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입니다 .고등학생이 읽고 있는 책속에서 on aging 실험에 관한 글이 실렸더군요.
74세란 어떤 느낌일까를 알기 위해서 34살 건강한 사람에게 눈에는 고글을 , 그리고 손에는 장갑을 끼게 한 다음
백화점으로 데려가서 실크 스카프를 고르게 하는 실험인데요, 당사자는 실크인지 아크릴인지 장갑낀 손으로
고르기 어렵고, 시야가 좁아져서 백화점 안에서 허둥대면서 쉽게 피로를 느낍니다 ,그리곤 쉬고 싶다고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아버지가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면 하는 대사를 본인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노라고
자신의 실험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글을 어린 아이들이 읽으면 단순히 지문에 불과하겠지만 이상하게 제 마음속에 남아서 자꾸 되돌아보게
되네요.
또 한가지 일은 마트에서 계산을 하던 한 중년남자, 아직 누군가의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는 .
계산대의 여성에게 10830원짜리 물건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10800원을 미리 낸 모양입니다.
30원이 없다고 1000원짜리 한 장을 낸 다음 970원을 거슬러 받고는 계속 그 자리에서 이미 800원을 냈는데
왜 거스름돈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따지고 있고 계산대의 여성은 아버님, 이런 호칭을 계속 부르면서
(사실은 손님이라고 해도 무방하련만 ) 왜 970원을 내주는 것이 맞는지 설명을 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을 갖고 있는 그 남성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같은 소리를 또 하고 또 하는 중
기다리던 손님들이 못 참고 이 아가씨 말이 맞다고 해도 상황이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다른 쪽 계산대여서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인데도 이상하게 그 상황이 오래 오래 남아 있네요.
들소리의 실버반 무료 강습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이
그런데 지혜나무님이 오늘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네요. 순간 그렇다면 나도? 유혹을 느끼다가
마지막 날이니 일단 가서 인사라도 한 다음 계속 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운영하게 되는지 물어보고 가는 것이
어떤가 이야기를 했지요. 오전에 만나서 한 수업이 조금 늦어져서 들소리에 서둘러 가니 벌써 북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자신 몫까지 레슨비를 이중으로 내야 하는 지혜나무님이 선처를 바란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이 모임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수강료를 적게 해야 문턱이 낮아진다고 한 달에 2만원으로 책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지혜나무님이 돌아가고 나니 제가 그 반에서 가장 젊은 축에 드는 그런 수업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배가 높은 분들은 강사가 말하는 내용과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씩 달라서 그것이
일치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그러니 저도 갈등을 겪게 되는군요. 한편 이런 체험은 일부러 하긴 어렵지만
이런 상황에서 즐겁게 이 과정을 함께 하다보면 뭔가 앞 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바꾸어서 생각하면 수유너머의 젊은 동료들이 우리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가 다양한 섞인 그룹에서 활동해보는 것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좋은 훈련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느린 것은 그대로 좋지만 거기서 스톱을 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늙었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왔지만 생물학적 나이도
사실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속이 번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네요.
앞으로 점점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역시 마음을 열어놓고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이는 그런 시간들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들소리에서는 마지막으로 장단을 맞춘 다음
브라질 북이라는 북으로 강사가 장단을 치면서 마음대로 우리가 그 소리에 맞추어 북을 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자유시간이 버겁게 느껴졌지만 나도 모르게 다양한 가락을 만들어가면서 몸도 조금은 움직이게
되는 내 안에 이런 에너지가 있었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작을 끌어내는 시간을 보냈지요.
수업이 다 끝나고 브라질 북을 한 번 쳐보고 싶다고 하니 기꺼이 해보라고 하네요. 북채가 팀타니를 칠 때의
북채와 똑 같아서 소리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들소리에 왜 이런 북이 있는가 물었더니 앞으로 사물놀이에
다양한 방식을 접목시키고 싶어서 가져다 놓았고 강습도 받을 계획이라고 하네요. 그래요?
그렇다면 타악기 소리가 멋진 음반이 있으니 다음 번에 빌려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 여기서도
뭔가 새로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저절로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는 것, 그것도 인생의 일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역시 혼자는 어려우니 그런 식의 미래를 맞고 있는
선배들을 만날 수 있길, 그리고 앞서가고 있는 롤 모델에게서 기운을 얻고 함께 할 수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갈 수 있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