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는 실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즐기느냐고요?
물론 마루에 나가서 듣고 싶은 음악을 조금 크게 틀어놓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the promise of music이란 제목의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습니다.
여러 번 보아서 이제는 그 안의 인물들하고도 친숙한 기분이 들지만 오늘 조금 더 특별한 기분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스페인어를 귀기울이면서 어라, 아는 단어가 나왔네 반가운 마음에 따라 하기도
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

훨씬 후배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일종의 멘토로 여기면서 자주 들락거리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녀와는 수유너머 자본 세미나와 루니에서 만났는데요 그녀가 쓰는 글에서 느끼는 진정성과 유머
글을 통해서 소통을 하고 글쓰기 퍼주기란 코너에서는 자신의 글쓰기를 혼자서 독점하지 않고 타인과
나누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고, 그녀의 인터뷰기사를 통해서는 살아있는 인터뷰가 무엇인지를 배우기도 하지요.

그런 그녀가 재미있게도 서태지의 열혈 팬이라서 서태지가 40살 생일이 되는 날 팬클럽 웹진에 쓴 글이
블로그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러고보니 대중음악에 그렇게 몰두하고 어떤 한 뮤지션을 좋아해보고
그런 적이 있었던가 되돌아보는 시간, 저는 대중음악은 아니어도 요즘 제가 좋아해서 에너지를 얻는 존재인
두다멜에 대한 글을 리플로 길게 달아놓았답니다.그랬더니 그녀가 자신에게는 태지오퐈가 있고 제겐
두다멜 오퐈가 있네요. 나도 두다멜을 들어보아야지 하고 답글을 적어놓아서 막 웃었습니다. 오빠가 아니라
오퐈라니!!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만났습니다 ,현직 볼리비아 대사가 체 게바라의 마지막 일기를
스페인어에서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간했다는 것인데요, 그는 사실 체 게바라가 누군지도 모르다가
볼리비아에서 선물로 받은 배낭에 체 게바라의 일기가 들어있어서 그 때부터 흥미를 갖고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우연한 만남이 그를 번역으로 이끌었고 언젠가는 볼리비아 역사나 문화에 관한 글도 쓰고 싶다고
인터뷰 기사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게도 이번 겨울에 그런 만남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국제학교에 가게 된 여학생이 역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니 전반적인 역사,거기다가 중국사에 조금 더 방점을 주어 개별적으로 수업을 해줄 수 있는가 부탁이 있었는데요
아이보다는 엄마와의 인연으로 시작한 수업이 두 번만 더 하면 끝나게 되는데 20번에 걸친 집중적인 수업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일을 왜 승낙했을까 잠깐 후회가 될 정도로 여학생은 책읽기의 기초가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아이도 그 아이의 엄마도 놀라게 되었지요.
언제가 수업이 끝날 때쯤 그 아이가 말하는 것입니다. 1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말은 제가 이제껏 수업하면서 들은 가장 감동적인 말이었습니다.

그 수업덕분에 저도 새롭게 읽게 된 책들도 많았고 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면 좋은가
그런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었고요. 만약 시간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그 수업을
거절했더라면 물론 그 시간에 다른 일들을 했겠지만 이렇게 생생한 현장경험을 쌓을 수 없었겠지요?
덕분에 블로그에 역사에 관한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어서 그 때 그 때 읽었던 책에서 기억할 만한 것들을
메모하고, 그 시기에 관련되어서 보면 좋은 영화나 소설등도 기록하게 되네요.

오늘 아침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서 어제 못 본 마네와 벨라스케스 전시를 보러 들어왔는데
이왕 보기 시작한 김에 다른 뮤지움의 마네 작품도 찾아보고 싶어서 들른 the museum of fine art에서
그 뮤지움이 자랑하는 하이라이트 100선이 올라와 있으니 자연히 그 쪽 작품에 손이 갑니다.


이런 우연이 참 재미있네요. 사실 the prmise of music을 구한 것도 사실은 소개를 받은 것도 어디서
글을 읽은 것도 아니고 우연히 예술의 전당 음반가게에 들렀다가 발견하고 그 날은 다른 음반을 구한 날이라서
그냥 눈만 맞추고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그 다음에 가서 구입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인연으로 구한
음반으로 제겐 안중에도 없던 한 나라, 그리고 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악적 사건에 관심을 갖고
그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물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와 젊은 지휘자 구스타브 두다멜에 대한 관심으로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고, 지금은 어디선가 그 언어가 나오면 귀를 쫑긋하게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견으로 즐거워하게 되었다니.

마티스를 읽는 시간, 마네가 마티스에게 준 영향을 알게 되고 마네를 찾으러 들어왔다가 스페인 화가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영향받은 프랑스 화가들 그림 보다가 우연히 오늘 아침 새로운 그림들과 만나는 시간

마네를 보려고 들어온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만난 기분이네요.


한없이 이어지는 작품을 한 자리에서 다 볼 수는 없겠지요?
밖에서 베토벤의 에로이카가 저를 유혹하는 지라 오늘은 여기까지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역시 마루에 봄이 오니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시간이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