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 고치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틈틈이 글을 올려 집 고치는 과정 소개도 하고,
알바들의 난입으로 혼탁해진 게시판 정화에도 일조하자...는 게 오래된 회원으로서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케케묵은 시골집을 내 손으로 고친다는 게,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자 생고생의 퍼레이드이다 보니,
하나하나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에너지를 남겨주지 않았어요.
얼마 전 드디어 집 고치는 일을 다 마치고, 지금은 뜨거운 제주의 여름을 즐기며 쉬는 중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집을 사고, 뜯고, 고치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웃으며 추억할 시간이 도래한 셈이에요.
몇 년 전, 첫 번째 집을 남편과 둘이 고쳤을 때도 82에 글을 올려 응원과 축하를 잔뜩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자랑도 푸념도 다 받아주시고, 기꺼이 응원해주시는 82에 두 번째 집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녕집은 김녕해변 인근 마을 안에 있는 오래된 돌집입니다.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때는 오래된 집이 다들 그렇듯 좀 심란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아주 못쓸 수준은 아니고, 조금 손보면 곧 들어가 살 수도 있는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공간에 욕심 많은 사람에게, '조금만 손보면'이라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무려 1년하고도 반을 공사를 했어요.
물론 남편과 둘이서,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헷갈리는 수준의 강도로 해서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참 많이 걸렸죠.
제일 어려웠던 일은 '돌집'을 복원하는 거였습니다.
김녕집은 오래된 전통 돌집인데, 그동안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이런저런 수선이 보태져 돌집의 원형을 거의 잃어버리고
흰 칠을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저희 부부는 돌집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탄탄하게 지어진 김녕 집의 원래 모습을 되살려놓고 싶었습니다.
페인트칠이라는 게, 새로 하는 건 쉽지만 있는 칠을 벗겨내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더군요.
저 벽면의 페인트를 다 벗겨내고 나서, 저는 세 달 정도 오른팔 물리치료를 다녀야 했어요.
그렇게 고생했어도, 다시 돌아간다면 또 똑같은 일을 할 거예요.
돌집이 너무나 좋습니다.
김녕집의 외부는 오래된 시골집의 모습을 그대로 남겼지만, 내부는 하나하나 다 뜯어고쳤습니다.
아주 예쁘고 독특하고 편안하게, 최선을 다해 고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쓴 건 주방이에요.
'밥하는 아줌마'이다 보니, 밥하는 공간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해요.
작아도 쓸모있게, 주방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질 만큼 예쁘게 꾸미고 싶었습니다.
남편을 졸라 싱크대를 직접 짜고, 타일을 골라서 붙이고, 개수대를 설치하고...
하나하나 내 손으로 만든 주방이 마음에 들게 만들어져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개수대 앞에는 큰 창을 냈고, 창 앞에는 하귤나무를 심었어요.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좋습니다.
주방이 현관 옆에 붙어 있었어요.
큰 구조는 그대로 두고, 그야말로 인테리어 공사만 했습니다.
밝고 환해진 현관 쪽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김녕집 공사를 하면서 업자의 손을 빌린 일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주방의 구조 때문이었어요.
제주도 시골집은 주방이 아주 좁습니다.
'물 부엌'이라고, 물 쓰는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집 바깥에 대부분 있고요,
그 대신 실내에 있는 주방은 아주 좁은 경우가 많지요.
김녕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방이 좁아 많이 답답했어요.
주방은 그 어디보다도 소중하므로, 주방이 답답하지 않도록 벽체를 잘라냈습니다.
벽을 없앤 건 아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커다란 네모난 구멍을 뚫어서, 주방에 개방감을 주었어요.
구멍을 뚫은 덕분에 식탁도 놓을 수 있게 되었고요,
소파를 놓아 거실처럼 쓰는 방과 하나의 공간처럼 널찍하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소파에 앉으면 네모난 구멍을 통해 주방과 연결되고, 주방 커튼을 열면 돌담과 꽃나무와 잔디밭이 보여요.
창을 통해 보이는 앞마당입니다.
저 잔디밭에 금잔디를 심은 사연이 구구절절한데,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전하겠습니다.
오랜만에 글 올리려니 사진 크기 조정도 해야 하고 힘드네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