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무엇이 제일 좋았는가,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는가 이런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없군요. 특히 이번처럼 곳곳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하거나
이미 기대하고 갔으나 기대이상인 작품을 많이 만났을 때는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회화도 회화지만 조각의 매력에 확 빠졌다는 겁니다.

꽃의 성모 성당과 조토의 종탑을 장식했던 것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그리고, 밖에 있던 조각들은 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간을 마련해서 따로 진열해놓았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에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중에서 이 곳에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장례 후 만들어질 공간에 넣으려고 시작한 피에타 한 점이 있다는 것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이 있다는 것,물론 나머지 정보는 잘 모르는 상태로 들어갔지요.


음악을 좋아하는 제겐 이렇게 악기를 들고 서 있는 상이 있으면 저절로 관심이 가서 카메라를 꺼내게 되네요.
반가운 소식 한 가지, 시인이자 음악에 관한 관심이 지대한 김정환이 음악의 세계사란 책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역사를 음악을 중심으로 서술했다고 해서 검색해보니 책값은 꽤 비싸지만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역사를 무엇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가에 의해 색다른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들과 분명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한 점 한 점 보다가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에 일단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는
방을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따로 마련한 공간에 홀로 서 있는 피에타, 그런데 살짝 만져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럴 수는 없어서 한참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죽은 예수를 뒤에서 받치고 있는 니고데모의 얼굴이 바로 미켈란젤로 본인의 얼굴을 넣은 것이라고 하네요.
언젠가 로마의 바티칸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피에타를 보았을 때보다 역시 제겐 밀라노의 론다니니 피에타와
오페라 델 두오모 뮤지움에서 보는 피에타가 더 인상적이더군요. 고르라고 하면 선뜻 론다니니 피에타를
고르겠지만 질료도 다르고 느낌도 다른 두 점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바티칸에서 본 피에타는 아무래도 유리에 갇혀 있어서 현장감이 떨어진 탓일까요? 그래도 그 안에 있는
샵에서 보게 된 사진속의 피에타는 더 강렬한 느낌이었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게 느낌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을 너무 많이 구해서 그 사진집을 손에서 들었다 놓았다 했던 기억을 나중에 여행기에
풀어놓으니 마침 남편이 로마로 출장을 가게 되었노라고, 그러니 그 사진집을 구해 보겠다고 일부러
연락을 주셨던 정각심님,정말로 본인의 것과 제 것 이렇게 두 권을 구해오셔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지요!! 귀한 선물로 지금도 마음속에 꼽고 있는 사진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으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다 볼 수 있게 되었네요.


미술사 책에서 만난 도판들이 이 곳에는 정말 여러 점 있더군요.
그 싯점에서는 이것이 무엇인가 모르고 아마 도나텔로와 당시에 자웅을 겨루었다는 ,루카 델라 로비아의
작품인가 그렇게만 혼자 속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요즘 읽고 있는 피렌체에서 보니 당시 길드중에서
양모 길드의 표식이라고 하네요. 이런 표식이 있었던 것이 바로 성당에서 온 작품들이고 다른 표식은
다른 길드의 것으로 그것은 조토의 종탑에서 온 작품이라고 (사실 그들은 이것을 지금 우리 기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마땅하게 표현하기 어려워서 저는 작품이라고 명명하는 셈입니다. ) 하더라고요.

앗 저기에 오르산 미켈레의 바깥 공간을 장식했다던 선지자들의 모습중 하박국이 보입니다.

도나텔로를 제게 깊게 각인시킨 작품이라서 오랫동안 언젠가 볼 수 있다면 하고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라
반가운 마음에 달려갑니다.

조토의 종탑을 장식했던 한 점 한 점의 조각이 이곳에 진열되어 있더군요. 나중에 그 앞을 지나가면서
이 안에서의 경험으로 어라 저것은 이것은 하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는데요, 이 곳에 진품이 그리고
그 곳엔 모조품을 두고 있다고요. 모조라고는 해도 그 자리에서 보면 눈길을 끄는 작업들이지요.


조각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한가지씩 떠올려 보면서 바라보는 시간의 밀도가
다시 생각나네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여행은 준비하는 시간의 즐거움, 현장에서의 강한 기운, 그리고 돌아와서 새록 새록
되새김질하는 시간, 그 모두를 포함해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촉발한 새로운 문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가보게 되는 자극이 매력이더군요.

실물을 보고 나서 다시 펼쳐보는 미술사 책, 그 경우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다시 읽어보는 시간의 매력은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미술관이나 뮤지움을 찾아다닌 세월이 10년이 넘다보니 이제는 직접 본 것에 표를 하게 되어서
가끔은 이렇게 많이 보았나, 아니면 이렇게 볼 것이 많이 남아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경우가 있고 다음에는 무엇을 주로 보고 싶은가 계획을 세우고 됩니다. 물론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가끔은 돌아 돌아 가게 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으로 준비하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는 그런
시간들이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되고 있지요.


그런데 도대체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는 어디 세워져 있는 것일까,드디어 못 참고 물어보았습니다.

아, 이 곳에서는 이것으로 이제 충분하다는 기분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