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근무하는 분으로부터 실크로드 특별전 초대권을 두 장 받았는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나지 않아서
전시회 폐관을 이틀 앞두고 어제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동안 왜 봄이 오지 않는거야? 기다리기만 했지 찾아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봄이 와 있더라고요.
캘리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3시, 그런데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가서 바이올린 연습하랴, 어제부터 처음
시작하게 된 일본인 여성 애리상과 함께 하는 일본어회화 클래스를 만들어서 두 시간 정도 서로 다른 실력을
지닌 사람들을 조정해가면서 이야기하랴, 남아서 함께 점심 먹으랴 정말 분주한 오전을 보내서였을까요?
버스속에서 깜빡 잠이 들어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서 계속 가고 있더라고요.
내려보니 아현동, 시간은 이미 3시에 육박하고 잠이 덜 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다 와 갈 즈음 켈리님도 오랫만에 차를 몰고 나왔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서 늦어질 것 같다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사진을 찍고 있겠노라고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라고 말한 다음 오랫만에 카메라를 꺼냈는데요
어찌나 낯선 기분이던지요. 아마 베니스 글라스전에 간 다음 카메라를 계속 잠재워 두었으니 그동안의 감각이
다 사라진 기분이라 놀랐습니다. 공백이란 그런 것인가 하고요.

어제 밤 집에 들어와서 사진을 정리해보니 평소보다 버려야 할 사진이 훨씬 많아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아무튼 새로운 시작을 했으니 카메라를 들고 자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수확이었는데
역시 아침이 되니 나가기 보다는 집에 앉아서 음악을 틀게 되니 이것이 문제로군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밤 처음으로 함께 호암아트홀에서 메트 오페라를 감상하게 된 머라여님이 아픈 곳을
찔러왔습니다 .into님 여전히 잘 지내시지요? 그런데 운동은? 하고 묻는 겁니다.
운동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엔돌핀이 나와서 운동 대신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하니 그것이 바로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의 변명이라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
계속 하고 싶으면 꼭 운동하라고요!!
그녀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라 다른 누가 하는 말보다 마음을 움직였지만 왜 일어나기 어려운 것일꼬!!

정자에 신발 벗어두고 혼자서 프린트물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 가까이 가면 방해가 될까봐
이리 저러 각도를 재다가 멀리서 모습만 보이게 찍어보는 시간, 그녀의 평화로운 자테가 마음에 들어서
각도 잡기가 어렵더라도 평화로운 공기를 꼭 잡아보고 싶었던 시간이 기억나네요.

봄이라서 그럴까요? 여기 저기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도착했다는 캘리님의 전화를 받고 전시장 입구로 가던 중 계단을 실크로드 가는 길로 장식해놓은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오래 전 그 곳에 갔던 기억이 솔솔 되살아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본 사막, 거의 모든 것이 처음 있었던 여행, 가기 전 펼쳐본 책들도 이게 한국어일까 싶게 낯선 이름들
투성이라 힘들었지만 세 권 정도 책을 읽다보니 그 이름이 여기도 저기도 나와서 역시 공부는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그런데 같은 책을 세 번씩 읽는 일은 지루하니 다른 저자가 쓴 책들을 골라서 읽는 것이 필요해
하고 절실하게 느꼈기도 했고요.

저 계단을 함께 오른 두 남녀가 그 시간 마치 실크로드에 가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고 언젠가 실제로
그 곳에 가보자 라는 마음을 키웠을까요? 그것은 모르지만 아무튼 제겐 둘이서 올라가고 꼭대기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그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네요.
공통 관심사가 많아서 전시회를 함께 가는 일이 즐거운 켈리님, 그래서 역시 실크로드 전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전시품목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조금 지치기도 하더라고요.
나와서 그녀를 조금 쉬라고 한 다음 저는 전시회 들어가기 전에 못 돌아본 곳이 궁금해서 다시 사진기
들고 둘러보러 다녔습니다.



카메라 들고 있는 두 남녀가 즐거워보여서 역시 저도 그들을 포커스로 해서 찍어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전시를 보러 다시 이 곳을 찾을 때면 봄은 벌써 무르익어 절정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시장에서 한 생각, 인간은 장식에의 욕구를 도대체 언제부터 갖게 된 것일까, 그리고 기술,혹은 기예란
진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시기 그 시기에 당대의 최고봉이 존재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손으로 하는 일에
모든 것이 서툰 저는 그 안에서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질투심?과 묘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열망이라도 있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은 어떤가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 수습하고 전시장을
떠났던 기억이 나는군요.
전시장 밖 샵에서는 NHK가 촬영한 실크로드 동영상이 전집으로 13900원이란 금액으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글씨를 13900원으로 잘 못 보고 한 장 구해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거금이라서 (사실 디브이디
숫자로 보아서는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 들었다 놓았다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포기했지요.
국립박물관의 그녀에게 부탁을 해보면 빌려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혹시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방법도 있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