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박물관에서 오래 있다 보니
그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부소산성에서도 설명과 더불어 깊은 교감이 있는 여행이
되려면 짧은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오면 되니까 하면서 잡은 코스가
무량사입니다.
무량사까지 가는 길도 좋더군요.
시골길의 정취가 좋아서 자꾸 바라보게 됩니다.
여행에서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에 눈뜨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것을 만날때의 기쁨도 역시 크고요.
무량사가 어느 시대의 절인가 했더니
고려시대의 절이라고 합니다.


절의 입구에서 장을 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는데요 이 곳의 장터는 시끄럽지 않고
참 소박한 기분이 들게 해서 좋았습니다.

절의 입구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중에 시인이 이야기합니다.
이 곳에 김시습의 시비가 있다고요.
그렇다면 보고 가자고 하니
내려오는 길에 보면 된다고 하네요.
이 곳에서 김시습의 흔적을 보리라곤 상상도 못해서일까요?
수요일 역사교실에서 아이들과 바로 이 시기 공부를 하면서
사육신의 죽음과 생육신의 삶에서
어떤 쪽이 더 힘이 들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한 뒤라
그런지 공연히 어떤 인연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벌써 갑사,마곡사,그리고 무량사까지 오고 나니
절 나름의 분위기와 특징이 잡혀서 재미있습니다.
비교를 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고요
아,그리고 정림사지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구조로 된 이 절은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담을 둘러싸고 있는 풍광이 눈에 부담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절을 둘러보던 중 문득 바라본 하늘이 카메라에 손이
가게 만드네요.


빨간 웃옷을 입은 여자분이 열심히 카메라를 누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멀리서 한 장 담아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의 단풍을 가장 마음에 담고 온
날이 바로 어제의 무량사로군요.

김시습의 영정이 있는 곳이란 팻말을 찍었습니다.
김시습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한 인간이 어떤 시대와 조우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절에서 생각이 가지를 치고
조선시대의 한복판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절을 다 둘러보고 나서 자판기 앞에서 율무차를 한 잔 마시다
나직한 담이 마음에 들어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이런 담만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제 마음이 궁금해지기도 했지요.

절 문을 나서니 당간지주가 보입니다.
여러 차례 여행을 함께 한 클레어님과 갑사에서 본
당간지주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이 사람을 이어주는 힘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내려오는 길에 만난 단풍입니다.


앞서가는 세 사람을 뒤에서 잡은 모습입니다.
두 번째 만나는 부여의 시인,그녀를 통해서
머리에 확 박히는 해설을 들으면서
우리는 하늬바람님에게도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니
그냥 기행만 다닐 것이 아니라
문화대학이나 박물관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어떤가 하고 권하기도 했지요.


김시습의 시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장관입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에 저절로 제 마음도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시험합격후에 컴퓨터와 티브이앞에서 껌처럼 붙어 있는
아들이 마음속에 새 바람이 스며들어와
달라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서 한참
서 있기도 했고
간절히 원하던 학교에 원서를 내보지도 못한 딸이
지금 차선으로 선택한 학교에서 적응을 넘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날개를 폈으면 하는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비를 보고 나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부도밭입니다.
이 곳에 김시습의 무덤 형식으로 부도가 있더군요.
오늘 무량사에서 여러 차례 만난 김시습
오래 전에 소설가 이문구님의 소설로 만난 매월당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 절 아래로 내려오니 벌써 대전으로 출발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여행이 좋았던 클레어님 아들과의 약속을 결국
펑크내고
부여시내에서 맛있는 칼국수집으로 가서 거기서도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그 곳에서 헤어진 후 차타고 대전으로 가는 길
처음 만난 하늬바람님과 이야기를 많이 햇지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것에 바로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것,클레어님이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것
무엇을 할때 가장 행복한가 하는 이야기도 하고요.
하늬바람님이 내리고 나서
클레어님이 권합니다
이왕 늦어진 것,잠깐 집에 들러 그림을 보고 갈 것인가 하고요
그럼요
당연히 보러 가고 싶지요.
그래서 아이방에 걸려있는 렘브란트 에칭도
거실에 걸린 박생광님의 그림 한 점도
그리고 다른 이름을 알 수 없는 화가들의 그림도 보았지만
참 인상적인 것은 부엌에 걸린 스티글리츠의
사진 한 점이었습니다.
메트로 폴리탄 뮤지움에서 사 온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서
걸어놓은것인데 이상하게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방에서는 대담과 블링크
그리고 어린 왕자 영역본 한 권을 빌리고
돌아나오는 길, 천변을 달리면서
깊어가는 밤에 나눈 대화도 참 좋았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느낀 날,
서울에서 탄 지하철에서 잡은 어린 왕자속의
대사가 마음속으로 흘러넘치면서 금요일의 여행을
마무리했지요.
하늬바람님이 제게 주려고 골라온 세 권의 귀한 책에
클레어님에게 빌린 세 권의 책까지
오늘은 마음이 절로 배부른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왕자,다 읽었다고 생각한 책의 대사가
이렇게 깊은 울림을 주다니,그러니 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돌아온 여행이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