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항아리 뚜껑에 이것저것 심어 거실 한 켠에
베란다에 심어 놓은 더덕은 싹이 나고 부추는 벌써 두 번 잘라 먹었다. 이번 주말쯤엔 더덕 싹도 먹을 수 있겠다.
K가 집에 와야 상다운 밥상을 차린다.
요즘 토요일 저녁은 가장 풍성한 식탁이다.
고구마 줄기, 깻잎, 고사리 나물반찬,
반모쯤 남아 있던 두부 들기름에 노릇하게 지져 깍둑썰어 깻잎에 얹고 남은 양념간장에 부추와 살짝 굴렸다.
양념간장소스 두부샐러드라고 우겨보려고 생부추도 얌전히 한 켠에 놨다.
후식은 밥알 붙어 있는 찐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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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날이 많이 흐리구나.
비록 봄볕이 쨍하고 비추는 건 아니지만 기온은 올라가고 꽃샘추위는 물러간 것 같다.
벚꽃은 아침, 저녁이 다르게, 팝콘 터지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늦으면 늦는 대로 부지런해야 피고 질 수 있다’는 세상 이치를 꽃들도 아나보다.
중간고사 때문에 요즘 바쁘다는 얘긴 들었다.
“왜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가르치고 무조건 외우라 해놓고 대학에선 알아서 공부하라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더 웃긴 건 스펙도 쌓아야 하고 학점은 잘 나와야 한데, 그것도 알아서…….
차라리 중고등처럼 했으면 좋겠어.” 라며 입을 삐죽이던 2주전 네 모습이 맴돈다.
어떤 이들은 불안한 미래가 너희들을 스펙과 학점 경쟁으로 몰고 있다고 하더구나.
빛나야 할 청춘을 학점과 취업경쟁으로 사그라지게 한다고 하더구나.
K야, 우선 미안하구나.
네게 지금 겪는 것 말고 다른 삶, 다른 길을 미리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너와 더 얘기해보고 너의 고민이 더 있어야겠지만 지금 네게 필요한 건,
시대와 불화도 겁내지 않는 ‘용기’ 같은 게 아닐까 한다.
조금 낯선 생각만큼 낯선 삶과 태도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시대와 불화로 보일지라도.
언젠가 행복은 태도의 문제라고 했던 말 기억하니?
누구나 행복을 구한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고 인생의 목표가 행복, 그 자체일까?
그럼 행복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겠니?
행복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여기’ 현재 비참과 고통을 저축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행복을 쓰지 않고 저축했다고 현재 꺼내 쓸 수 있는 돈 같은 것도 아니다.
행복은 늘 현재, 네가 있는 곳의 문제다. 현재라는 시간, 삶의 전이와 변화에 임하는 태도 문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현재에 집중하기’, ‘오늘 행복하기’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있겠니?
만약 지금 네가 딛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내려놓아도 좋다.
지금 네가 어떤 태도로 삶을 꾸릴지 고민하렴.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잊지 말고.
미래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불안할 수 있으나 오늘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보낸다면 내일은 그렇게 되고 만다.
K야, 진리와 자유를 향해 저항하는 삶은 아름다운 거란다.
오늘도 행복하렴.
봄이다.
꽃구경 했다.
몸도 마음도 저렇게 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