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네모 모임은 경복궁의 경회루앞에서 만나기로 정해졌네요.
전 날 소리에 반하고 칵테일에 취해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서 계속 소리속에 잠겨있다보니
정작 신문도 펼쳐 볼 시간도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그래도 처음 그 모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들꽃님,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음반을 빌려주고 싶어서
나윤선의 음반 한 장, 김영욱의 연주로 바이올린 협주곡 이렇게 챙겨들고 나간 덕분에
경복궁까지 가는 길, 함께 간 호수님의 차속에서 나윤선의 노래와 더불어 즐거운 나들이가 되었지요.

새로 산 카메라에 대해서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나선 길, 그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제는 찬찬히
한 번에 한 가지씩만이라도 알고 가면 되지,그렇게 제 마음대로 정하고 나섰더니 걸리는 마음이 조금 덜하네요.
경회루앞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새로 만난 낯설지만 워낙 줌인 줌아웃에서 이름으로 글로 미리 만나서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과도 인사나누고, 안나돌리님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서는 마음이
급해서 먼저 피사체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더군요. 외국인들도 더러 보이고, 단체로 수학여행온 학생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 혼자서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오랫만에 나들이와서 즐겁게 둘러보고 있는 어른들도 보입니다.

조선왕조의 영욕을 고스란히 다 지켜보았을 이 땅,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났을까요?
역사에 버젓하게 기록된 일도 있지만 일부러 삭제된 사건들, 왜곡된 이야기들, 격렬한 사랑와 증오의 이야기들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었을 사람들의 억눌린 이야기들, 이제는 다 묻어 둔 그 땅에서 그래도 식물은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왕이 지배하던 땅에 대한 것은 역사로서 관심이 있지만 현재 우리 삶을 구성하는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아서
그것이 래퍼런스로서 기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궁궐땅에 들어설 때마다 묘한 향수와
그것보다 더 심한 이질감에 시달리곤 하지요. 그 시기는 우리와 어떻게 인연이 맺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수문장의식을 치루면서 관광객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매일 같은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일까?

옛 궁궐에 살던 사람들은 가고 없어도 이런 식물들이 주인으로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땅
그래서일까요? 건물을 찍는 것보다 저는 오히려 주변을 돌면서 카메라는 절로 식물들에게 향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만난 아이들, 소풍 왔는가 물어보니 울산에서 수학여행 왔다고 하네요. 멀리서 왔네
너희들 한 장 찍어도 될까 ? 어디다 쓸 것인가 물어보네요. 사진찍으러 왔는데 이야기속에 넣어서 쓰고 싶다고
하니 잘 써달라고 내 이름은 무엇이라고 서로 떠드느라 정작 누구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지만
사진찍자고 하니 서로 포즈를 취해줍니다. 차라리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것도 경험이구나 생각하면서 그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한 장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만나기로 한 시간이 넘었네요. 부리나케 합류해서 카메라에 대한 설명,어떤 식으로
사진을 찍으면 좋은지에 대해서 안나돌리님에게 설명을 듣고 향원정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경복궁을 찍은 사진들도 전시가 되어 있네요.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사진 찍을 사람들은 연습해보라고 해서 돌아다니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사진이 될 수 있을까 ?
물론 혼자서도 카메라 매고 돌아다니면서 찍을 수 있지만 여럿이서 모인다는 것은 이런 즐거움이 있더군요.
격려받고, 그리고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 자리에서
더 나가지 못할 수 있는 우리를 밀어주는 약이 된다는,


그 곳에서 나와 자유롭게 한 시간 정도 자유 촬영시간입니다.
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는 물론이고요, 그리고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말들과
한국어라도 다양한 억양이 섞인 소리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비어있는 평상에 앉아서 들고 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 관한 책을 펼치고 조금 읽다가 사진속에
담아 보기도 했습니다. 사진기 들고 계속 촬영할 거리를 찾고 고민하면서 찍는 일이 생각보다 힘이 들어서요.
일종의 중간 휴식인 셈이지요. 17세기 네덜란드와 조선의 그 시기는 어떤 접점이 있었을까 ?
사실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이유는 스피노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당시 그가 살았던 사회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였는데요 원래 읽었던 책인데도 그런 시점에서 보니 책읽는 느낌이
사뭇 달라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한가롭게 회화에 관한 책을 들고 놀다가 함께 간 호수님께 현장을 발각? 당해서 함께 앉아서 조금 놀다가
다시 일어서서 기운내서 조금 더 찍어보았습니다.


경복궁, 피사체에 담으려는 마음으로 온 이 곳은 역사의 유적으로 찾아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앞으로 계절이 바뀌면 그 때마다 시간여유를 갖고 와서 조금 더 제대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집에 와서 늦은 밤 사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사진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지요. 그렇다면 무작정
달려들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눈으로 대상을 먼저 제대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 카메라에 대해서도 그린님의 똑 떨어지는 설명으로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돌아온 날
한 뼘은 자란 느낌이 든 두 번째 아네모 모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