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을 맞이하며, 지난해 제게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2025년, 엄마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거든요.
거창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여운이 길게 남는 일이었어요.
혹시 엄마와 여행을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유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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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이 시작되면서, 나는 분기마다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아이가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엄마 없이도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니 한 번이라도
오롯이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결혼하고 20년.
그 긴 시간 끝에 우리는 처음으로 모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나랑
‘
나중에
’
라는 말로 미루지 말자
.
할 수 있을 때
,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떠나자
.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
엄마는 생각보다 더 환하게
“
좋지
!”
하고 답했다
.
우리는 그렇게 속초로 향했다 .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언니랑
동해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던 그날
.
언니와 나는 커피를 마시고
,
엄마는 바다를 바라봤다
.
우리는 말없이 같은 풍경을 함께했다
.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하루였다 .
여행지를 속초로 정한 건
좋아하는 여행지이기도 했지만
,
익숙한 곳이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곳
,
설렘과 안심이 함께 공존하는 곳
.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잠든 얼굴을 봤다 .
명절에 친정에 가도 밥만 먹고 서둘러 돌아오기 바빴을 뿐 자고 온 적은 거의 없었다 .
결혼 후에 친정을 가면 엄마는 늘 바빴다 .
음식을 하고 , 설거지를 하고 , “너는 좀 쉬어 ” 하며 손주를 안고 돌아다녔다 .
엄마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쉰 적이 없었다 .
그러니 자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
여행지에서 조용히 잠든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내가 몰랐던 시간이 스쳤다 .
엄마도 많이 변했다 .
딸도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웃음 주름이 깊어진 얼굴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시렸다 .
우리 엄마는 원래 슬플 때도 웃는 사람이니까 .
웃음 주름 속에도 고단한 세월이 보였다.
엄마는 끝내 엄마다 .
속초 하나로마트의 딸기 코너에서 언니가 말했다
.
“
내가 먹을 딸기를 고르는 건 처음이야
.
그동안은 ㅇㅇ이 입에만 넣어줬지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가 딸기 두 다라이 (!) 를 집어 들었다 .
“ 이건 너 혼자 다 먹어 .”
엄마는 딸기를 들고 이미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
그 순간 알았다 .
자식이 아무리 커도
,
엄마 눈에는 여전히
‘
더 먹여야 할 아이
’
라는 걸
.
그래서 엄마는 , 끝내 엄마다 .
동명항생선숯불구이로 급하게 변경한 조식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엄마의 취향도 있었다 .
아침 식사로 두부 백반을 먹자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
“나는 두부 싫어해"
가마솥에 집두부를 만들던 사람인데.. .
딸은 그걸 이제야 알았다 .
내 사랑 라또래오
82 쿡에 모녀 여행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
운전기사에 수다를 떠느라 휴대폰 꺼낼 틈도 없었다 .
그래도 괜찮다 .
마음에는 가득 남았으니까 .
낙산사에서 엄마랑. 날이 포근해서 패딩이 거추장스러웠던 날.
모녀 여행이라고 해서 우아하고 감동적이기만 할 리 없다
.
싸움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 탑재다
.
새로 오픈한 낙산사 찻집에서 개업(?) 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엄마.
하나를 집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를 더 집으려 했다 .
그 순간,
"엄마, 한 테이블에 하나만! ”
대문자 T 작은 딸의 냉정한 한마디 .
엄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금세 삐쳤고
,
대문자
F
큰 딸은 눈이 째지게 여동생을 흘겨봤다.
'지금 그 말을 꼭 해야 했니?'라는 질책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태세전환.
“ 엄마 , 더 드세요. 부족하면 이따가 나가서 열 개 더 사다드릴게요. ”
다정함을 장착하고, 떡 하나를 더 챙겨왔다.
엄마는 떡 하나를 마저 다 먹고 웃었다.
그렇다 .
싸우고 , 편들고 , 다시 웃는 것까지 포함해야 모녀 여행이다 .
여행이 끝난 뒤 ,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 우리 좀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엄마의 한 마디에 벌써 다음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엄마와의 여행을 권해보고 싶다
.
사진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
중간에 싸움이 있어도 괜찮다
.
엄마와 딸이 아니라 어느 순간 친구처럼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 .
처음으로 보게 되는 얼굴 , 처음으로 알게 되는 취향 .
여행에서 가장 값지게 남은 건 풍경도 , 음식도 아닌
"우리 좀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
여행 이후 세 모녀는 속초 바다만큼 깊어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