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다니느라 일찍 일어나야 하고 아직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몸이 비실비실한 느낌이더군요.
아침을 준비하던 중에 아이가 소리를 내서 부르네요. 엄마, 나 인턴 면접 보라고 연락이 왔어.
그래서 아침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두 곳에 원서를 냈는데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이미 일요일 밤에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했노라고 그래서 앞으로 남은 학기는 어떻게
마음먹은 회계사 시험공부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장 인생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일로 다시 변수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 걱정 하길래 웃으면서 말을 했지요. 지금까지 네 인생의 계획이 수도 없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러니 이 일이 성사되어도 좋고 지금처럼 계절학기 하고 나서 원하던 대로 해도 좋고
아니면 또 다른 일이 생기면 그것에 맞추어 살아도 되는 것이라고요.

밥 차리는 동안 벌써 옷장을 뒤적여서 면접에 입고 갈 옷을 고른 모양입니다 .
일학년때 동료와 선배들 앞에서 (학회) 발표하느라 장만한 옷을 평소에는 입을 일이 없다고 쳐박아두었다가
이번 기회에 입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꺼내놓고는 드라이 클리닝을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카메라 챙겨서 세탁소에 가다가 아파트 안의 정원에 핀 낯선 꽃을 발견했지요.
옷과 가방을 걸쳐 두고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이 무슨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어서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람이가 가장 기뻐한 일중의 하나가 fifteen이 생긴 것인데요 파리에서도 줄곧 이용했다고
하면서 벌써 회원에 가입해서 자주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참여가 높은지
가끔 밤에 들어올 때 보면 자전거가 거의 비어 있을 때도 있고 오늘 아침에도 자리가 많이 비어있어서
눈길을 끄네요.

원래는 가방에 책 두 권을 담고 나갔습니다. 벤취에 자리잡고 앉아서 글을 읽다가 눈이 피로하면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사진도 찍고 싶어서요. 그런데 신호등을 건너려다 늘 성당앞을 지나면서
이 곳은 왜 이렇게 사진찍기가 어려운가, 프레임을 어떻게 잡을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늘 바쁘게 오가느라 그 앞에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마침 다섯 번째 화요일이라서 오전 약속이 없는 날, 좀 더 공을 들여서 그 공간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진만의 일이 아니겠지요? 마음이 가는 곳에 정성도 함께 하는 것, 그러다보면 새로운 각도에서 무엇인가
시작되는 것이 즐겁네요.

성당위의 플래카드에 젊은 신부님의 수품소식이 걸려있습니다. 그 앞에는 그의 사진도 들어있고요.
서품은 뭐고 수품은 무엇일꼬 무슨 차이가 있나 궁금한 것 하나, 저런 젊음이 신부가 되기까지 가족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세계의 신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성당앞을 매일 드나들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도 시선이 간 날, 그래서 사람은 자고로 너무 바쁜 것이
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사실은 꽃도 좋지만 이런 시설을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들 삶의 기본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련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것만 찾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여기까지 찍고 나니 좀 더 멀리 동네 한 바퀴 돌 일이 없겠다 싶어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불쑥 내미는 옷을 들고 또 세탁소에 갈 일이 있을지 이번 한 번으로 그칠지 모르지만 앞날에 대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서 가끔은 힘들어하는 보람이에게 이번 면접이 어떤 길을 열어주게 될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 면접에 붙으면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일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에 일말의 공포를 느끼기도 하는
묘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