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남산의 H호텔 부페식당에 갔었습니다.
제 작은 외숙모의 칠순이셨거든요.
솔직히, 전 저녁 초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머니의 저녁준비를 해놓고 가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나가기 전부터 진이 빠져버리거든요.
어머니 저녁 좀 차리는 걸 가지고 웬 생색? 하고 하실 지 모르지만...
약속시간이 너무 이르면 저녁상을 봐놓은 후 한참 뒤 드셔야하기 때문에 음식의 온도 같은게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거든요.
또 허둥지둥 어머니 저녁 준비하고 나서 옷갈아입고 화장하고 나서려면 괜히 기분이 나빠져요. 나가기 싫어지고.
그래서 저녁 약속을 좋아하는 편은 못되죠.
가능하면 점심으로 하려고 하고...
어제도 약속시간이 오후 6시였어요.
며칠전 행사를 알려주시던 친정어머니는 당신 친정 행사이다보니까, 당연히 저는 못오는 걸로 아시더라구요.
"시어머니 저녁 드려야지 니가 어떻게 오겠니".
저도 진빠져서 가기 싫었는데, kimys가 가자고 하더라구요.
사실 우리 작은 외숙모 칠순에는 제가 꼭 가야해요.
왜냐하면, 오빠랑 저랑 엄마아버지 떨어져 있을 때 저희를 돌봐준 분이 바로 이 작은 외숙모거든요.
군인으로 이리저리 전근다니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엄마와 동생은 같이 가고, 오빠랑 저랑 갈월동 작은 삼촌댁에 있었어요.
우리 작은 외숙모, 큰며느리도 아니면 시어머니 모시고, 시집 안 간 시누이(막내 이모)랑, 시집 간 큰시누이의 두 아이랑 같이 싫은 기색 없이 사셨으니...참 대단하죠?
작은 체구에 얼마나 바지런한지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청소해놓고, 빨래도 하얗게 빨아널고, 음식 솜씨는 또 얼마나 좋으셨는지...
아직도 기억나는 외숙모의 생선조림.
고등어니 아지(전갱어)니 하는 거 맛나게 조려놓으시면 부모 떨어져있던 저희 남매,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봄이면 담아주시던 하루나 김치며, 다시마 튀겨서 설탕 솔솔 뿌린 튀각이며...
점심에 별 반찬이 없으면 마른 오징어를 구워서 방망이로 밀어 쪽쪽 찢은 다음 고추장에 찍어 먹도록 해주셨는데,
물 만 밥과 같이 먹던 그 오징어의 맛..아, 그리워라...
외가집에 있으면서, 외로움같은 거 모르고 살았죠.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만해도 이따금 명절이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갔었는데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많이 멀어졌어요.
친정이란게 그런가봐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멀어지는...
친정어머니,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도 그리 친정을 자주 가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12년전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거의 친정에 안가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그럴진데, 저는 더 하죠. 시어머니 모시고 있는 입장이고..
비가 오는데 친정부모님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가시는 거 싫어서 오후 3시부터 어머니 식사준비를 해놓고, 갈현동으로 갔어요.
친정부모님 모시고 H호텔에 들어섰는데...
아, 로비에서 만난 제부가 절 보자마자, "처형 오늘도 안오면 확 삐질려구 했어요"라고 농담을 거네요.
저희 작은 외삼촌에게는 딸이 둘이 있어요.
모두 결혼해서 딸 둘씩 낳고 잘 사는데, 저희 외할머니 살아계실때 이따금 외가에 가면 그 제부들과 고스톱도 치고 놀았거든요.
그랬는데 얼굴 못본지 몇년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이런 농담 들어도 싸죠.
가족들만 모인 어제 저녁, 룸에 마련된 테이블이 셋이었는데, 하나에는 1대- 엄마네 형제 내외들, 또 하나에는 2대-자식들, 또 하나에는 3대-손자손녀들...오랜만에 만났지만, 바로 며칠전에 만난 사람들인듯 재밌게 얘기하면서 놀았죠.
그런 가운데 우리 김무전할머니 생각도 나고...
특히 외할머니가 제일 사랑하시던 작은 외숙모의 큰딸 M을 보니, 할머니 생각이 더 나더라구요.
"M아, 너 할머니 생각나니?"
강북구의 한 중학교 미술선생님인 M, "그럼 언니...길에서 우리 할머니 비슷한 할머니만 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걸"
저도 가끔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눈물짓는데, M은 더하겠지 싶어요.
할머니가 퍼뜨린 자식들이 어제 그렇게 한 방 가득 모였었는데, 할머니는 그걸 아시려는지...
저녁먹고 헤어지면서 큰 제부 그러네요, 좀 자주 보자고..., 처형 얼굴 잊어버릴 것 같다고...
그래야죠, 다 가족인데...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게 빡빡한지, 얼굴 보기가 힘이 드는지...
그래도 노력해야죠.
p.s.
언니의 리빙노트 매일 읽는 M아, J야.
어제 애썼다...제부들에게도 애썼다고 다시 전해주고...
올 여름 가기전에 날잡아서 포천집에서 만나자.
어제 못간 C오빠도 데리고 갈께....
그리구 회원가입해서 굵은 글씨로 흔적도 좀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