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적봉위에서의
커피를 타거라~~~^^
겨울산 위에서의 따뜻한 커피 드셔본 분은 다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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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라는 제목의 글이 었습니다.
오늘아침에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프로이드의 < 자아>< 초자아>
저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요즈음 정독에서 읽고있는 책이 프로이드&라캉 입니다.
프로이드의 이드 자아 초자아 부분과 맞아 떨어지는 듯하여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그녀는 어제 저녁에
사진정리중 재미있겠다 싶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그림이 생각났고
'이것과 연관시켜서 게시물을 올린다면 재미있겠는걸'
하고 그녀의 깊은 어디에 존재하고있는
개그본능 누군가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본능 소통의본능 타자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본능
즉 프로이드식으로말하면 < 이드>(충동의 발원자, 역동적인 실체, 리비도자체, 삶의 뿌리)
즉 그녀의 가 현실과 접촉하도록 훈련시켜둔 그녀의 에게 현실과 접촉하도록
충동합니다.
그녀가 태어나서 부터 있던 무제한의 쾌락원리를 추구하려는 < 이드>가
현실과 접촉하면서 의식을 매개로 현실의 요구를 수용함에따라 점차 분화 되었던 는
의 충동을 현실의 어느곳에 를 매개시키면 좋을까?
생각하게됩니다.
그녀의 는 줌인줌아웃에 사진을 올리기로 합니다.
그곳에서는 그녀의 개그본능 소통의본능을 현실화 시킬수 있겠다는 의 판단에 따릅니다.
게시물을 올리고나서 는 살핍니다.
가 원하는것이 현실과 잘 매개되고 있는가?
이때 그녀의 가 감시자로 나섭니다.
란 아이였을때 아버지의 권위와 법을 내면화하면서 발생했던 그녀의 인격의 한축 입니다.
초자아는 점차 사회적 규범에 의해 강화 되도록, 아이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가 되도록
이상적 자아를 설정하고 닮아가도록 합니다.
아이가 사회속에서 이드(충동)을 통제하고 승화시키는법을 배우도록 합니다.
초자아는 금지를 양심의 형태로 자리잡게하므로 충동의 표출방식을 스스로 감시하고 비판하게 만듭니다.
성스러운 를 단순히 커피한잔 마시는 사진과 비교하면 되겠느냐고
자아에게 도덕적이나 종교적이나 양심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라고 자아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자아는 그동안 경헙과 교육에 의해 훈련된 과정을따라서 초자아의 지적을 되짚어보고
성스러움을 가벼운것과 함께 비교함은 현실과 문제가 되지않을까?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않을까?(그들의 성스러운 영역을 갑볍게하는!)
또한 는 이드의 원하는바를 현실에 표출할수있도록 도와주기도하지만
자아의 주된기능은 유기체를 보존하는, 현실원리에 충실한 역할입니다.
현실원리란 현실적 제약과 형편에 맞춰서 이드의 욕구를 지연시키거나 때로는 우회시키면서
합리적 방법으로 충족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의 욕구가 현실적으로, 이런방법으로 소통이 될수있을까?
개그본능이 실현될 수 있을까?
오히려 불편함을 주는것은 아닐까?
내가 쑥스럽거나 미안해지는 내자신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현실원리를 되짚어봅니다.
이런 자아의 행동방식에 따라
그녀는 무아님의 말씀 대로 으로 제목을 바꿔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제 게시물을 올리고나서 성스러운것을 너무나 가벼운것과 매개시킨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고 요즈음읽고 있는 프로이드부분의 이드 자아 초자아 부분이
내게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면서 제목을 달리 달아 보았습니다.
초자아와 현실의소통부분에 영향을받고 살아가는 저의 자아의 결과물로 이해해주시면 될듯싶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의 내면의 가 다시 를 출렁이도록 하는군요.
이드가 초자아를 시켜서 자아에게 지시하도록 하는군요.
개그는 개그일뿐 인데 너는 너무 현실을 살피는 좀스러운 자아가 아닌가?
자아의 자존심을 초자아를 통해 흔들려고하는군요.^^
이럴때 이야기들 하지요 자아확립이 덜되었군! 이라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