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쿡 신입회원 虛雪입니다.
올 초 촛불이 한창 불타오를 때 이곳을 알게되었다가, 얼마 전에 가입했는데요.
참 읽을거리도 많고, 이것저것 눈요기할 제품들 소개도 볼만하고,
특히나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나는 것이 가끔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해서 제가 이곳에서 얻는 많은 것들에 대한 보답 겸, 가마솥 자랑도 할 겸,
겸사겸사 고추장 만들기에 관하여 사진과 함께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올해가 시작한지 금방인데, 벌써 내년이 몇시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시간 참 빠릅니다.
나이의 속도로 지나가는 시간이라더니, 서른 중반에 접어드니 제법 속도가 붙었는지,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급하게 지나간 듯 합니다.
물론 여기엔 쥐새끼의 헛짓때문에 더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연말도 되고, 겨울이면 어김없이 내년 먹을 장을 담그게 되는데요.
올해는 저희집이 된장을 하지 않고 - 아직 작년에 한 게 많이 남아서요, 아무튼 고추장만 했습니다.
준비는 이미 10월부터 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엊그제 두번째 독을 채울 고추장을 만들었습니다.
고추장 참 번거롭지요.
해서 많은 분들이 사드시기도 하구요.
만들면서 늘 사서 고생이구나 합니다.
파는 거 사 먹으면 편한데 말이죠.
그런데요,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입맛에 맞지도 않고, 이리저리 아는 분들 덕에 공장용 고추장에 대한 믿음이 전혀 생기질 않더라구요.
이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 하기로 하죠.
다시 원 글로 돌아와서,
장은 정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이지 참 정성도 정성이겠거니와 그 준비가 일단 손이 많이 갑니다.
고추장은 다들 아시다시피,
고추가루, 메주가루, 엿물, 소금의 조합입니다.
고추가루는 10월 말쯤에 나는 세번째 따는 피가 두껍고 큼지막한 녀석들로 준비를 해두고요,
소금은 제작년에 주문해둔 소금을 간수를 빼서 잘 보관해두고요,
메주는 11월에 거둔 콩으로 만들어서 가루를 내어두지요.
엿물은 10월 말쯤에 겉보리를 싹을 틔워 엿질금을 만들어둡니다.
엿질금(엿기름)은 보통 한겨울에 내야 맛이 좋다고들 하는데, 그건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죠.
오늘 고추장 만들기에서 얘기할 부분은 엿질금과 찹쌀을 이용해서 엿물을 만드는 부분인데요.
어찌보면 고추장 만드는 과정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손이 많이 가며,
가장 오랜 시간 봐줘야 하는 하루 꼬박 해야 할 일들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잘 익은 고추장 특유의 달짝지근한 뒷맛이 생겨나구요.
이 과정이 정말 좋은 고추장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사진과 함께, 엿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전날 찹쌀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에 잘 불려둡니다.
이 찹쌀은 집에 따라서 갈아서 쓰기도 하구요, 저희집처럼 찹쌀밥을 지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느 게 더 좋다고 딱 잘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찹쌀밥을 지어서 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고소한 맛이 납니다.

이건 말려둔 엿질금을 물에 불려놓은 상태입니다.
저기 싱그러운 녹색의 새싹이 보이시지요?
발아가 된 상태에서 말려 놓은 겁니다.
전에는 귀찮아서 파는 엿질금을 쓰기도 했는데요, 이상하게 파는 것과 집에서 낸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난히 파는 것은 가루가 많았는데, 그 정체는 알 수가 없지만, 집에서 내어 쓸 때는 그런 게 전혀 생기지 않았고,
그 결과 엿질금을 찬물에 걸러 물을 냈을 때 훨씬 맑은 국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위에 보이는 엿질금을 커다른 보자기에 넣고 찬물에 조물거려 맑은 물을 걸러냅니다.
사진으로는 보여드릴 수 없지만 엿질금을 걸러낸 맑은 물을 가마솥에 부어 끓지 않게 데워줍니다.
그 물이 따끈하게 데워지면 찹쌀가루 혹은 찹쌀밥을 넣어줍니다.

찹쌀밥을 넣어 물이 끓지 않게 따끈한 정도로 잘 저어주면서 물을 데워줍니다.
물이 절대로 끓으면 안됩니다. 물이 너무 뜨거워지면 쌀알이 삭지 않고 단맛이 아닌 신맛이 나게 됩니다.
그러니 엿기름을 거른 물을 한동이 쯤은 넣지 않고 있다가 물이 너무 뜨거워진다 싶으면 넣어서 온도를 맞춰줍니다.

한동안 따끈한 물에 찹쌀을 담가두면 쌀이 익는 걸 지나 삭습니다.
식혜의 밥알 생각나시죠? 왠지 부서질 듯 부서질 듯한 모양.
주걱에 대고 밥알을 굴렸을 때 미끌거리지 않고 도로로 말리는 모양이 되면, 다 삭은 것입니다.
이때 혹시라도 밥알이 바닥에 눌거나 하면 안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걱으로 저어주어야 합니다.
주걱으로 저어주면 온도 상승을 막는 작용도 하니,
귀찮다 생각지 마시고 잘 저어주세요.
그리고 밥알이 삭으면 몇몇 밥알이 동동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때 즈음이면 쌀알이 충분히 삭은 상태이니 주걱으로 떠서 손으로 살짝 눌러서 때밀리듯 밀리면 그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쌀알이 들어가 삭은 그 물을 걸러냅니다.
물론 깨끗한 보자기(물이 잘 빠지는 것이어야 함)를 이용해서 쌀알을 걸러내고 그 물만 걸러 사용합니다.
쌀알을 짜내면 저런 모양입니다.
저희집에서 이번에 찹쌀 한말을 했는데, 그 찌꺼기는 얼마 안나옵니다.
저 찌기미는 참 맛이 달큰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엿물을 만들어봅니다.
위에서 걸러낸 물을 이젠 쎈 불에서 퍽퍽 끓여줍니다.
처음엔 색깔이 탁하고 어두우며 회색빛을 띠고 거품이 많습니다만,
저건 차차 없어지니까 그냥 무조건 쎈 불에서 거칠게 끓여줍니다.



끓이면 끓일 수록 거품이 사라지며, 점점 누우런 빛으로 변해갑니다.
더욱 시간을 들여 끓여주면, 누우런 빛이 갈색으로 변하고, 급기야 약간 검붉은 색이 나옵니다.
저 국물은 매우 달달하니 맛이 좋습니다.
식혜의 맛이라고 하면 감이 오실 듯 합니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고 감칠맛이 나지요.
가마솥으로 하면 그닥 많이 졸지 않아도 무척 단 맛이 납니다만, 일반 솥이나 양은솥을 사용하면 반 이상 졸아 없어집니다.
정말이지 가마솥은 대단합니다.
아무튼 저 상태로 계속 끓여줍니다. 약 다섯시간 정도.

이렇게 깜깜해질 때까지 다려주면 검붉은 엿물이 완성이 됩니다.
완성된 상태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서 찍을 수 없어 사진이 없습니다만,
저 상태로 하루를 완전히 다려주면 조청이 되고 엿이 되거든요.
물론 엿(갱엿) 상태까지 되면 그건 검은 색에 가깝습니다만.
조청을 물에 풀어주었을 때의 색깔을 생각해보면, 대충 완성된 엿물의 색상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것 같습니다.
저렇게 완성된 엿물을 받아 하루쯤 식혀서 두었다가,
저 물에, 고운 고추가루, 메주가루, 그리고 소금을 섞어서 몽우리가 안생기게 잘 섞어주면 고추장이 완성됩니다.
물론 독에는 하루 쯤 두었다가 다음 날 담아주시는 게 좋구요.
햇살이 잘 드는 곳에 항아리를 두어 잘 익히시면 1년 먹을 충분한 고추장이 완성이 됩니다.
제가 직접 고추장을 만들면서,
이리저리 일을 하다보니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중간중간 빠진 사진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진 밑에 보충 설명을 해두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시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이 되구요.
혹시라도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아는 만큼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로 하면 간단하기는 하지만,
참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한 고추장이라면, 밥이라도 비벼 먹을 때 얼마나 좋은지,
한여름 아삭한 풋고추를 찍어먹을 때도 얼마나 좋은지 아실 겁니다.
장에 넣어 끓여도 좋고, 매콤하니 볶음요리를 할 때도 달달하다 못해 들푸그리한 파는 고추장과는 비할 수가 없지요.
제가 아는 몇몇 고추장 만드는 공장에서는 저런 방법으로 하지 않더라구요.
쉽게 쉽게 조청이나 물엿을 끓는 물에 희석해서 고추장을 만들던데,
단맛은 비슷할 지언정 그 깊은 맛을 내주진 않지요.
게다가 쉽게 굳어버리기도 하구요.
아무튼 누구나 집에서 손 쉽게 만들지는 못하는 게 고추장 된장이겠다 싶습니다.
하고 싶어도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땔 수 있는 땔감도 필요하구요.
어쩌면 마당 있는 집에 사는 낙이라면 낙이요, 혜택이라면 혜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82쿡 회원님들께 좋은 정보가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
정리 잘 하시고, 내년은 희망으로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하루 종일 장작불을 때고 나면, 저녁이 되는데,
그때 남은 불씨로 석쇠에 고등어를 구어 먹으면 그 맛이 또한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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