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모녀 여행 후기_속초편

| 조회수 : 8,398 | 추천수 : 7
작성일 : 2026-02-26 20:28:34

2026년을 맞이하며, 지난해 제게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2025년, 엄마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거든요.
거창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여운이 길게 남는 일이었어요.

혹시 엄마와 여행을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유드려봅니다.

-------------------------------------------

 

 

2025년이 시작되면서, 나는 분기마다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아이가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엄마 없이도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니 한 번이라도
오롯이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결혼하고 20년.
그 긴 시간 끝에 우리는 처음으로 모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나랑 


‘ 나중에 ’ 라는 말로 미루지 말자 .
할 수 있을 때 ,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떠나자 .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
엄마는 생각보다 더 환하게  “ 좋지 !”라 고 대답했다 .

우리는 그렇게 속초로 향했다 .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언니랑 

 

동해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던 그날 .
언니와 나는 커피를 마시고 ,
엄마는 바다를 바라봤다 .
우리는 말없이 같은 풍경을 함께했다  .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하루였다 .

 

여행지를 속초로 정한 건
좋아하는 여행지이기도 했지만 , 익숙한 곳이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곳 ,
설렘과 안심이 함께 공존하는 곳 .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잠든 얼굴을 봤다 .

명절에 친정에 가도 밥만 먹고 서둘러 돌아오기 바빴을 뿐 자고 온 적은 거의 없었다 .

결혼 후에 친정을 가면 엄마는 늘 바빴다 .

음식을 하고 , 설거지를 하고 , “너는 좀 쉬어 ” 하며 손주를 안고 돌아다녔다 .

엄마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쉰 적이 없었다 .

그러니 자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

 

여행지에서 조용히 잠든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내가 몰랐던 시간이 스쳤다 .

엄마도 많이 변했다 .

딸도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웃음 주름이 깊어진 얼굴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시렸다 .

우리 엄마는 원래 슬플 때도 웃는 사람이니까 .

웃음 주름 속에도 엄마의 고단한 세월이 보였다. 

 

 

 

엄마는 끝내 엄마다 .

속초 하나로마트의 딸기 코너에서 언니가 말했다 .  
“ 내가 먹을 딸기를 고르는 건 처음이야 . 그동안은 ㅇㅇ이 입에 넣어주느라 바빴지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가 딸기 두 다라이 (!) 를 집어 들었다 .

“ 이건 너 혼자 다 먹어 .”

엄마는 딸기를 들고 이미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

그 때 깨달았다 .

자식이 아무리 커도 ,
엄마 눈에는 여전히 ‘ 더 먹여야 할 아이 ’ 라는 걸 .

그래서 엄마는 , 끝내 엄마다 .

 

 

동명항생선숯불구이로 급하게 변경한 조식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엄마의 취향도 있었다 .

아침 식사로 두부 백반을 먹자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

“나는 두부 싫어해"

가마솥에 집두부를 만들며 해먹이던 엄마인데..  .

딸은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 .

   

 

내 사랑 라또래오 

 

82 쿡에 모녀 여행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

운전기사에 수다를 떠느라 휴대폰 꺼낼 틈도 없었다 .

그래도 괜찮다 .

마음에 추억이 한 가득 남았으니까 .

 

 

낙산사에서 엄마랑. 날이 포근해서 패딩이 거추장스러웠던 날. 

 

 

모녀 여행이라고 해서 우아하고 감동적이기만 할 리 없다 .
싸움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 탑재다 .

마침 새로 오픈한 낙산사 찻집에서 개업(?) 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엄마.

하나를 집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를 더 잡으려 했다  .

그 순간,

"엄마, 한 테이블에 하나만! ”  

대문자인  T 작은 딸의 냉정한 한마디 .

엄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금세 삐쳤고  ,
대문자 F인  큰 딸은 눈이 째지게 여동생을 흘겨봤다.

'지금 그 말을 꼭 해야 했니?'라는 질책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태세전환.

“ 엄마 , 더 드세요오~~~ 부족하면 이따가 나가서 열 개 더 사다드릴게요. ”

다정함을 장착하고, 떡 하나를 더 챙겨왔다. 

엄마는 떡 하나를 마저 다 먹고 웃었다.

그렇다 .

싸우고 , 편들고 , 다시 웃는 것까지 포함해야 모녀 여행이 완성이다  .

 

 

 

여행이 끝난 뒤 ,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 우리 좀 더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엄마의 한 마디에 벌써 다음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엄마와의 여행을 권해보고 싶다 .
사진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 중간에 싸움이 있어도 괜찮다 .

엄마와 딸이 아니라 어느 순간 친구처럼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 .

다시 보게 되는 얼굴 , 처음으로 알게 되는 취향 .

 

여행에서 가장 값지게 남은 건 풍경  , 음식도 아닌

"우리 좀 더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

여행 이후 세 모녀는 속초 바다만큼 깊어졌다 .

 

발상의 전환 (borabora)

82cook은 나의 온라인 친정.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은 K-엄마입니다.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짱
    '26.2.26 9:00 PM

    오래전에
    엄마 칠순이라고 모시고 제주를 갔는데
    초딩이 둘과 사위까지 함께..
    손주들 챙기고 사위 눈치도 보셨을텐데
    그땐 그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걷는게 예전같지 않아 여행 가자 하기가..

    발상님..어머니 건강하실때 모녀여행 많이 다니세요..
    응원합니다~~!!!

    저도 엄마모시고
    가까운곳으로 드라이브 다녀와야겠어요..

  • 싱아
    '26.2.28 12:10 PM

    너무 오랜만이라 아짱님 닉네임에 잠깐 아는척
    벌써 이십년이 다되어 가는거 보니 애기도 성년이 되었겠어요.
    잘 지내죠?

  • 2. 그린
    '26.2.26 10:42 PM

    발상님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럽네요.
    뭐가 바쁘다고 44살에 훌쩍 떠나가신 울엄마...
    엄마는 아무리 나이들어도 늘 그립고 보고싶은 존재인가봐요. 모녀여행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 3. 로즈버드
    '26.2.26 10:59 PM

    발상님 반갑네요.
    예전에 mbc 파업할때 삼계탕 준비하신다 했던가 해서
    조금 보탰던 기억이 있어요. 옥당지님이 언니셨던것 같고...기억이 가물가물. . .ㅠㅠ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건강한 두다리로 걸어다니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저의 어머님은 돌아가시기전 잘 못걸으셔서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밖에 나가면 화장실때문에
    여행은 언감생심이고 가까운 맛집도 못가셨어요.
    어머니랑 더 늦기전에 여행 많이 다니세요.

  • 4. dork3
    '26.2.26 11:13 PM

    엄마 살아계실때 제주도를 몇번 모시고 갔고 국내 여기저기 당일로 모시고 다녔던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엄마 가신지 1년 됐는데 너무 아쉽고 보고싶고 죄송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네요

  • 5. 쉐라메르
    '26.2.27 11:04 AM

    친구들이랑 3월에 속초여행 계획이있어
    들어왔는데 참 마음 따듯해지는
    여행후기내요
    잘 보았습니다

  • 6. 민서네빵집
    '26.2.27 7:23 PM

    너무 잘하셨습니다.
    80에도 건강하셔도계속 그럴 줄 여행이 어녀운 시기가 빨리 닥칠 줄 몰랐습니다. 너무 잘 하셨어요

  • 7. 꽃편지
    '26.2.28 11:38 AM

    답글 달고 싶은 마음에 오랫만에 로그인 했어요.
    부러움 두가지를 주는 글이네요 ㅎㅎ
    걸으실 수 있는 엄마, 그리고 자매.
    이제 시간 여유가 있는데 엄마는 걷지 못하는
    몸이 되셨어요.
    그런 속상함과 아쉬움을 속깊게 나눌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좀 위로가 되었을려나요...
    발상의전환님의 글이 딸들과 엄마들에게
    좋은 출발을 만들어 줄 거 같아요.
    좋고도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8. 싱아
    '26.2.28 12:05 PM

    몇일전 낙산사 정월 기도 다녀 왔는데 스쳤을수도 있을꺼 같네요.ㅎ
    저도 엄마랑 여행을 고민중인데 너무 안맞는 모녀라.
    여동생 꼬셔서 다녀와야 할까봐요.

  • 9. 소년공원
    '26.2.28 12:40 PM

    즐거운 모녀 여행이었네요.
    속초 풍경 멋있어요.
    그나저나 그댁 아이들이 이제 벌써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군요.
    하긴, 저희집 코난군도 이제 곧 대학생이랍니다 ㅎㅎㅎ

  • 10. 챌시
    '26.3.2 10:39 AM

    멋집니다. 사진 한장한장 몇번이나 봤어요.
    이런 단촐하게 떠나는 여행이 진리네요.
    엄마와의 여행, 저는 엄마 팔순기념이라고 나름 거대하게
    가족모두, ㅠㅠ 저만 엄마랑 가려고했는데, 자기들도
    가겠다해서 온가족이 전부.가는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축하여행이 되버려서…그 누구도 아쉬운점이
    남는 그런 여행을.했어요. 저도 여자형제가 있다면
    참 좋았을것같아요. 다행이라면, 자라면서 딸이 그런역할을
    많이 해준다는점..저랑 비슷하면서도 다른점이 많아서
    잘 부딪히지만. 지금처럼 떨어져있다보니 참 든든해요. ㅋ ㅋ

  • 11. chelsea
    '26.3.3 2:16 PM

    딸기다라이에 울고 ...큰딸이 삐진엄마 달래는데 욼고 ....

  • 12. merong
    '26.3.5 12:00 PM

    담담히 쓰신 것 같은데 왜 눈가가 촉촉해질까요?

    제가 멀리 살아서 페이스 타임을 자주 해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서일까요? 이번 겨울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한국 방문을 했는데 혼자 되신 엄마께서 엄마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하시더라구요. 엄마 옆에 누우니 볼에 뽀뽀를 해주시는데. 전 같으면 아휴 징그럽게 왜그러세요하고 얼굴을 확 돌렸을 텐데 이번엔 오십 된 딸도 아직 엄마 눈에는 아이인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혹시 발상님 당근하러 나갔다가 상대가 언니였더라는 사연 있지 않았나요? 너무 웃긴 사연이라 아직도 기억나요. 언니도 팔이쿡 회워이셨던 것 같은데 이제 아이디가 기억이 안 나네요.

    .

  • 13. Harmony
    '26.3.7 9:02 AM

    부러운 여행이네요.
    저도 오래전 제주에 부모님 모시고 간 여행이 마지막으로,
    이제는 다들 돌아가시고
    그리운 기억이 되어 마음이 아리네요.

    나중에 라는 말로 미루지 말자. !!
    좋은 말입니다.
    기억할게요.^^

  • 14. 혼술아재
    '26.3.30 6:21 PM - 삭제된댓글

    ┈┈┈┈▕▔╲┈┈┈┈┈┈
    ┈┈┈┈┈▏▕┈┈┈┈┈┈
    ┈┈┈┈┈▏▕▂▂▂┈┈┈
    ▂▂▂▂╱┈▕▂ ▂▂▏┈┈
    ▉▉▉┈┈┈▕▂▂▂▏┈┈
    ▉▉▉┈┈┈▕▂▂▂▏┈┈ 엄지
    ▔▔▔▔╲▂▕▂▂▂▏┈┈척 !

  • 15. 혼술아재
    '26.3.30 6:23 PM

    ┈┈┈┈▕▔╲┈┈┈┈┈┈
    ┈┈┈┈┈▏▕┈┈┈┈┈┈
    ┈┈┈┈┈▏▕▂▂▂┈┈┈
    ▂▂▂▂╱┈▕▂ ▂▂ ┈┈모녀분의
    ▉▉▉┈┈┈▕▂▂▂▏┈┈속초 여행
    ▉▉▉┈┈┈▕▂▂▂▏┈┈엄지
    ▔▔▔▔╲▂▕▂▂▂▏┈┈척 !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169 솔이생일&아들래미도시락 1 솔이엄마 2026.04.12 260 1
41168 저도 있는 사진 억지로 탈탈 !! 10 주니엄마 2026.04.11 1,524 1
41167 탈탈 털어온 음식 사진 및 근황 :-) 49 소년공원 2026.04.08 5,933 0
41166 뉴욕에서 발견한 미스터션샤인 글로리호텔 24 쑥과마눌 2026.04.03 6,589 7
41165 친구들과 운남여행 44 차이윈 2026.03.28 7,595 5
41164 행복만들기 194차 봉사후기) 2026년 3월 감자탕과 쑥전,.. 9 행복나눔미소 2026.03.25 5,796 9
41163 몬트리올 여행 16 Alison 2026.03.21 6,859 5
41162 이빵 이름좀 알려주세요 2 ㅂㅈㄷㄱ 2026.03.12 8,995 1
41161 193차 봉사후기) 2026년 2월 설맞이, LA갈비구이와 사골.. 7 행복나눔미소 2026.03.09 4,668 6
41160 두쫀쿠 지나고 봄동이라길래 4 오늘아침에 2026.03.09 7,228 3
41159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20 ilovemath 2026.03.07 5,365 6
41158 키톡의 스타 들이 보고 싶어요. 22 김명진 2026.03.04 7,076 6
41157 대만 수능 만점 받은 딸 자랑은 핑계고~ 48 미미맘 2026.03.03 8,474 11
41156 제 최애 가수는요. 19 챌시 2026.03.03 6,333 3
41155 모녀 여행 후기_속초편 15 발상의 전환 2026.02.26 8,398 7
41154 pão de queijo 브라질리언 치즈 빵 만들기 26 소년공원 2026.02.16 9,120 5
41153 애기는 Anne가 되고,.. 14 챌시 2026.02.13 9,564 5
41152 절에서 먹은 밥 시리즈 올려봅니다 10 써니 2026.02.09 10,031 3
41151 베트남 다녀오고 쌀국수에 미친자가 되어버린 26 솔이엄마 2026.02.04 10,625 7
41150 192차 봉사후기) 2026년 1월 석화찜과 한우스테이크, 우렁.. 8 행복나눔미소 2026.01.28 6,888 5
41149 강제 디지털 디톡스... 를 준비중입니다 ㅠ.ㅠ 27 소년공원 2026.01.25 12,034 4
41148 돼지껍질 묵 만들어 봤습니다 20 주니엄마 2026.01.21 6,620 3
41147 안녕하세요, 자스민 딸입니다. (결혼식 감사인사) 47 jasminson 2026.01.17 11,203 12
41146 혼자먹는 저녁 소개 17 챌시 2026.01.15 10,902 3
41145 191차 봉사후기 ) 2025년 12월 소불고기전골과 달걀말이 7 행복나눔미소 2026.01.09 6,392 6
41144 굴 꽈리고추 알아히오 19 챌시 2026.01.07 8,228 3
41143 30 그리고 60 19 주니엄마 2026.01.06 8,535 2
41142 콩장만들어보기 7 박다윤 2026.01.06 5,190 4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