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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두번째 화살

| 조회수 : 10,870 | 추천수 : 9
작성일 : 2013-02-14 14:38:54

밤늦은 귀가 버스서 잠이 들었다.

집 앞은 진작 지나쳐 버스 종점서 부스스 깨어 휴대폰을 보니,

시간은 12시가 넘었고 H씨로부터 전화가 여러 통 와 있다. ‘아직 안자나?’ 하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어디예요. K가 아직 안 왔어. 신환회 준비한다고 학교 갔다가 11시쯤 출발했다고 전화 왔었는데,

전화기는 꺼져있고…….” 근심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알았어요. 졸아서 버스종점인데, 빨리 갈게” 짧게 대답하고 택시 올라타자마자 K에게 전화를 건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멘트가 나오면 끊고 다시 걸기를 반복하며

‘학교를 가봐야 하나, 학교친구들 연락처는 있던가? 오늘 누구와 있었던 거지…….’ 걱정은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생각 따로 손 따로를 반복하며 전화기를 누르던 중, 어느 순간 신호가 간다.

“여보세요”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맑다. 순간 안도하며 “왜 전화기는 꺼 놔! 어디야?”라고 묻자.

“집 앞, 버스에서 막 내렸어, 배터리가 없어서……. 꺼 놨다 켜면 1%씩 생겨서” 라고

부모 걱정은 오간데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알았어, 얼른 들어가, 엄마 걱정 많이 했어”라며 끊었다.

 

집에 도착하니, H씨는 방에 있는 듯하고 K가 혼자 제 방을 치우고 있다.

안 봤지만 짐작 가는 풍경이다. H씨 한 걱정하고 들어갔고 뾰로통해진 K 조용히 제 방 정리중인 광경.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늦으면 늦는다고 문자라도 하던가? 술 먹은 것도 아니고.

배터리 없어서 전화 꺼놓는다고 말했어야지.” 라고 한마디 하자,

“알았어, 미안해!” “근데 나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한다고” 팩하니 K가 성질을 낸다.

 

순간 욱하고 올라왔으나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왜 네가 성질인데, 11시 출발했다는데 지금까지 안 오고 전화는 꺼져있으면 걱정되잖아.

엄마 걱정했을 건 생각 안 해. 배터리 없어서 전화 꺼 놓는다고 문자 한번 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거 아니잖아.

짜증부릴 일도 아니고, 성질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해 봐” 라고 말하자,

 

“알아, 출발한다고 해 놓고 친구들하고 얘기하다 2~30분 늦었어. 전화기 꺼놓는 건 문자할 생각 못했어.

잘못했어! 근데 엄마도 막 뭐라 하고 아빠도 얘기하니까……. 내가 알아서 할 게 걱정 마”라고 대답하는데,

성질은 죽었으나 입은 여전히 닷 발 나와 있다.

 

“씻고 일찍 자, 내일 엄마한테 얘기 잘하고, 짜증내지 말고…….”

 

그렇게 소동은 지나갔으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쉬 잠들지 못한 밤이었다.

K말대로 스무 살이 넘었고 제 몸 뿐 아니라 제 생활 전체를 지키고 만들어갈 나이가 되었고

조금 걱정되더라도 지켜봐줘야 하는데, 혹 세상이 험하다는 핑계로 K가 독립하는 걸 가로 막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택시타고 집에 오며 들었던 내 걱정도 결국 아이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만들어진 괜한 걱정은 아니었는지…….

묻게 되는 밤이었다.


 

이런 저런 걱정을 떨쳐버리고 벽사辟邪의 마음을 담은 팥죽 사진을 올린다.

나는 국수를 좋아해서인지, 새알 들어간 팥죽보다 팥 칼국수를 즐기는 편이다.

 

동치미와 김치만으로도 훌륭한 식탁이나

아마도 K를 위해 연근튀김도 했던 듯하다.




 

딸 둔 부모들은 괜한 걱정이랑 접어두고 모든 딸들은 안전하길……. OTL *^ ^*

-------------------------------------------------------------------------------------------------

 

 

K에게

어젯밤 일을 복기해봤다.

너는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고 조금 늦게 출발했고 이를 알리지 않고

때마침 배터리가 잔량이 떨어진 전화기를 꺼 놓으면서 이런 사정을 얘기 안한 건 잘 못이지만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큰 잘못도 아니고 너무 걱정이 많은 엄마 아빠 때문에 짜증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널 얼마나 자식이 아닌 성인으로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직은 확실히 준비가 덜된 것 같아.

조금은 섭섭하지만 널 믿고 널 독립시키는 연습을 일부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화살’이라는 말이 있어, 불교에서 쓰는 말인데,

어떤 일, 사건, 말들이 있고 난 후 그에 대한 ‘내’반응을 말하는 거야.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하는 말은, 있었던 사건,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거야.

어제일로 예를 들자면, 네가 엄마한테 걱정을 들은 건 엄마의 걱정인거지 너의 걱정은 아니었던거고 

따라서 넌 엄마의 걱정이 어디서 왔는지 그 걱정을 네가 덜어줄 수 있다면

네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하고 얘기하고 행동하면 그뿐인거지 그런데 

엄마의 걱정을 너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억울해하고 짜증부리는 걸로 나타나면 결과는 정반대겠지. 

네가 엄마로터 걱정을 들은 걸 첫 번째 화살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네 반응이 억울해 하고 짜증부린다면 두 번째 화살을 맞았다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차분히 엄마의 걱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넌 짜증나는 일이 없을 거고 오히려 엄마에게도 힐링이 되지 않을까? 이경운 두번째 화살을 피한거지.

아빠도 마찬가지고 결과적으로는 너에 대한 신뢰가 커가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이해할 수 있겠니?

 

K야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는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더 많단다.

그때마다 짜증부리고 상황에 휘둘리자 말고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렴.

지나치게 너를 앞세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도록 하는 것. 스스로를 굳세게 하는 길이란다.

 

독립을 준비하는 딸! 화이팅!!!

오늘도 행복하렴!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변인주
    '13.2.14 2:54 PM

    잘 익은 김치에 팥칼국수를 눈으로 먹으면서
    나는 어떤가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잔소리하고(아이들에겐 잔소리죠) 난 후에 아차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일이 많은데....
    저에게 두번째 화살은 무엇인가하고 생각해 보면서

    바로 위 김치사진 때문에 침만 꼴까닥~

  • 오후에
    '13.2.14 4:18 PM

    제경우 두번째 화살은 택시 안에서 10여분간의 걱정과 망상이었지 싶습니다.
    두번째 화살, 특히 가족관계에서 서로 조심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 아닌가 합니다.

  • 2. 리본
    '13.2.14 3:55 PM

    오랜만에, K에게 쓰는 편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두번째 화살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 오후에
    '13.2.14 4:19 PM

    두번째 화살 피한다는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알면서도 맞게되니 더 아프기도 하고요

  • 3. SilverFoot
    '13.2.14 5:23 PM

    아직은 어린 이제 초등 2학년 되는 딸 하나를 키우고 있지만 오후에님 말씀이 왜이리 가슴에 와 닿는지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전달하려 하시는 모습이 저희 부부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것 같아 정말 반갑고 좋습니다.
    제 딸도 오후에님 딸처럼 바르고 착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오후에
    '13.2.14 10:22 PM

    초2면 무조건 보살펴줘야 할때죠..
    오늘도 행복하렴이란 말을 그때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그땐 나 살기 바빠서 정작 잘 못해줬다는....
    바램대로 되실겁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4. 고독은 나의 힘
    '13.2.14 6:02 PM

    하하.. 저 대학적에 익히 벌어졌던..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네요...
    그러고 보니 두번째 화살은 제가 쏴 놓고도 결국 아픔과 상처는 그 두번째 화살때문에 더 많이 받았던것 같네요..

  • 오후에
    '13.2.14 10:23 PM

    하하 익숙한 풍경이죠.
    자신이 쏜 두번째화살, 종종 이게 상처를 깊이 남기고 많이 아픈게 하죠

  • 5. 생강차
    '13.2.14 6:46 PM

    팥칼국수 정말 맛깔스럽네요. 저도 나중에 한 번 집에서 만들기 도전!
    동치미도 후루룩 마시고 싶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오후에
    '13.2.14 10:24 PM

    10넘었는데 갑자기 동치미에 국수말아 먹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 6. 달빛
    '13.2.14 8:31 PM

    나이 사십줄인데도 철없는 아줌마..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두번째 화살 이야기는 저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감사해요^^

  • 오후에
    '13.2.14 10:25 PM

    저도 철없는데... ㅋㅋ 동지네요^^

  • 7. 별헤는밤
    '13.2.14 9:38 PM

    딸에게 이런 편지를 건넬 수 있는 엄마의 딸은
    바르게 자랄 수 밖에 없을듯 합니다^^

  • 오후에
    '13.2.14 10:26 PM

    꼭 그렇게 바르진 않답니다.
    외동이라 그런지 짜증도 많고 남들과 달리 부모한테는 아직도....

  • 8. 지혜월
    '13.2.14 10:24 PM

    저도 지금 두번째 세번째 ...화살을 맞고 있는 중이네요
    합리적으로 담담하게 생각하려 해도 잘 안되구요
    그래도 애써 볼게요
    감사합니다. ^^

  • 오후에
    '13.2.15 8:41 AM

    애구~ 얼른 두,세번째 화살을 얼른 놓아버리시길....
    잘 되실겁니다. 힘내세요

  • 9. 아메리카노
    '13.2.14 10:36 PM

    두번째 화살 이야기. . 요즘 다섯살 돤 딸아이와 사사건건 실랑이를 벌이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오후에
    '13.2.15 8:43 AM

    좋은 아침입니다. 커피한잔하시고 오늘도 5살 딸과 행복하시길.... ㅎㅎ

  • 10. 열무김치
    '13.2.15 8:12 AM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광경이네요. 저와 우리 부모님이 예전에 꾸준히(?) 겪은 일이네요 ^^;
    저도 제 딴에는 "제가 알아서 잘 알아하는데, 부모님이 앞서 걱정이시다"라고 침을 튀기며 언성 높이고~
    딸이 나이가 다 차서 성인이 되어도 밖이 험한 것은 부모님께는 늘 변함없는 위협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와 나이들어 생각해 보니 그렇죠, 그 땐 제가 어디 그런 생각이라도 했을까요 ..)
    그 때로 다시 돌아가면 더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생각도 해 봅니다.

    적어 놓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잘 새겨 놓을게요.
    우리 딸이랑도 나중에 겪을 일이 되겠지요 ?

    동치미랑 김치 사진이 마음을 흔드네요.

  • 오후에
    '13.2.15 8:45 AM

    그러게요 그땐 왜 그랬나 몰라요.
    그런 자신은 까맣게 잊고 아이한테 걱정부터 앞세우고 있으니....

  • 11. 딸기마녀
    '13.2.15 9:09 AM

    두번째 화살에 맞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전에..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지금까지의 전 꼭 두번째 화살까지 맞고..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자책하는 타입이라.. -_-;;;;;;
    어리석은 타입이 맞는거겠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연근튀김은 저도 좋아해요~ ㅠㅠ

  • 오후에
    '13.2.15 2:18 PM

    두번째 화살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너무 힘들지 않게 살짝 빗맞았으면 할뿐...
    튀김을 좋아하시는군요. K도 좋아합니다. 저는 그냥 구운걸 좋아한답니다~

  • 12. T
    '13.2.15 10:46 AM - 삭제된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오후에
    '13.2.15 2:18 PM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이 세게 부네요. 감기 조심하시길

  • 13. 지강우맘
    '13.2.15 2:22 PM

    아주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상처 받고

    내 탓이려니 두번째 화살받이 중이었는데

    몇번씩 읽어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갑니다.

    감사해요

  • 오후에
    '13.2.15 2:29 PM

    가까운 사람일수록 힘들죠.
    막상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닐때도 있고
    안정정을 찾으신다니... 기운내시라고 김치말이 국수, 사진으로나마 대접합니다.

  • 14. 간장게장왕자
    '13.4.1 4:49 PM

    우와 정말맛있어보이네요 침이 꼴까닥 넘어가내여 대박입니다 ^^ 언제한번 먹어봐야 할것갇은 마음뿐
    으아 먹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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