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중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하이 톤으로 엄마, 나 보람인데 티브이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소개하던데 음악회 가고 싶어. 엄마 혹시
금요일에 함께 갈 수 있어?
베를린 필하모니 표는 구하기 힘들고 비싸서 어려울 걸, 그랬더니 아이가 말을 하더군요.
그냥 베를린 필이 아니고 12명의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것인데 현악기라서 들어보고 싶다고요.
그래? 그 연주라면 엄마는 이미 표 예약을 해놓은 상태인데 혹시 한 자리 더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한다음 켈리님에게 sos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시 합창석의 표는 이미 매진이고 9만원짜리부터
있다고 하네요. 그것은 대학생에게 무리이다 싶어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마음은 고맙지만 (자청해서
음악회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이 처음이라서 ) 다음 기회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일년사이에 보람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달라진 아이가 신기하네요.
집에 오니 아직도 다 정리하지 못한 가방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보람이가 집에 와서 제가 처음으로 권한 책인데요, 책을 어느 정도 읽었니? 물어보니
마음이 아파서 빨리 읽기 어렵다고 하네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 평생 미워했던 어머니와 치매를 통해
화해하는 딸의 이야기인데요, 보람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의 소감을 말합니다.
엄마, 엄마는 절대로 치매에는 걸리지 말아야 하는데, 왜? 그러면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공부를 못하게 되잖아.
이어지는 대화는 상상에 맡기고...

방정리를 하는데 도와준다 해도 손대기가 어려워서 저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동안 여행지에서 구한 팜플렛이나 마음에 들어서 산 그림엽서등이 있어서 제게 소개하기도 하고
엄마가 모를 것 같은 텍스타일에 관련된 작가등을 일부러 알려주면서 꼭 가보라고 말하기도 해서 신기하네요.
벌써 엄마에게 소개할 미술관도 작가도 생겼구나 이 아이에겐

까미유 피사로가 이름이 까미유라서 여자인줄 알았더니 남자 화가더라, 그런데 그림 한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온 엽서인데 엄마 볼래? 그러면서 내민 엽서에는 몽마르뜨르의 밤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 들어 있네요.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에서 만난 그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소규모 미술관에서 만난 클림트의 그림 한 점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에 울림이 있던 그림들을 엽서로 수집해온 것을 보면서 이제는 보람이와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마음 가득 기분좋은 향이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과 후앙 미로 미술관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는 아이가 불쑥 말을 하네요.엄마, 내년
겨울에 나랑 독일 여행하면 어때? 비행기표는 내가 벌어서 구할 테니까 나머지만 엄마가 부담하고
함께 가고 싶다고요. 즉석에서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새겨두게 되네요. 미술관 가는 일에 즐거움을
알게 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제 제게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아서요.

깨질까 무서워서 단단히 포장해서 들고 온 후앙 미로 그림이 새겨진 컵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일요일 아침, 저절로 후앙 미로 그림을 찾아서 보는 중입니다.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시간. 공부도 공부이지만 혼자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른 시간이 된 것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엄마로서
고맙게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