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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아버지와 돈가스정식..

| 조회수 : 3,493 | 추천수 : 30
작성일 : 2006-10-24 22:47:10
크리스마스엔 소박한 돈가스 한 접시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그 “별 볼일” 없는 모양새의 돈가스 한 접시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요즘처럼 세련된 먹거리가 넘치는 시절에도, 뽐 나는 스테이크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의 제대로 된 “본토음식” 이 아닌, 소위 “정식” 이라고 불리거나 하는 스타일의 돈가스 한 접시 여야만 한다. 여기서 한 접시란, 한 개의 넓은 접시위에 이것저것 다 올려진 모양새를 말한다.
수 십여년 예전의 일이지만 카츄사 출신의 아버지는 그 옛날스타일대로 미국사람 마냥 분위기 있게 멋내는 일을 은근히 좋아하셨더랬다.
그 젊으신 시절의 가죽잠바에 통기타를 들고계신 사진처럼, 아버지는 아마도 그 커다랗고, 마냥 잘 사는 나라에 대한 많은 동경을 가지고 계셨던 듯 하다. 그 시절에 누가 그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꿈처럼 준비해오던 미국유학이 가정적인 사정으로 무산되고, 그에 대한 일말의 보상심리이기라도 한 듯, 아버지는 당신의 군복무를 위해 카츄사를 지원하셨더랬고, 3년간의 군복무의 기간을 지금의 용산에서 보내게 되셨던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의 아버지는 마치 티비속의 미국드라마의 그 풍족함에 둘러써인 “미국가정” 의 아버지를 상당히 모델링 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시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더랬다. 야구글러브를 쌍으로 구하셔서 오빠와 캐치볼을 하곤 하셨었고, 저녁시간이 되면 늘상 기타를 치시며 어느나라의 민요나, 포크송 따위를 가르쳐 주곤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하루 종일을 서성이시며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먹여 주시려 하곤 하셨다. 그렇게 종종 먹게되곤 하던 것이, 당시의 “통닭”과는 무언가 다른 맛과 모양새의 “후라이드 치킨” 과 크림숲, 팬케익, 돈가스, 햄버거 등이었더랬다.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은 통닭처럼 하얀 깍둑무와 먹는 것이 아니라 새콤하게 절여진 오이와 함께 먹는것이었었고, 팬케익위에는 잡지광고속의 사진마냥 하얗게 잘려진 버터조각과 시럽이 뿌려 올려지곤 하였다.

아버지는 정말 돈가스를 잘 만드셨다. 식탁위에 잔뜩 재료들을 챙겨 올려두시고는 나무 도마위에서 얇게 펼친 돼지고기를 맥주병으로 탕탕탕..두드려 부드럽게 만드신 다음에 빵가루 오독오독 부숴셔 튀겨주시곤 하시던 것이다. 그때까지만도 돈가스는 맛있는 아버지의 별식중의 하나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것들과 딱히 차별성을 가질만큼의 특별한 것 까지는 아니였더랬다.

그 기억은 아마도 내 나이 8살때의,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겨울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어둑어둑 하고, 추웠다. 지금처럼 후끈거리는 보일러와 난방기기들이 어딜가나 켜져있고 하던 시절도 아니였었고, 학교만 가면 실내화 속으로 시린 발가락이 아주 쩡쩡하니 아파올 지경이었고, 하지만 크리스마스전후로의 한달은 어딜가나 캐롤송과 그 번쩍거리는 장식들이 온통 천지에 깔려있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얼마전까지는 몰랐다. 왜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겨울이, 밤이 그렇게 어둑어둑 했던지를. 왜 포장마차의 카바이트 불빛이 그렇게 강렬하게 내 뇌리에 남아있는것인지를. 최근들어 알게된 그 이유는 너무도 뻔하고 낭만적이지 못하여 아쉬움이 일어올 지경이지만, 그때는 확실히 지금에 비하여 밤거리의, 그리고 저녁이 일찍 찾아오는 겨울거리의 가로드이며 네온이며 등등의 조명이 확실히 적었던 것일 뿐인거다.
하지만, 내 8살의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정말 환하고 따땃하기 그지없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우리가 나갔던곳은 명동이었다. 명동거리의 한켠에서 조금 늦은 퇴근을 하신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그 저녁은 크리스마스의 이브였다. 엄마와 그 거리에서 만나 우리가 간곳은, 초록색과 은색의 반짝이 장식들이 정신없이 천장을 뒤덮고 있는 식당, 레스토랑, 다시 말해 경양식집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인생에 있어 처음의 “레스토랑” 의 기억이었던거다. 무언가 즐거운 날이 오면 항시 기대하게 되던 짜장면집도 아니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것이 아닌 돈가스를 먹어보게 되었던 그 일식집도 아니고, 하얀 접시에 음식이 담겨져 나오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주고 하는 레스토랑 이었던 것이다. 먼저 서빙되어온 크림숲의 고소한 부드러움이 추위에 오그라든 몸을 녹여주었고, 하얀 접시위에 커다랗게 놓여진 돈가스의 바삭한 내음과,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그 “겨울” 에 처음 먹어본 옥수수 알갱이 (통조림의)의 경이로움 이었다. 한겨울에 먹는 옥수수라니..그렇게 식구들이 둘러앉은 식탁 주위로 크리스마스의 훈훈한 캐롤이 울려왔더랬고, 입술을 오물오물 해가며 탁자아래로 발을 동동 저어가며 즐거움에 도취된 오빠와 나의 모습이 부모님들을, 나의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있었다. 그 “완벽한” 행복의 기억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어서,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반드시 경양식집 스타일의 “돈가스정식”을 먹어야만 한다..라고 우겨대곤 있는 것이다.

이십대의 오랜 유학생활의 동안에도 나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얇게저민 돼지고기 몇조각을 사서, 소금조금, 후춧가루 조금 그렇게 뿌려 재워두었다가는 하룻밤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밀가루에 한바퀴 굴려서 계란물 축축 적셔 입히고 빵가루 잔뜩 발라재워서 기름에 튀겨내어 두고는 커다란 접시위에 옥수수 통조림 따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국수 얹어 “돈가스 정식”을 차려내곤 하던 것이다. 거창한 돈가스 소스 따윌 사거나 만들 필요는 없다. 돈가스정식..이라고 할라치면, 보다 70년대의 명동 스타일의 돈가스 정식이라고 할라치면 돈가스 위에 뿌려진 것은 달달한 토마토 케쳡으로 딱 제격인 것이다.

어린시절, 나의 기억속에서 앞치마를 두르시고 돈가스를 튀기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기타를 치시며 “찍 밟아 줄라 삐~쩍 마른 갈비~” 하시며 찡긋 윙크를 해주시곤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이젠 많이 달라져 있다. 코 끝에 돋보기 안경을 얹으시고 앉아 책을 읽고계신는 아버지는 “난 이가 약해서 고기 먹는건 좀 그렇다..” 라고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신다. 한참, 그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청춘을 보내시며, 흑백영화속의 잘사는 나라의 풍요가 부럽고, 꿈같아 군대까지 카츄샤에 다녀오실 정도의 아버지였지만, 하나뿐인 딸네미 유학시절 내내 한번도 다녀가시지 않으시고는 “ 아 여기 한국도 얼마나 좋은곳이 많은데, 그곳도 아직 덜 돌아 봤는데 나 미국까지 갈 시간 없다...” 하셨더랬다. 딱, 지금의 내 나이에 아버지가 느끼셨을 그 막막함과, 그 막막함을 웬지 뛰어넘게 해줄만한 기회를 줄런지도 모른다..싶던 그 “부자나라”,“커다란 나라” 의 동경을 나는 어림짐작하여 느낄 수 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막연하 동경은 현실의 절망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던 동경의 공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던 것이 아닐까..하는 짐작이 들어온다. 아버지의 돈가스는 그러했다. 아버지 당신의 희망과, 당신의 자녀들이 살아갔으면 싶은 앞으로의 세상에서의 여유와 풍요..그리고 그날저녁 명동의 한 레스토랑에서의 양뺨에 바알갛게 상기되던 흥분에 가득차던 풍요의 식사는 아버지의 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지금의 아버지는 불행하시지도, 그렇게 막연한 동경에 차 계시지도 않으시다. 지금의 아버지는 한국의 방방곡곡을 헤매 이시며 한국의 신화적, 전통적 원류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정리하시는 연구를 하고 계시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의 이브엔 돈가스 정식을 먹는다.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8살의 크리스마스의 그 행복과, 아버지의 그 동경을...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빨강머리앤
    '06.10.25 12:17 AM

    글을 읽으면서 죠박님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느릿하게 그려집니다.
    따뜻한 유년이 부러워지는 찰라입니다.

  • 2. 장은희
    '06.10.25 12:34 AM

    긴 글을 잘 읽었습니다
    성탄에 대해 참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계시네요....
    전 성탄에는 종이등에 전구를 넣어 밝혔던 그 은은함이 떠오른답니다...^^

  • 3. 나나
    '06.10.27 5:37 PM

    여덟살 꼬마의 '완벽한 행복'의 순간이
    가슴에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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