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면서 왜 지나간 과거를 알아야하는가
이런 질문을 아이들에게 가끔 듣습니다.
과거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혹은 과거는 이제 상관없다는 생각
혹은 지금 살기도 바쁜데 과거까지 알아서 무엇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에겐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가능하겠지요?
사실 제게도 역사는 그렇게 가까운 관심분야가 아니었습니다.
전공 공부를 그만두기전까지는 역사책을 따로 사서
읽어본 기억도 없고요.
그러다가 전공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나서
방황하던 시절에 만난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서
십년이 넘는 세월을 거의 매일 만나게 되는 독서분야가 되었지요.
그러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은
역사속에서 반복되거나 조금 나아지거나 어떤 때는
뒤돌아가기도 하는 그 이야기속에 인간 삶의 많은 것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특강 준비로 다시 고대 그리스 세계를 여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으며
그것이 다른 나라의 역사와 비슷하기도 하면서
또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고전기 그리스의 문화의 폭발력이 생기기 전에
얼마나 많은 교류와 배움의 장이 있었던가
그렇지만 그들이 무엇을 배울 때 교과서그대로 수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몽땅 집어넣어서
배움 그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린 그 과정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되네요.
조각을,건축을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나는 신들과 영웅들을
아하,그래서 서양역사를 시작하면 늘 그리스,그리스라고
이야기하는구나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열정으로 들끓었던 시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때문에.

외국의 박물관에 갔을 때 질리도록 많은 도자기들 앞을
지나면서 그저 휙 하고 돌아나갔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면
조금 더 눈이 열리고나서 보러 갔더라면
그 자리가 얼마나 달랐을까 후회가 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다음에 기회가 오면 그리스관에 가서
조금 더 시간을 오래 보내면서 도자기속의그림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길 기대할 수 밖에요.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에 새겨진 조각인데요
이 조각은 터키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본 것이라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 장면은 알렉산더대왕의 행렬이 바빌론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라고 하네요.
그가 죽기전에 주로 정복활동을 하기만 했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적인 것을 그 지역의 문화와 혼합해서
이룬 헬레니즘이라고 불리는 문화활동이 그 이후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나를 헬레니즘 시대의
문화현상을 보면 알 수 있더군요.

오래전에 사두고는 다른 책에 밀려서 제대로 못 읽은
고전은 서사시이다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읽기를 하면서 함께 읽는 중인데요
이렇게 재미있는책이 왜 당시에는 그렇게 순위에서 밀려서
새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쳐박아두었나 싶으니
어리둥절하더군요.
저자는 우리가 일리어드,오딧세이등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가이드 북을 쓴 셈인데요
그 방법이 재미있어서 따라읽다보니 정말 그렇구나 하면서
원본을 제대로 번역한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더군요.
다음에 책을 낼 때쯤에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반응한 내용을 토대로 다시 써보고 싶다는 서문도
그렇다,그런 식의 서로 소통하는 글읽기가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소통하는 글읽기,글쓰기의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경험을 했지요.
그렇다면 운문의 묘를 제대로 살린 일리어드 오딧세이
번역본을 찾아서 읽어보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시 읽으면서 만난
도판을 인터넷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군요.
이런 도자기들을 무덤에 부장품으로 만들어서 넣었다고 하네요.
사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유물들은 무덤에서 발굴한
것들이 많으니 (이것은 한국의 박물관도 마찬가지이고요)
무덤,혹은 죽음은 한 시대의 삶의 총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악을 들으면서 내일이 휴일이라 일어날 걱정이 없이
즐기는 늦은 밤의 검색과 도판보기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