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울에서만 죽~ 자랐습니다.
처음으로 경기도에 나가서 살게 되던 날,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었지요.
차번호가 '경기 0000'로 바뀌는 것도 낯설었고 주소도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주말농장' 때문이었지요.
이사갈 집 집 주변이 온통 그린벨트로 묶인 산이며 농지라는 것에 반색했고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주말농장이 있었으니까요.
거기에서 흙을 모르는 아마추어가 생전 처음 호미를 쥐고 삽을 들고 농사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년, 이제는 땅만 주면 알아서 척척 한 해에 40~50종의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나서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났습니다.
'호미도 잡아보지 못하고, 무, 배추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면서
시골 가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고나서 어떻게든 주말농장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경기도로 이사 가면서
마침내 소원성취하게 된 거지요.
의정부에서 5년을 농사 지으면서 농사의 기본을 마스터했습니다.
첫해부터 농사 짓는 이야기를 기록했지요.
그것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농사교육도 농진청에서 받았고, 농기계교육도 받아 수료증까지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농사 짓던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농사 짓던 땅이 주택공사에 수용 되면서 사라지자
그 지역에 살 이유가 없어져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지요.
새 지역에 와서도 제일 먼저 한 것은 '주변에 주말농장이나 빈땅 있나'였습니다.
그리고 올 봄... 마음 좋은 분이 자기 밭 옆에 빈땅이 있으니 할려면 해보라고 했습니다.
얼씨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며 달려가보니...

그 땅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 잡풀과 가시덤풀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수년간 방치된 땅이었지만 그 전에 농사 지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흙 표면을 걷자 저렇게 비닐도 나오고, 스치로폼까지...정말 치울 게 많았습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4월초, 밭을 일궜지요.
경기 북부지역은 4월초부터 농사가 시작됩니다.

겨우 가시덤풀을 정리하고...
이제 밭에 퇴비를 넣어주고 엎고 갈아주고 이랑을 만들어줄 차례...
그런데 삽을 푹 밟으니 삽이 안 들어가는 겁니다.
수년간 갈아보지 않은 땅은 돌처럼 단단해져 있더군요.
순간 '큰일났네!'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습니까.
날짜는 흘러가고~ 밭은 아무 것도 안 만들어져있고~ 죽어라 엎는 수 밖에...

5년간 주말농부 경력이 어디로 가질 않아서 삽과 넥기만 있으면
이랑은 만듭니다. 힘들어서 그렇지...

길이 5미터짜리 이랑 두개를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면서 나오는 비닐, 플라스틱은 계속 모아두면서 밭을 만듭니다.
봄이 가장 힘듭니다.
그런데 올 봄은 더 힘들었습니다.

총 4개의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비닐 덮은 2개는 씨감자를 심을 이랑이고
나머지 2개는 열무, 쌈채소, 기타 등등을 뿌릴 이랑입니다.
물론 고추, 토마토, 오이, 박... 등도 심을려면 이랑 만들 일이 멀었습니다~~

다행히도... 반대쪽은 빈 곳이라 내가 하려고만 하면 넓힐 수 있는 땅..
그러나 저긴 온통 가시덤풀과 잡초 투성이...
그래도 야금야금 개간해 들어갔습니다.
저길 개간하면서 산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었네 어쨋네~ 하는 말들이
보통 일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랑이 만들어지면서 매일 밤 집에서 농사계획을 짭니다.
내가 계획하는 재배작물 갯수는 최소한 40개가 넘습니다.
저 작은 밭에서 그게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이기 때문이지요~
저 밭에서 계획한대로 농사를 지으면 시장 갈 일이 별로 없어지지요.

그 사이 집에서는 싹을 틔울 녀석들을 싹 틔워 모종을 만듭니다.
시중에서는 살 수 없는 모종들, 어렵게 얻은 씨앗들은 직접 키워서
밭에 옮겨심습니다.
장대박을 이렇게 발아 시켰고 조선 오이도 키워서 옮겨심었습니다.

씨감자도 북쪽인데다가 좀 늦게 심어서 성장이 느릴까봐 집에서 배양토에 심어
싹을 미리 틔웁니다.
그런다음에 옮겨심으면 성장도 좋고 빠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씨감자부터 옮겨심었습니다.
이 감자를 수확하게 되면 일년 내내 감자는 풍족하게 먹게 됩니다.

며칠 지나자... 제일먼저 감자싹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씨앗을 뿌린 열무, 얼갈이배추 싹들이 올라오지요...
이것들은 5월말부터 김치가 됩니다.

5월 초가 되면 온갖 모종들이 나옵니다.
가장 많이 심는 고추와 호박, 토마토, 오이, 가지...
이때 종묘상에서 모종을 사다가 무조건 옮겨심으면 안됩니다.
이 놈들을 4월에 안 심는 이유는 기온 때문이니까요.
날씨가 어느 정도 푹 해진 다음에 심어야하지요.

그리고 장대를 타고 올라갈 녀석들을 위해 장대를 세워줍니다.
작물 특성에 따라 장대도 다릅니다.
긴 장대는 오이와 토마토, 박이 올라갈 장대지요.

마침내 모종들을 장대 밑에 심어줬습니다~
지금은 썰렁해도 한달 후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지요.

그 사이 열무와 얼갈이배추가 저렇게나 자랐습니다.
약을 치지 않아서 벌레가 공격을 좀 했지만 그거야 좀 참아줄 수 있지요.

감자도 많이 자랐습니다...
이게 4월부터 5월, 봄에 벌어지는 주말농장 이야기지요.
주말농장은 제게 새로운 인생을 주었습니다.
흙이 저를 살렸고, 식물이 나를 깨어나게 했지요.
아무리 머리가 아프고 복잡해도 이 곳에 가면 머리가 단순해지고 맑아졌으며
식물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들을 지켜보고 돌보면서, 기다림을 배우고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원래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이었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먹을 거리를 얻는 것 뿐 아니라, 살아가는 힘과 지혜를 얻습니다.
2008년 농사가 이제 몇 주 남지 않았습니다.
길어야 1달일 겁니다.
봄... 여름...가을... 이 세 계절 동안에 저는 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몇 장의 글로 이 모든 것을 적을 수는 없으나,
혹여 이 글을 보며 뭔가를 얻을 분이 계시다면, 저처럼 큰 것을 얻을 분이 계시다면
내년 봄 흙을 만나보시라고 권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자연에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