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본 영화였습니다.그런데 다시 보니 얼마나 새롭던지요.
가장 큰 차이는 아주 쪼금이지만 불어가 들렸다는 것,그것만으로도 영화보는 내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아마 이미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이미 보았다는 것과 그 영화를 기억하는 것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요즘처럼 실감하는 때가 없네요.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이미 왔으나 우리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도 많고 만났다고 해도
그 핵심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아니
핵심은 고정되어 있는 것일까,계속 변하는 것이므로 다 알았다거나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요즘이라고 할까요?

두 아이가 삼총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누가 좋은가에 대해서 말을 하던
한 작가의 작품중에서 어떤 주인공을 좋아하는가는 그가 나와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 달라서 눈이 부시거나,달라서 내게 없는 그것을 원해서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 읽는 소설에서 나는 누구에게 끌리는가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이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인데요,그의 아버지는 패탱 정부(이차대전중 독일에 협력한 정부)에
군수품을 대느라 바빠서 부재중이고,다른 주인공의 아버지는 나치하의 유태인이라 부재중입니다.
같은 부재라도 이런 비상시에 그것이 갖고 있는 실존적인 무게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요!

보물찾기를 하느라 서로 흩어졌을 때 두 주인공이 숲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인데요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사이의 눈치보기,탐색하기는 끝났다고 할까요?
완전히는 아니라도 친구의 비밀보다는 그를 이해하려는 것으로 선회한 두 친구의 우정이 생성되는 곳이
숲이란 것이 참 인상적인 설정이었습니다.부산스럽던 공간에서 벗어나 갑자기 고요해지는 곳
숲이란 그래서 우리의 닫아둔 감성을 열어보일 수 있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자연은 그대로이지만 인간이 그 공간에 들어간 순간,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즐겁게 한 일중의 하나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일,소개에 그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빌려주면서 읽으라고 권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책만이 아니고 영화나 음반도 권하기도 하고,빌려주기도 하고,빌려 받아서 보기도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더 깊게 알기,사람들만이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 장면을 보니 어제 음악회에서도 갑자기 블링크,티핑 포인트,그리고 아웃라이어를 소개하게 되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을 뽑을 때 특히 관악은 여성에게 약한 악기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스크린을 치고 소리를 들으면 여성 호른주자를 뽑거나 섹스폰 주자를 남자라고 생각해서 뽑았는데
여성연주자였던 경험이 여러 번 쌓이면서 오케스트라에 여성이 진출하는 비중이 늘었고
그것이 오케스트라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기록을 블링크에서 읽고 신선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느라 블링크를 소개했고,아무래도 같은 저자의 책이니 다른 책도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저도 물론 두 사람이 들고 온 책을 보고는 내용을 묻고 다음에 저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해놓기도 했고요.

학교의 급사로 일하던 조셉이 학교 물건을 훔쳐서 팔던 일이 발각되어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사정을 해도 인정하지 않는 신부님에게 그가 대듭니다.왜 나만 당하느냐고요.
그는 떠나고 유대인이 숨어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바람에 신부님과 유대인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게 되는
순간인데요,줄리앙이 긴장된 순간에 친구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찰라가
보베의 운명을 가르게 되고,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줄리앙의 목소리로 그 날 아침의 그 시간을
잊지 못하고 살아왔노라 멘트가 흘러나오고 영화는 끝났습니다.
함께 한 멤버들과 점심먹고 나서 영화관 앞의 소파에 앉아서 나누던 이야기로
영화보기의 시간은 훨씬 풍성한 의미를 더하게 되어서 각자 영화를 보고 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영화모임이 되리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돌아서나오는 길,오전에 그 곳에 갔을 때보다 시간이 지나서일까요?
박물관앞에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더 생기있는 공간이 되었더군요.
다음 영화를 보러 올때는 아마 계절이 더 깊어져서 이런 모습이 아니겠구나 싶으니
그 풍광이 공연히 더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문쪽에 장이 서서 책과 영화를 할인판매 하고 있더군요.
아침에는 바빠서 그저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길,잠시 머물러 살펴보다가 가면속의 아리아
간장선생,그리고 다섯손가락(이 영화는 굿바이 칠드런을 본 날이 아니었다면 선택에서 제외되었을 영화인데
아무래도 이차대전영화를 보고 나서인지 손길이 가서 구한 것이지요) 이렇게 영화 세장에 9천원이라니
횡재한 기분으로 구하고,교황의 역사를 반값이하에 구해서 돌아오는 길,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