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 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텃밭 마당이 어떻게 망가져버렸는가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쓴 적이 있어서 그 글을 옮겨왔어요.
다시 쓰려니 그때의 울분이 생생하게 살아나질 않아서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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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마당을 가꾸고 유지한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아는 줄 알았다.
아아.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멍청했고, 아둔하며, 한심했다.
김녕집을 오픈하고 나서 첫 장기손님이 다녀갔다.
총 숙박 기간은 21일.
그분의 숙박 기간 동안 날씨는 더웠고, 비가 틈틈이 왔고, 비가 그친 후에는 한층 더 더워졌다.
간단히 말해서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손님이 계신 동안은, 손님이 요청하지 않는 한 일부러 와보거나 하지 않는다.
손님이 내집처럼 느끼고 편안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주인이 얼쩡거리는 걸 삼가고 있다.
첫 장기 손님이 나가고 21일 만에 김녕집 마당에 들어섰던 날,
나의 멘탈은 즉시 부서졌다.
(위 사진은 강아지풀이 아직 귀엽던 6월의 사진.
손님이 나가고 난 직후의 사진은 없다. 너무 놀라서 사진 찍는 거 잊어버림)
첫번째 충격은 강아지풀.
내 기억 속의 강아지풀은 어린아이의 무릎 높이 정도로 자라고, 커봤자 허벅지를 넘지 않고,
보슬보슬 귀여운 꽃이삭이 달리는 귀여운 풀이다.
마당 구석에 강아지풀이 나기 시작했을 때, 강아지풀 정도라면 그냥 두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봄에 서울에 놀러갔을 적에, 요즘 가장 핫하다는 성수동의 모 카페 앞에 강아지풀을 일부러 모아 심어놓은 걸 보았던 것도 한몫했다.
핫한 성수동의 핫한 카페에서는 일부러 심기도 하는데, 모여있으면 예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강아지풀이 왜. 도대체 왜!! 김녕집에서는 3주 만에 내 키를 넘게 자란단 말인가?
방사능의 영향으로 뱀처럼 크게 자란다는 체르노빌의 지렁이도 아니고,
어른 키를 위협하는 강아지풀 더미라니 이 무슨 괴생명체란 말이냐.
그리고 분꽃.
분꽃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려서 많이 본 추억의 꽃 중 하나다.
그러나 잔디밭에 촘촘하게 돋아난 분꽃의 새싹들을 보고 나자, 분꽃이 진 자리에 달린 까맣고 반질반질한 콩알 같은 씨앗들이 마치 작은 폭탄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분꽃은 초여름부터 내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떨구고, 새싹이 나고, 싹이 자라서 다시 꽃을 피우고, 또 씨를 떨구고 ..... 이 사이클을 무한 반복할 태세였다.
분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었다.
내 집 마당을 파괴하려고 위장 잠입해 있는 아주 작은 게릴라 부대, 혹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식물성 바이러스였다.
첫 손님이 나가고 나서 4일을 비워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부족한 데가 있으면 손을 보고 관리를 하려고 비워둔 날짜였다.
첫째날과 둘째날은 남편과 둘이서 하루 종일 잡초를 뽑았다.
1톤 트럭 짐칸에 가득 실리고 넘치는 분량의 잡초가 나왔다.
김녕집의 마당 흙에는 대체 얼만큼의 잡초 씨앗이 잠복해 있는 걸까?
김녕집의 흙마당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제초제를 한번도 치지 않은 땅이다.
바로 이웃한 집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으신 분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 분의 가족들이 제초제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이 동네는 아무도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마당에 시멘트를 발라놨기 때문에 굳이 제초제가 필요하지도 않다.
딱 하나 우리집만 흙마당이고, 오랫동안 주인이 살지 않았다.
몇해를 차곡차곡 씨앗이 떨어져 쌓이고, 씨앗이 떨어져 쌓이고......
만일 다른 은하계의 외계 비행정이 내려와서 지구의 식물 표본을 단시간에 채취하고자 한다면,
김녕집 주차장에 비행정을 주차해놓고 김녕집 마당의 흙을 500ml 쯤 담아갈 것을 추천한다.
500ml의 흙 속에 빽빽하게 저장된, 차례만 오면 즉시 발아할 준비가 되어있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식물 씨앗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또 다른 장기 손님이 온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장기 휴가를 보내러 오는 손님에게, 사람 키를 넘는 풀이 자라는 마당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풀 뽑기를 마친 후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지만, 점심을 포기하고 파쇄석을 사러 다녀왔다.
짐칸을 가득 채운 돌멩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건가? 싶었다.
남들이 마당 관리가 힘들어 파쇄석과 판석을 깔았어요, 라고 말할 때 속으로 비웃었던 것에 대한 벌!
다른 사람들이 마당에 제초제 치고, 돌 깔고, 그걸로도 안 돼서 시멘트를 부어버릴 때에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건데,
그래도 모름지기 마당에는 흙과 꽃이 있어야지, 라며 속으로 잘난 척했던 벌을 지금 이렇게 받고 있는 것!
하지만 그런 말을 소리내어 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벌이 쎄도 너무 쎈 거 아닌가??
텃밭과 화단만 남기고, 눈에 보이는 흙이란 흙에는 죄 파쇄석을 덮었다.
이것은 전쟁이었으므로, 하찮은 동정심을 발휘하여 그래도 한 귀퉁이는....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쟁통에 금낭화가 화를 입었다.
이성을 잃은 남편이 내가 소중히 키우고 있던 두 그루의 금낭화를 강아지풀과 함께 싹 뽑아 버렸다.
외롭게 혼자 남은 팻말. 내년 봄에 새싹이 나올 때를 대비하여 위치 표시용으로 남겨두었다.
야심차게 심은 영국 오스틴 장미. 이름은 '앰브리지 로즈'.
첫 손님이 묵은 21동안 6송이 정도 피었었나 보다.
나는 단 한 송이도 보지 못한 채 장미의 철이 지났다. 아 슬프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향기로운 보라색 방아꽃이 피기 시작해 나비가 많이 찾아온다는 것.
방울토마토가 많이 익고 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따먹으니 시원하고 달았다는 것.
우리집 마당에서 커서 그런가, 탈수기에 돌리는 것처럼 땀을 흘리고 있어서 그런가, 아님 이 방울토마토가 신의 은총을 받은 특별한 토마토인가!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 고생을 하고서도 아직까지도, 마당에 흙이 아닌 돌이 깔린 게 어색하다.
하지만 김녕집은 내가 매일 오며가며 돌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고, 어린 손님도 많이 오기에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남겨둔 화단 자리에 예쁜 꽃을 많이 심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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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지던 때였어요.
서울 살 적에 남편은 아주 빡센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던지라 피로가 누적되면 입술에 포진이 생기곤 했었는데요.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 한 번도 안 생겼던 포진이 이 날 하루 일하고 파바박 터졌어요. ㅎㅎㅎ
결론은 시골집에서는 흙이 보이면 안 됩니다.
잔디를 심든가, 돌을 깔든가, 아무튼 뭐라도 덮어야 해요.
기왓장으로 텃밭 만들어놓고 주변에 풀 나면 조금씩 뽑으면 되겠지.... 하는 말랑한 생각을 했다가는
한여름 땡볕에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