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예솔이란 노래를 부르던 꼬마 가수가 어른이 되어
번안 뮤지컬의 음악감독겸 주연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뮤지컬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 밴드고 구성해서 활동을 했다는 다양한 이력의 그녀가 아직은 국악에서
할 일이 더 있다고 생각해서 뮤지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구나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한국식으로 번안했다는 말에 그렇다면 이 공연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날 이미 공연 예매가 되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혹시 해서 캘리님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사천가로 표를 바꾸어 예약을 했더군요. 그런 기민함이 ,그런 배려 덕택에 몇 년간 금요일 밤의
행복을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양재역에서 내리면 예술의 전당 버스 타러 가는 곳에 담벼락을 수놓은 능소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서 찍어보았지만 역시 처음 카메라를 잡을 때의 기분이 아니다 싶더니
집에 와서 보니 건질만한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아직 멀었구나를 실감해서 조금 기운이 빠지더군요.
버스대신 걸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자 싶어서 지나다가 만난 담입니다.

사천가를 보기 전에 영국 근대 회화전을 보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이 사진전도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요. 처음에는

문제는 의도대로 되지 않는 사연이 자꾸 생기게 마련인데요, 사실은 그 날 그 시간에 다른 의도가 생길
만한 것이란 역시 책밖엔 없지요.
낮 시간 커피숍에서 사람들과 헤어진 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지난 금요일 그 곳에서 만나서
뒤적이다가 그냥 두고 온 the 100이란 책이 역시 궁금해서 (제국을 쓴 네그리와 하트의 그 하트가 자신에게
있어서 세계사를 바꾼 100명의 인물을 중요도 순으로 순위를 매겨서 설명한 책인데요 1위가 무하마드 2위가
뉴턴이었던 책이었습니다 .3위는 예수,4위는 붓다 이런 식으로요. 문제는 중,고등학생이 읽기엔 책이
폼나지 않아서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과연 읽으려고 할 것인가 망서리다가 두고 온 책인데 어른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저 자신도 그가 어떤 식으로 인물을 평가했는가가 궁금하기도 해서요 )
그 책을 구한 다음 옆에서 손짓하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와 이택광의 인문 좌파를 위한 가이드를 샀습니다.
무엇을 택배로 보내고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역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가방에 넣었는데

역시 조금 맛 만 보려던 것이 그만 그 속에 빠져버려서 두 전시회는 물건너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뭐 그래도 그 시간이 좋았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지만 역시 정서는 더 강한 정서에 꼼짝 못하는 것일까
스피노자의 글귀가 생각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음악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분수쇼를 시작하네요. 아이들이 즐거워라 반응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보니 역시 아이들이구나 싶어서 사진기를 들고 다가갔지요.

음악회 시작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와서 즐기는 사람들,혼자서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누워서 잠들기도 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속에서 소음이라고 느끼지 않고
혼자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언 시간이 떠오르네요. 아련하게..

열중하던 순간 울리는 휴대폰 , 캘리님이 도착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왔는데도 아직 책장을 덮기가 아쉽더라고요. 그 때 다시 울리는 전화소리, 누군가 싶어서
보니 보람이입니다. 엄마, 나 붙었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금요일 2차 면접보러 간 월트 디즈니 한국지사의
인턴 면접이 붙었다는 소리였습니다.아니 그 날 면접에 바로 그 날 결과를 알 수 있다니 참 빠르다 싶었지요.
축하한다고 인사를 한 다음 사천가를 보러 자유 소극장으로 갔는데 그 곳은 제겐 처음 가 보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서 한 장 찍었는데 그것도 안된다고 사진 촬영불가라고 하네요.
아직도 왜 곤란한지 저는 납득이 되지 않지만요.
사천가, 보는 동안 얼마나 웃었던지요. 이 자람의 연기,목소리는 판소리 명창들처럼 완전히 틔였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목소리보다 그녀의 변신하는 연기, 얼굴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몸속을 휘돌아다니는 가락이 일품인 공연이었습니다.
다 끝나고 여러 번의 커튼 콜에 응답한 다음 이 자람은 부탁을 하더군요. 돌아가셔서 판소리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전해달라고요.
이번 일요일까지의 공연이 남았는데요, 주말 무엇을 할까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갈까? 마음이 동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어디서 본 듯환 사람이 들어옵니다. 한명숙씨다, 여기 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초대손님인지, 표를 구해서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장소에서 만나니 공연히 반갑고 공연장에 오는 그녀라니
역시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에 와서 보람이에게 이야기를 하니 엄마 싸인 받았어? 아니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싸인이라니
그래서 마지막까지 웃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