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에서 문봉선님의 전시소식을 듣고는 그의 그림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침수업이 있는 날이라 너무 빠듯해서 그냥 새로 올라온 그림이 있나만 확인하고 나갔거든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서 어린이날,어린이가 없는 집이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낮시간에는 색연필을 선물해서 저를 감동케 했던 차승연씨의 전시회에 갔다가
(그녀가 대학일학년때 읽었다는 to the lighthouse에서 람제이부인의 역할을 기억했다가
그림속에 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자세히 여러 번 바라보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오후 약속을 한 다음 미리 가서 책구경도 하고 음반도 새로 나온 곡들을
찾아서 들어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구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원하는대로 하다가는 가정경제에 적신호가 오니
아무래도 계속 듣게 될 음반,보람이랑 함께 읽을만한 책,그런 것을 고르게 되더군요.
슬럼덕 밀리오네어가 외국어서적코너에 있어서 구하고,율리아 퓌셔가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협연하는
바흐음반,그리고 songs of viola라는 시적인 제목을 단 음반,이렇게 두 장을 사들고 왔습니다.
오늘 문봉선의 그림을 보면서 비올라의 음색과 어울리겠다 싶은 마음에 음반을 바꾸어 끼워놓고
듣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멘델스죤,그리고 슈만의 곡을 녹음한 것인데 슈베르트는 너무 익숙하지만 좋아하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그리고 멘델스젼과 슈만의 곡은 거의 모르는 곡들이라 이번 기회에 비올라소리로 친해지는
계기로 삼아야지 싶어서 구한 것인데 역시 서서 듣던 곡보다 집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듣는 소리의
울림이 더 좋습니다.


어제 밤부터 시간날때마다 슬럼독 밀리오네어를 읽고 있는데 우선 영화와 소설이 너무 달라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
the reader의 경우는 조금 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대본을 쓴 사람은 왜 이 점에 대해서는
작가와 이렇게 다르게 접근했을꼬,그것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나,과연 영화가 소설에서 핵심적인
것을 제대로 반영했나? 그런 의문정도였다면)
이 소설의 경우는 너무 달라서 원작에서의 퀴즈쇼에서 주인공이 문제를 다 맞춘다는 설정만 기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보다는 그래도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가 더 다양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한데 참 움울한 한 나라의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큰 부분에서)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 우울한 마음도 크네요.

늦은 밤 음반을 고를때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 자극적이고 첼로소리는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라서
그 중간정도인 비올라 소리를 고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비올라 음반이라고 해보아야
딱 세 장이어서 선택의 폭이 별로 없었는데 한 장이 더 추가되니 공연히 선택폭이 넓어진 기분이 들어서
참 우습군요,단 한 장의 차이인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기분이.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거나 ,어떤 느낌을 갖을 때 그것이 꼭 합리적인 근거에서 비롯되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공연히 생각이 멀리까지 번지게 되네요.

금요일 정독도서관 가는 날,두 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오치균전,그리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문봉선 전을
동시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두 작가 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 이전의 전시회에 비해서 어떻게 달라지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궁금해서요.

수묵의 맛이 깊이 배어있는 그림과 더불어 비올라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는 밤,수요일의 밤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쉽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