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우피치에서 본 그림을 마음에 묻고 베키오 다리를 건너갑니다.

이 곳에서는 꼭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거리 풍경과 사람들,그리고 상점에 진열된 상품 그 자체보다도
오히려 진열하는 방식이나 디자인을 구경하는 것 자체도 눈이 즐겁더라고요.

떠나기 일주일전 이탈리아에 눈이 많이 내려서 기차가 운행 정지된 날도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사실 여행이 가능할까 걱정도 했고 엄청 추울 것이라고 예상해서 평소보다 가방도 묵직하게 싸들고 갔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좋아서 큰 부조가 되었답니다.

조토 종탑에서 본 자물쇠의 비밀이 여기 무더기로 있네요.

자물쇠로 잠근다고 사랑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객이 마음이 동해서 그 순간 자신들의 감정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만들어낸 풍경에 눈길이 갑니다.

다리위에 건물을 지어서 그 곳에서 상업활동을 한다고 해서 소개된 베키오 다리, 마치 고흐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다리위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다양하고 표정도 각각이어서 저절로 한 장 찍어보게 되더군요.

상점안에 베키오 다리 위의 모습을 장식해놓은 것이 눈길을 끌기도 했고요.


다리를 일단 건너와서 피티 궁전으로 가는 길에 만난 동상, 동상자체보다 배경인 하늘이 멋있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 순간이었지요.


피티 궁전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차례 유혹을 받게 되는 광경이 이어지네요.

우피치에서 만난 메두사가 저기 있습니다.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사진에 담고


피렌체를 기념하는 의미로 그림 한 장 구하고 싶은 유혹, 그런데 짐을 만들 수는 없으니 돌아나오는 길에
아직도 거리의 화가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리고 아직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지네요.

드디어 피티 궁전에 도착했는데요, 아무래도 겨울이고 시간도 모자라니 보볼리 정원은 포기하고 미술관만
둘러보기로 정했지요.

며칠 있었다고 이제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글자들이 생기는 것도 기쁜 일이지요.


궁전앞에 세워놓은 현대 조각가의 작품이 눈길을 끌기도 하네요.

우피치에서도 카라바지오와 동시대 화가들에 대한 전시가 있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작품을 몇 개 봐서
즐거웠지만 (예를 들면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를 원화로 보는 즐거움을 누린 것도 잊기 어려운 경험이네요)
정작 카라바지오의 작품은 몇 점 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피티 궁전에서도 소개글을 읽었지만
처음에는 별 기대없이 들어갔습니다.

전혀 정보가 없는 이탈리아 화가의 특별전에 대한 공고를 보고 혹시 시간이 있으면 보고 나와야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다른 전시장에 가려면 이 곳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네요. 별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마치 보물을 만난 기분이 든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카라바지오의 의심하는 도마, 몰타의 기사, 잠자는 큐피드 이렇게 도판으로만
보던 작품을 기습적으로 만나게 된 것인데요, 아아, 이것으로 충분해 오늘은 그렇게 마음이 풀어질 정도로
마음이 흡족한 시간,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매일 매일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있는 격이로군요.
당연히 이 곳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고 집에 와서 찾아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미 받을 것을 알고 받는 선물도 기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란 것을 카라바지오의 그림과 만나는 순간 느끼게 되더군요.
이 작품은 밀라노에서 만났는데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동영상에서 보여주는 선명함이 더 자극적이고]
인상에 깊게 박힌 작품이기도 하네요.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도 다른 미술관에서 본 작품인데 어디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놀랠 일인가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어도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중입니다.이렇게 불분명한 상태로 지나가면 불편할 것 같아서 찾아보니 브레라에서
만난 작품이 맞군요.
우피치에서 찾다가 결국 못 찾은 이 작품이 마침 피티 궁전에 와 있어서 결국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의 희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으니 이런 식으로 소재가 같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한 자리에서
전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전시가 되지 않을까 혼자서 공상을 하게 되네요.
물론 근현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도 정말 많이 보게 되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
그런 느슨한 마음으로 집중이 어렵더라고요.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피티 궁전을 나오니 이미 밖은 어둑 어둑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 자리에 막 자리를 파하려고 하는 아저씨가
있네요.
오른쪽 아래 그림이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하게 해 줄 것 같아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점 남은
것이라고 5 유로 이상은 디스카운트가 어렵다고요.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한 점 사서 들고 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피티 궁전에 빨리 가서 그림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나던 베키오 다리와 느긋한 마음으로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카라바지오를 보고 나서 충만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베키오 다리는 다른 느낌으로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네요.



너무 빨리 어두워지는 거리, 다른 계절에 오면 이 곳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게 되지만 아직은 여건이
되지 않으니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면 된다고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사람이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한다고 장갑을 고르는 동안 진열장의 장갑에 눈길이
갑니다. 좋아하는 초록색에 눈길을 주지만 과연 끼고 다닐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어서 그저 바라만 보았지요.


그러고 보니 야경을 찍어보겠노라고 삼각대를 여행가방에 꾸려서 들고 갔건만 꺼내보지도 못하고 말았군요.
여행 갈 때마다 사진을 원하는 대로 찍기엔 실력이 모자란다고 느끼지만 돌아오면 다시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까맣게 잊고 맙니다. 그래도 망각하는 존재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덜 책망하고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민박집으로 가던 길에 기습적으로 만난 로지아, 아하 여기가 책에서 소개하는 조각 회랑이로구나
가까이 가서 사진 찍고 내일 지나다가 다시 자세히 보아야겠다 마음에 찍어두고 그냥 지나갑니다.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다들 발걸음이 빨라지는 중이라서요



한 친구는 이미 외할머니가 된 상태여서 우리는 예쁜 옷이나 아이용품을 보면 그 친구를 부르게 되더군요.
그런데 시큰둥하게 이런 것 다 한국에 있다고 하네요. 그렇구나, 놀라면서 갑자기 언젠가 할머니가 된
저 자신을 상상하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도 하게 되었지요.


어떤 상점앞에서는 카메라를 꺼내 드니 상점안의 사람이 알아서 포즈를 취해주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요.

민박집 들어가는 어귀의 가게에서 outreach님이 가죽으로 만든 쓰레기통,혹은 잡지나 신문꽂이로
이용할 수 있다는 통을 사는 동안 주인여자분이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는데 앗 나도 그 때 하나 살 걸 하고
아쉬워 하는 물건중의 하나가 되었네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잠깐 자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가려고 했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못해서 아쉽게도
그 날의 오르간 연주를 놓쳤다는 것 ,그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중의 하나로 남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