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리칸 뷰티 - American Beauty]
감독 샘 멘데스 / 각본 앨런 볼 / 편집 타리오 앤워, 크리스 그린베리 / 촬영 콘라드 홀 / 음악 토마스 뉴먼 / 출연 케빈 스페이시, 아네트 베닝 / 1999년작 / 러닝타임 115분
"아메리칸 뷰티"의 뜻은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
...의 세가지 의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영화는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모두 등장하고 표현되어지며 또한 그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상세하게 그려집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도 얻지 못하고 뜻밖의 죽음을 당하고마는 어느 중산층 가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에서는 중산층 가정의 붕괴가 하나의 사건이긴 하지만 커다란 충격으로 와 닿는 시점은 이미 지난 듯 합니다.
기껏해야 자기 딸의 친구에게서 성욕을 느끼며 잠든 아내 옆에서 자기 딸같은 소녀를 상상하며 자위 행위를 하고 그 딸의 팬티에 사정하는 타락한 가장.
직장에서의 무능함 때문에 아내로부터 인간적인 모멸감을 매일같이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무기력한 중년.
딸로부터는 존경은 커녕 인간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빠.
오늘날 미국의 지극히 일상적인 가정의 어둡고 파괴적인 단면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사회적 기관은 교회와 가정, 단 두 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은 교회를 보고 정신 차려라, 타락했다고 외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해져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탓일테지요.
이젠 마지막 남은 가정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빠는 딸을 보며 그 친구들까지도 성욕의 대상으로 느끼고 부부는 이제 서로가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할만큼 거짓과 위선으로 서로를 속이고 아이들은 점점 더 세상의 향락에 젖어가고...
이제는 어디서 이런 비뚤어진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으로까지 치닫는 듯 합니다.
가정이 다 파괴되고 나면 남는건 인간 말종의 군상들뿐...
무기력하고 타락한 아버지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은 그의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으로부터 모멸감 외에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무시마저 당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방책을 강구해 나갑니다.
한편 그 아내는 결국 동종 업계 최대 라이벌이자 부동산계의 왕에게 자기 육체까지 헌사하며 끝없는 절망으로 추락해갑니다.
그의 딸 제인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쯤 그녀의 남자친구 리키는 해병대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아 결벽증까지 있어 보이는 그로부터 쫓겨나오게 됩니다.
그토록 동성애자를 경멸하던 아버지는 결국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삶마저 상처낸 후 버냄을 죽이고 맙니다.
바로 이 영화의 절정이자 결말이 되는 매우 특이한 방식의 결론인데 이 부분에서의 화면과 음악과 사운드와 작품의 중량감과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짜 놓은 독특한 편집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습니다.
또한 이 마지막 장면은 죽는 순간의 케빈 스페이시의 표정이 화면에 가득 클로즈 업 되면서 기기묘묘한 해피엔딩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이 작품은 해피엔딩입니다.
또한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남은 건, 선택, 바로 관객의 몫이겠지요.
타락의 터전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저주받은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해피엔딩이던지, 그 타락의 물길을 이제는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순간에 맞은 비극이던지.
어느 쪽이든 이 작품의 결론으로써는 손색이 없습니다.
감독 샘 멘데스, 영화로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지만 연출 경력으로써는 연극계에 꽤 정평이 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각본 작업을 한 앨런 볼 역시 연극계에선 칙사대접받는 실력가이고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이미 스티븐 스필버그가 극찬한 바 있으며, 바로 그의 추천으로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았고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닝 역시 이들의 재능에 반해 이 작품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드라마가 흥미진진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그러나 몰아치지 않고 특유의 코미디적 소스로 여유만만하게 잘 풀어나간 뛰어난 연출, 좋은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여기 덧붙여 "쇼생크 탈출"에서 이미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며 스크린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토마스 뉴먼의 멋진 음악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영화입니다.
2000년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까지 8개 부분에 후보로 올라있었는데 결과는... 생각안납니다... -_-;;;;
아마도... 그 해 아카데미에서 덴젤 워싱턴이 사상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였었는데 결국 남우주연상은 케빈 스페이시의 몫이었습니다.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허리케인은 연기는 탁월했어도 영화의 무게감이 이 작품보다 뒤졌던게 문제였었고 이 영화에서의 케빈 스페이시는 허리케인 카터로 열연한 덴젤 워싱턴 보다 분명히 뛰어났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에서도 바다 건너 저편 미국사람들의 붕괴된 가정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이 사회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겐 앞으로 한 십여년 후의 자기들 이야기여서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미국보다, 일본보다 10년씩 뒤쳐져 그대로 따라간다고 하는데...
가정의 붕괴와 스와핑이란 폐륜은, 사회현상으로써는 벌써 영화개봉 시점에서 꽤 뜨거운 이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0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에선 훨씬 더 깊이 잠겨들어가는 상황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한 가정의 붕괴가 섬뜩한 이유는,
"소설이나 영화는 결코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는 무시무시한 보편적 사실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