알려 주세요.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유시아
    '13.5.24 2:27 PM

    밥상이 참 깔끔하네요
    백오이 소박이 처음 색은 너무 산뜻하고
    익으니 먹음직 스럽습니다
    저도 한번 도전해봐겠어요
    그냥 오이지 오이로 담그면 되나요?

  • 손사장
    '13.5.29 10:36 AM

    오이,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채소인 거 같아요.

    조선오이거든요..
    오이소박이도 담가먹고 오이지도 담그는 그 오이랍니다.

  • 2. 허당이
    '13.5.24 3:14 PM

    깔끔 정갈하네요.
    침넘어갑니다...

  • 손사장
    '13.5.29 10:36 AM

    먹을 땐 잘 차려서 먹자 주의라서요...

  • 3. 월요일 아침에
    '13.5.24 6:05 PM

    손사장님 같은 분들 보면 요리도 타고나는 재능이구나 싶은게...
    그냥 맛 보고 감으로 생각으로 척척 무려 김치를!!
    이렇게라도 요리 못하는 저를 정당화해보고 싶어요.
    저는 요리 재능은 제로에 가깝게 태어난 거죠...ㅜㅠ

  • 손사장
    '13.5.29 10:35 AM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건 저도 맹한데 음식에 관해서
    생각이 잘 나더라구요.

    집에 호기심에 사다놓은 먹거리가 엄청 많아요.
    다시 말해 사는 꼬라지가 말이 아닙니다.ㅋ

  • 4. 둥이모친
    '13.5.24 8:56 PM

    정말 혼자서 저런 밥상을 차려 놓고 드시는 이유가 뭡니까?
    주부들 몽땅 보낼 작정이신겨.
    제가 혼자 먹는 점심상을 보시믄..아고^^
    혼자서도 잘 차려 먹고 싶은 날 있긴 한데..일 년에 두어번쯤?
    손사장님 무지 궁금해지네요.ㅎㅎ

  • 손사장
    '13.5.29 10:34 AM

    이유요....?
    저는 갠적으로 지저분한 밥상을 좀 싫어해요.
    사진 찍을려고 차리기도 했지만 평상시도 먹을 땐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깔끔하게 먹긴 해요.

  • 5. 리본
    '13.5.25 2:03 AM

    백오이소박이는 처음 보는데 참 예쁘고 맛있어 보이네요.

    이 부분
    "여자나 오이나 늙어가니 칙칙해지네요"
    ---> 손사장님 너무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 손사장
    '13.5.29 10:33 AM

    ㅋ칙칙해졌어도 오이는 맛있던데....?ㅋㅋㅋ

  • 6.
    '13.5.26 3:47 AM

    반가워라.
    처음과 끝의 오이모습이 낯익었거든요.^^

    저는 책보고 해보았는데
    가족들 아무도 안먹고 저만 먹어요.ㅜㅜ

    근데 정말 맛있어요.
    국물 마지막 한방울까지.
    참, 방법은 손사장님과 비슷해요.

  • 손사장
    '13.5.29 10:32 AM

    ㅋㅋㅋ 방법은 대략 저와 비슷한데 함정은 맛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거죠.ㅋ

    저도 생각지도 않게 보물을 발견한 듯 잘 먹고 있어요.
    다음에 담가도 또 맛있을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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