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키가 190㎝를 육박하는 청년으로 자라버린 고딩조카가 유치원도 다니기 전 이야기 입니다.
이 조카녀석, 저희 친정어머니가 키우셨습니다.
저도 녀석, 많이 업어주고, 우유병도 많이 빨렸더랬습니다.
지금도 녀석, 자기 엄마 안보는데서는 저더러 고모라 부르지않고 '끼엄마'라 부릅니다.
끼엄마란, 제가 당시 그 동네에서 유일한 오너드라이버였기 때문에 집근처에서 끼익하는 브레이크 소리가 나고나면 어김없이 제가 들어온다고, 브레이크의 끼익하는 의성어에 엄마를 합성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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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녀석, 주중에는 할머니 댁에서 보내고, 주말이면 자기집에 갔다가 오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주말을 자기 집에서 잘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할머니댁에 와서는...
"할머니, 할머니는요..."하는데 큰 올케가 아이의 입을 막더래요.
그래도 아이가 막무가내로 자기 엄마 손을 뿌리치더니,
"할머니는 개코원숭이 같아요"하더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분명 이렇게 말할 때는 무슨 까닭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려니 하고 들으려고 하는데,
큰 올케가 황급히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하더래요.
원숭이라는 단어가 한때는 금기 단어였잖아요,
재수가 없다나 뭐라나...
어머니는 "○○아, 왜...얘기해봐"
"할머니, 어제 TV에서 봤는데요, 개코원숭이가요, 그렇게요, 자기 자식들을 잘 키운대요. 잘 먹이구요, 잘 돌본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개코원숭이랑 같죠. 우리들 잘 키우시잖아요."
당시 우리 어머니, 제 딸과 그 조카는 데리고 있었고, 그 조카의 형아, 그러니까 큰 조카는 출퇴근(?)하고 있었어요. 등교는 집에서 하고 하교는 할머니댁으로, 할머니댁에 있다 퇴근하는 엄마나 아빠를 따라서 저희집으로 가는..., 그런 저희들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던 모양이에요.
녀석, 마침 할머니에게 선사할 최대의 찬사를 찾아냈고,
엄마랑 할머니댁으로 오면서 "할머니는 개코원숭이다"라고 했나본데 큰올케는 아이가 왜 할머니보고 개코원숭이라고 하는 줄도 모르고 못하게 입을 막은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저희 친정어머니,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딱 지금 제 나이에 병원에서 퇴원하는 제 딸을 받아 안고 단 한번 힘들다 소리 안하시고 키워 내셨어요.
그 후 문제의 '개코원숭이'조카를 핏덩이부터 키우셨고, 자연스럽게 큰조카까지 맡게 되셨고...
어머니는 지금도 그런 말씀하세요. 갱년기의 우울증? 느낄 새가 없었다고, 너무 바빠서 몸이고 맘이고 아플 틈이 없었다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저희 집에서 저희 친정어머니가 가장 영향력이 큰 분입니다.
우리 친정은 친정어머니가 구심점 입니다.
모든 식구들이 제일 좋아하고 믿고 따르고, 특히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그 고딩조카, 공부에 시달리는 가운데 2~3주에 한번은 꼭 주말에 들러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안부를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삼남매 자식중 특히 저...
오늘의 제가 있기 까지 우리 엄마의 희생을 밟고 일어섰습니다.
가끔 엄마를 보면서, 과연 난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사랑은 희생을 동반하는 법, 엄마는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너무나 당연하게 희생을 택했는데,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고개가 저어집니다. 자신 없습니다.
그런 엄마에게서 오늘 오후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바쁘지? 내일 시간 좀 내줄 수 있어?"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수요일날 촬영있어서 내일 준비해야 하는데.."
"어, 그래...놀라지는 말구, 아버지, 기침감기가 좀 오래간다 싶어서 병원에 가셨는데.."
"그런데.."
"응, 폐렴이시라구, 낼 입원하라구 하는데...내가 말이다 병원 왔다갔다하면서 아버지 입원수속 해드리는 게 좀 자신이 없어서..."
"엄마, 제가 가요, 제가 모시구 가요"
"촬영준비는?"
"그건 걱정말구..."
이러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고 나서 맘이 아팠습니다. 제가 아주 나쁜 딸인듯해서요.
어머니는 저 때문에 큰 희생을 하셨는데, 고작 병원 좀 같이 가달라는 말을 이렇게 조심스레 꺼내시다니...
명령을 하셔도 당연하게 복종해야할 말을 그렇게 어렵사리 부탁하시다니...
평소 제가 참 못되게 굴었나봅니다. 바쁘다고 꽤나 유세를 떨었나 봅니다.
내일 엄마 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가면 짜증내지 않고 생글거리며 효도를 잘 해볼랍니다.
아버지 폐렴은 중한 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아버지 간호때문에 우리 엄마가 힘들지나 않으려는지...
p.s
사진은 그 고딩녀석이 올해 준 제 생일선물입니다. 녀석, 고모띠는 안잊어버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