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째 화요일, 별다른 모임이 없는 날이라 몰아서 여러 가지 볼 일을 보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우선 지난 번 실수로 책을 들고 나가지 않아서 부치지 못한 택배 처리를 했지요.
고등학교 2학년 말 부지런히 종로까지 가서 공부하고 시험치루어 합격한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이
2년 지나면 자격증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라면서 다시 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보람이,그런데 책이 없으니
그 곳에서 주문을 해서 배송을 집으로 떡하니 해놓았더라고요. 아마 그 곳에서 받으려면 값이 비싸지니
엄마가 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겠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아닌가 혀를 차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그 곳으로 배송을 받고 그 비용을 은행으로 넣어달라고 하거나 그런 방식이 일을 줄이는 편이련만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부치기를 먼저 해결을 했지요.

일년 동안 여러 차례 우체국을 이용해서 그런지 창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기억하더군요.
한 여자분이 말을 겁니다. 따님이 보고 싶으시지요?
이제 올 때가 다 되었는데, 지금이 보고 싶지 오면 이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사이좋게 지낼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일정한 거리가 부모와 자식간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우체국에서 나오니 비가 살짝 오고 나서인지 바람이 서늘하고 좋군요. 그래서 대화역까지 설렁 설렁
걸어갔습니다.예전에 살던 동네라서 여기저기 추억이 많은 거리이기도 해서요.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들고 나간 책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를 읽습니다.그런데 아무래도 내용에 주목하다 보니
어라,왜 이렇게 지하철이 더디 오는 것이지 ? 둘러보니 이미 차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16세기 아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대한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려고 이탈리아에
갔다가 카라바지오에게 반해서 그에 관한 책을 을 내기도 한 김상근 교수인데요
모르고 있는 사이에 르네상스 창조 경영, 르네상스 명작 100선, 엘 그레코 -지중해의 영혼을 그린 화가를
내기도 했네요. 이런 경우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묘한 느낌입니다 ,자신의 전공이외에도 관심갖는 분야가 점점 늘어서 그것을 연구하고 더구나 책이라는 형태의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니 ,일종의 질투심의 발로라고 해야 하나요?

독립문역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정신없이 책을 읽다보니 벌써 마사초네요. 물론 피렌체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을 미리 읽어서 사전지식이 있는 덕분도 있지만 책의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어제 밤 막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이렇게 되면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마저 읽으면 다 끝나버리는 것 아닐까 ?
그러고 나면 그 안에서 소개한 사람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부해보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복궁역에서
내렸습니다.

다음 주에 끝나는 일본어 책, 그래서 리더인 선생님이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으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해서
광화문의 타이 음식점을 알아보러 간 김에 교보문고에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 기억나서 지하도로
내려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5호선 지하철역 구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네요.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들어갔다가
내용이 궁금했던 김규항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만났어요. 어떻게 할까 ? 고민하다가
서서 읽어보다 보니 혼자서만 읽긴 아까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쌓인 포인트.더구나 리모델링 기간에는
특별회원이라고 (그런데 왜 갑자기 특별회원이 되었을까요? 그것까지는 못 물어보았는데 ) 10%나 할인을
받고 그래서 주머니 덜 가볍게 책을 구한 셈이네요.
잃어버린 수첩을 보관하고 있는 반디 트라조스에 가는 길,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강익중의 전시를 하고 있네요.
그냥 갈 수 없지요? 물론

신관, 구관 둘 다 이용해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서 이전과 비슷한 강익중, 이전과 많이 달라진 강익중
두 사람의 강익중을 만난 기분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더 땅과 가까워지고 조금 더 한글과 가까워지고 바람냄새,땅냄새가 물씬한 강익중을
만났습니다.
병풍과 가리개형식으로 만든 작품에 그가 만든 색은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저런 가리개라면 바라만 보고 있어서
치유가 될 것 같은 그런 색감이라고 할까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 다음에 들른 곳은 법련사인데요 그 곳에서 취만부동이란 제목으로 신문기자들의 사진전이 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만 명이 피리를
불어도 각각 같은 소리는 없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사진기자들이 전시회를 열려고 했을 때 스님이 지은
제목이라고 하더군요. 4명의 기자가 연 사진전에서 각각 다른 관심사를 사진속에서 펼쳐놓은 세계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사진들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동행이란 제목의 사진들은 감동을 주었고, 올레길을 찍은 사진은 제주도에
대해서 잠자고 있던 마음을 다시 부채질하는 사진들이었습니다 .

아쉬운 것은 금호 미술관에서 막 끝난 문봉선전의 그림들을 실어내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인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라 며칠 일찍이었다면 볼 수 있었을텐데 싶더군요.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순 없으니 다음 기회가 있겠지 싶었지만 자꾸 눈길이 가네요.
드디어 물어물어 반디 트라조스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점심 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잠시 비운다는 메모가 붙여져 있어서 고민하다가 광화문 교보에서 산 책을 조금만 읽어보아야지
펼쳐들고 읽고 있는데 소리가 나네요.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중인 관장님과 젊은 큐레이터들을 만났습니다.
우선 그 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베네주엘라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하고 커피도 한 잔 얻어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 관장님은 오래 전 갤러리 베아르떼에서 열린 라틴전에 갔다가 마침 그 쪽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큐레이터를 하고 있을 때 전시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어서 , 서울 아트페어에서 서로 알아보는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전시장을 지나다가 눈에 띄는 화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들어가게 되었고
설명을 듣다보니 목소리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다가 수첩을 두고 나온
것도 몰랐습니다. 연락이 온 덕분에 그 곳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아트페어의 도록도 한 권
얻어서 오고, 그녀에게 everymonth의 주소도 알려주고 왔는데 실제로 온 라인에서 계속 만나게 될 지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요?

바람이 세고, 비가 오기 시작해서 국제 갤러리,학고재에 가보려던 계획은 접고 경복궁을 가로 질러
지하철 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피렌체를 읽겠다는 계획은 이미 사라지고 지하철안에서 김규항의 책을
읽다보니 벌써 정발산,정발산 역이라고 소리가 나네요. 아니 다음 정류장에서는 내려야 하네
화요일 하루의 아쉬운 나들이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