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의 일입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던 보람이에게 택배를 보내려고 준비해서 우체국에 가던 중 목요일 멤버인 신 숙씨와 그녀의
남편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지요. 반갑게 인사하고 그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 날 택배 보내려고 가서 보니
제일 중요한 주소를 놓고 간 겁니다. 아니 이럴 수가,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 갑자기 기분도 우울해져서
이왕 나온 김에 점심을 밖에서 먹고 들어가야지 싶어서 오랫만에 들른 곳이 동네 짜장면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가 그 자리에서 점심을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이야기하던 중이더라고요.
어정쩡한 상황, 따로 앉기도 그렇고 한 자리에서 초면인 사람이 있는 곳에서 편하게 밥을 먹기도 그렇고
어떻게 할까 망서리던 중 함께 밥을 먹자는 제안에 일단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치 남매같은 느낌을 주는 두 사람과 의외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따로 식사를 해보긴 그 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녀가 목요일 영어수업 말고 조금 더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비치더군요. 그래요?
실제로는 늘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아쉬움을 느끼고 조금 더 기회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더군요. 머릿 속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마침 그 때 수유너머 R의 세미나때문에
요리를 배울 필요가 있어서 그렇다면 요리와 영어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아이디어가 태어났습니다.

요리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이 주일에 한 번은 뭔가 손에 딱 실력이 붙기 어려운 느낌이라서
마침 수요일 수업이 중간에 2달 정도 휴강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매 주 요리교실을 겸한
영어수업을 하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것이 오바마 연설문 암기인데요, 본말이 전도될 정도로 즐기게 된
시간이 되고 말았고 결국 그 이전의 수업을 접고 그 멤버들과 다양한 일들을 함께 누리게 되었지요.

그들과 함께 조이 럭 클럽까지 읽게 되니 영어책 읽는 부담이 크다고, 화요일 수업은 접고 요리는 수요일에
하는 것이 어떤가 하고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 그렇다면 이 좋은 기회에 신 숙씨에게 바이올린 렛슨을 부탁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수학적 엄격함으로 저를 주늑들게 하면서도 한 번 손을 대면 무엇인가 확실한 결과를
남겨주는 그녀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2,4 주 화요일에 만나서 합주가 가능하게 저음을 연주해주고,
(이렇게 말하니 뭔가 근사한 연주처럼 느껴지는군요. 그것이 아니란 것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래도 누군가와 소리를 맞추어 보는 경험은 리코더 배울 때 확실히 경험했기 때문에) 자세나
활 쓰는 방식 .박자등에 문제가 있으면 과감하게 지적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드디어 오늘이 첫 시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 사진을 찍으면서 거리를 걷고 있으니
짜장면 집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일으킨 파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아하 철학에서 말하는 우연한
마주침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다만 그런 마주침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반응이 촉발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생각이 두서없이 머리속에 맴돌고 좋은 기운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연습장소는 성저마을에서 랭귀지 랩 교실을 열고 있는 김미라씨의 랩 교실인데요, 우리들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겉보기엔 아주 단정한 사람이지만 마음속에 불덩어리가
있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 시작한다고 말하고 나서 바로 그 다음 주에
선생님 저도 첼로 시작하기로 했어요 라는 말을 해서 더욱 더 저를 놀라게 했던 그녀
그녀의 책장속의 책을 구경하다가 한 장 찍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방에서 첼로를 신 숙씨와 저는 또 다른 방에서 호만 1권을 갖고 처음부터 소리를 맞추기 시작했는데요
4개월 동안 배우면서 어색하게 느꼈던 점, 부족하다고 느낀 점, 그런 것들에 대해서 1시간 조금 넘는
연습 시간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물론 4개월이란 이전의 연습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25번까지 연습하다가 이젠 그만 머리가 쥐가 날 것 같다고 하니 ,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하곤 첼로 연습하는 곳으로 가서 두 사람은 악보가 없이도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소리로 맞추기
시작하네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소리만으로도 익숙한 곡을 서로 어울려 연습할 날이 올 것인가
의혹반 기대반이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길어진 연습 시간, 그래도 첫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는 한없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가고 싶은 여행, 삶의 방식에 대한 것,
오전 내내 좋은 기운으로 충만했던 시간, 집에 와서 다른 일을 조금 하다가 다시 바이올린을 꺼내서
연습하는 이변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습니다.
연습하면서 갑자기 목요일엔 수업 끝나고 본가 짜장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갈까? 엉뚱한 생각도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