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처녀귀신들은 주말에 뭘 먹을까?
집에서 해결하자니 꼼지락 거리기 귀찮고..
나가서 외식을 하거나 테이크 아웃을 할려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꼬라지가 말이 아니고..
그러니 결국은 누군가에게 기본 끼니를 들러붙어 해결해 달라고 징그러운 애교를 떨거나, 굶거나 해야 하는데요..
애교? 못 떨고, 떨기 싫은 저 같은 늙은 처녀귀신은 귀찮아도 스스로 대충 끼니 해결을 해야 하는거구..
나름 징그러운 애교라도 되는 귀신처녀는 누군가에게 들러붙어서 해결을 하는거고 그렇답니다.
저도 오늘은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별식?을 먹게 됐는데요,
분명 늙은 처녀귀신도 솔로인데 손에 물 마를 날이 주말임에도 없네요.OTL..
집 근처에 저처럼,저만큼 늙어가는 늙은 처녀 귀신이 한 명 더 있어요.
우린 서로를 "늙은 귀신처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어이, 늙은 귀신 처녀, 아점 같이 먹을래?"
"싫어..."
(같이 먹을래? 의 뜻은 우리집에서 내가 만든 밥을 먹자는 뜻으로 여러차례 시달림? 을 당해서 이젠 거두절미
무조건 "싫다." 라고 합니다.)
왜? 싫어?
"몰라서 물어.."
이렇게 싫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성격(?)좋은 늙은 귀신처녀 때문에 오늘도 수세미 같은 머리를 하고 밥을 합니다.
저도 지난 주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아서 꼼짝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차피 해야하니까 성질 짧게 내고 이것저것 자투리를 모아서 충무김밥을 만들었어요.
(재료를 사러 외출은 더 못하거든요.)
이렇게 말이죠..
어차피 해 주는 거 "잘 먹었다."란 소리를 들을려면 평상시 먹지 않은 거,그런 걸 해줘야 하기에 김밥만큼 손은 가지만 그래도 달라붙는 귀신처녀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말이 길었네요. 별것도 아닌 충무김밥 싸면서 말이죠.
1.무-(반 토막)
무는 보통 돌려 깎기 (무를 세워서 돌려서 연필심 깎는 컷팅법)를 하는데 저는 그냥 도톰하게 나박나박 썰었어요.
나박나박 썰은 무는 소금,설탕에 절였다가 물기를 되도록 꼭 짜서 준비합니다.
나박나박 썰지 말아야 하는 이유? 물기 제거하기 나빠요. 그러니 돌려깎기가 좋을듯 해요.
2.고춧가루양념(갖은 양념)
고춧가루 5,설탕2,간장1.5,액젓0.5 다진마늘1.통깨를 넣고 다데기를 만든 후
미리 절였던 무에 무쳐둡니다.
충무김밥의 무김치는 달콤해야 하는 게 아닌데 단맛이 남아있더라구요.
그래서 액젓을 좀 더 넣었더니 겉절이 맛이 나고 그래서 다시 설탕을 조금 더 넣었더니 초무침 맛의 단맛이 나고..
처음부터 다시 모든 양념을 조금씩 대략 넣었더니 달지는 않은데 약간 매운탕 다데기 맛이 나더군요.
하지만 요상스러운 맛이 나도 걱정하지 않아요.
저는 무조건 이 맛이 정답이라고 빡빡 우기면 되니까요?-.-
저는 원래 이 맛이라고 빡빡 우기는 선수거든요.자랑이라구...-.-""
3.어묵과 오징어
어묵 3장,오징어 몸통만..
어묵과 오징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데쳐서 충분히,충분히 식혀줍니다.
참고(저는 예전에 충무김밥속 어묵 먹고 배탈이 크게 난 적이 있었거든요. 충무김밥 드실 때 어묵맛 꼭 확인하고 드세요.)
충분히 식힌 데친 어묵과 오징어를 넣고 무침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시뻘건 색깔의 무침이 완성 됐어요.
이제 밥만 말고 국수만 삶으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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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날러 오는 문자..헉)
보통 충무김밥의 김쌈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데 저는 그 비릿한 김냄새가 싫어서 송송썰은 청양고추랑,소금양간,들기름,통깨를 넣어 양념해서 김에 말았네요.
김의 짧은 쪽을 1/2등분한 후 양념한 밥을 넣고 적당한 굵기로 말아줍니다.
말아준 김을 다시 1/2등분하면 이렇게 됩니다.
잔치국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허전해서 남은 단호박과 고구마 서너쪽으로 튀김을 했어요.
달달하면서 바삭한 단호박튀김
은근히 맛있지요.
단호박,고구마로 만든 나름 모둠 튀김 한 접시 완성!!
맛있다고 해도 더 없어요.
국수는 어째?
준비 하던 중 전화가 왔어요.
"빨래 돌리는데 아직 안 끝났구 나도 아직 청소가 덜 끝나서 마무리 하고 12시쯤 갈게.."
"그럼 국수는 없지..암 없고 말고..."
국수만 삶으면 되는데 늦게 온다는 전화
"참....예의도 바른 늙은 귀신처녀 같으니라구.."
얻어 먹을려면 제 시간에 와도 구박덩어리인데 간도 크지, 자기 볼일 다 보고 12시에 간다니..
무슨 제삿상 차려 놓고 절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12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혼자 하나 집어 먹고,집어 먹고..
이미 배는 불러 오고..
내 배가 부르니 국수는 패스!!
사진 찍고..
더 집어 먹으면 남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사진 찍기 놀이 삼매경에 빠졌어요.
딴에는 충무김밥은 나무꼬지로 먹어야 맛있다고 꼬지도 준비했건만..
결국 날카로운 꼬지로 김밥의 배도 콕 찔러보고..
무침과 함께 깊숙히 찔러도 보고..
따끔,아프겠지?ㅋ
겁 없는 또 한 명의 늙은 귀신처녀는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와서는 더더더 달라고 해서 먹고는 지금 잡니다.
자면서 이따가 공원에 꽃놀이 가자고 예약까지 하고 잠에 들었어요.
집요하고 계획적인 늙은 처녀귀신!!
얼른 늙은 총각귀신이 뿅하고 나타나 데려갔음 참,좋,겠,어,요.
저는 무슨 복에 차리고/ 먹은 거 치우고/ 귀신 일어나길 기다리며 컴을 하고 있을까요?
덕분에 사진은 원없이 찍어 봤네요.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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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는 4월의 마지막 휴일날!!
늙은 귀신처녀 1명과 늙은 처녀귀신 1명이 마지막 꽃놀이를 같이 가야 한다는 걸
기뻐해야 할지?
"같이 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