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 바닷가 마을에 시골집을 구하고 나서, 집 고치는 건 오히려 쉬웠습니다.
진짜 문제는 마당이었죠.
마당이 무려 100평 정도 됩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야생의 생태계를 회복해가는 중이던 100평의 마당....
제일 쉬운 방법은 제초제를 쏟아부은 후,
다 말라 죽고 나면 한 번 갈아엎는 겁니다.
문제는, 제초제를 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제초제가 평소 우리 가족의 생각에 반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옆집 때문이었습니다.
옆집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으신 할아버지가 사세요.
이 분 가족들이 제초제에 트라우마가 있으셔서, 제초제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아주 많이 괴로워하십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라서, 약 쳐서 싹 없애버리라는 주변 다른 집들의 압박을 꿋꿋이 버티고 저걸 다 손으로 뽑았네요.
마당을 정리한 후, 앞마당과 뒷마당에 제주도 금잔디를 심었어요.
금잔디는 일반잔디보다 훨씬 촘촘하게 자라고, 깎아줄 필요가 없어요.
밟으면 폭신폭신합니다.
잔디를 심어도 심어도 마당이 남아요.
남의 집 100평은 우스운데, 내가 풀 뽑고, 잔디 심고, 관리해야 하는 100평은 광활한 평원처럼 느껴집니다.
남은 부분에 기왓장을 사다가 텃밭을 만들었어요.
모종은 제주시 오일장에서 삽니다.
오일장은 철따라 모종이며 꽃나무에서 약재용 굼벵이까지, 없는 게 없는 기이한 마법 소굴 같은 곳이예요.
저렇게 모종을 조금씩 사다가 조로록 심을 때만 해도 후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참 즐거웠지요.
벤치에 앉아 잔디마당과 텃밭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던지!
손님이 없을 때는 우리 식구가 머물지만, 김녕집은 주로 한달살기로 임대를 합니다.
손님 가족은 텃밭에 심어진 게 뭔지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이름표가 필요할 것 같아 종류별로 다 꽂아놓고요.
좀 규모있는 소꿉놀이 하는 기분이었달까요?
상추들이 아기자기, 오밀조밀, 행복했던 과거네요.
그러나 로메인상추는 제대로 따먹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자라 나무가 되었고,
깻잎에는 벌레구멍이 잔뜩이고,
무엇보다 방울토마토 한번 따먹으려면 요리조리 팔을 넣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거.
방울토마토가 저렇게 크게, 무성한 나무처럼 자라는 줄 꿈에도 몰랐던 초짜라 너무 촘촘하게 심었던 거죠.
따기는 힘들지만 맛은 끝내줍니다.
아들아이가 방울토마토 맛에 충격받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상추가 나무가 되고, 토마토가 무섭게 커진 게 무어 그리 대수겠어요 .
벌레 먹은 걸 보니 약을 안 친 건강한 채소구나... 하면서 먹으면 되고요.
바질도 더 억세지기 전에 따서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되고요.
물 맑은 김녕에서 물놀이하다가,
뒷마당 평상에 앉아서 바람도 쐬고, 고기도 구워먹고... 그렇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텃밭을 만들어놓고 좋아라 하던 그때만 해도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한달살기 문을 열고 첫 장기손님이 다녀가신 후, 시골집의 흙마당이란 어떤 것인가! 를 몸소 깨닫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할게요.
눈물 좀 닦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