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나는 아이들의 시험기간입니다,요즘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거의 모든 학교가 시험이
시작되자 마자 영어과목 시험이 있어서
지난 주말,그리고 어제까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느긋하게 수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고등학교 일학년인 한 녀석이 며칠전부터 매일 와서
영어과목이외에도 국사,사회,윤리와사상등을
질문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정성껏 답을 해주었더니
도움이 되었는지 오늘은 국어책을 들고 와서 자꾸
질문을 하는데 문제는 무슨 소리인지
알기 어려운 국문법문제들이었습니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이 녀석아,도대체 알 수 없는 문제들이라
도저히 대답할 수 없으니 스스로 생각하거나
국문법을 잘아는 친구가 있으면 전화해볼래?
대답이 걸작입니다.
제가 모르면 다른 아이들도 몰라요.

그렇다면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궁금한 것을
모아두었다가 선생님께 질문을 해보라고 하니
선생님은 질문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곤란해요
아니,이게 무슨 소리야?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니?
나오면 그냥 틀려야지 별 수 없지요 뭐

그런데 국어가 이렇게 어려우면 도대체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겠나 싶으면서 공연히 마음이
심란해지네요.
그러자 옆에서 내일이 영어시험이라 공부하던 고등학교
일학년 남학생이 말을 거듭니다.
선생님,그래서 제가 국어가 어려워서 포기했다니까요.

대책이 없어서 일단 집으로 가서 뭔가 더 알아볼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보낸 뒤 머리를 식히느라
음악을 틀었습니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였는데요 한참 듣다보니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는군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judas maccabaeus
see the conquering hero comes란 소제목으로
12개의 변주곡입니다.
가사가 붙여져서 우리말로도 번역된 노래
노래가 먼저인지 베토벤의 변주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쥐나던 머리를 진정시켜주는 첼로곡과 더불어
평정을 찾고,돌아오는 길
고등학교 아이들중에서 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국어책의 지문이 마치 외국어처럼 들려서 괴롭던 짧은
순간이 다시 생각나기도 하고요.

일본어과인 아들이 오늘 시험기간인데도
집에 다니러 왔더군요.
아파서 온 줄 알고 놀라서 전화를 걸었더니
내일 시험공부할 것이 별로 없어서 쉬러 왔다고요.
잠시,
공부할 것이 없다니?
한 과목은 범위가 적고 다른 한 과목인 일본어는
이제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공부해보았자 소용이 없다고
갑자기 마음속에서 화가 불끈 ,슬픔이 불끈 하던
낮시간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어디까지가 도움이고 어디까지가 간섭인지
잘 분간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