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모녀 여행 후기_속초편

| 조회수 : 332 | 추천수 : 0
작성일 : 2026-02-26 20:28:34

2026년을 맞이하며, 지난해 제게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2025년, 엄마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거든요.
거창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여운이 길게 남는 일이었어요.

혹시 엄마와 여행을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유드려봅니다.

-------------------------------------------

 

 

 

 

 

 

2025년이 시작되면서, 나는 분기마다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아이가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엄마 없이도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니 한 번이라도
오롯이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결혼하고 20년.
그 긴 시간 끝에 우리는 처음으로 모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나랑 


‘ 나중에 ’ 라는 말로 미루지 말자 .
할 수 있을 때 ,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떠나자 .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
엄마는 생각보다 더 환하게 “ 좋지 !” 하고 답했다 .

우리는 그렇게 속초로 향했다 .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랑 언니랑 

 

동해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던 그날 .
언니와 나는 커피를 마시고 ,
엄마는 바다를 바라봤다 .
우리는 말없이 같은 풍경을 함께했다 .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하루였다 .

 

여행지를 속초로 정한 건
좋아하는 여행지이기도 했지만 , 익숙한 곳이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곳 ,
설렘과 안심이 함께 공존하는 곳 .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잠든 얼굴을 봤다 .

명절에 친정에 가도 밥만 먹고 서둘러 돌아오기 바빴을 뿐 자고 온 적은 거의 없었다 .

결혼 후에 친정을 가면 엄마는 늘 바빴다 .

음식을 하고 , 설거지를 하고 , “너는 좀 쉬어 ” 하며 손주를 안고 돌아다녔다 .

엄마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쉰 적이 없었다 .

그러니 자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

 

여행지에서 조용히 잠든 엄마를 보며 그동안 내가 몰랐던 시간이 스쳤다 .

엄마도 많이 변했다 .

딸도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웃음 주름이 깊어진 얼굴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시렸다 .

우리 엄마는 원래 슬플 때도 웃는 사람이니까 .

웃음 주름 속에도 고단한 세월이 보였다. 

 

 

 

엄마는 끝내 엄마다 .

속초 하나로마트의 딸기 코너에서 언니가 말했다 .  
“ 내가 먹을 딸기를 고르는 건 처음이야 . 그동안은 ㅇㅇ이 입에만 넣어줬지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가 딸기 두 다라이 (!) 를 집어 들었다 .

“ 이건 너 혼자 다 먹어 .”

엄마는 딸기를 들고 이미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

그 순간 알았다 .

자식이 아무리 커도 ,
엄마 눈에는 여전히 ‘ 더 먹여야 할 아이 ’ 라는 걸 .

그래서 엄마는 , 끝내 엄마다 .

 

 

 

동명항생선숯불구이로 급하게 변경한 조식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엄마의 취향도 있었다 .

아침 식사로 두부 백반을 먹자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

“나는 두부 싫어해"

가마솥에 집두부를 만들던 사람인데.. .

딸은 그걸 이제야 알았다 .

 

내 사랑 라또래오 

 

82 쿡에 모녀 여행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

운전기사에 수다를 떠느라 휴대폰 꺼낼 틈도 없었다 .

그래도 괜찮다 .

마음에는 가득 남았으니까 .

 

 

낙산사에서 엄마랑. 날이 포근해서 패딩이 거추장스러웠던 날. 

 

 

모녀 여행이라고 해서 우아하고 감동적이기만 할 리 없다 .
싸움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 탑재다 .

새로 오픈한 낙산사 찻집에서 개업(?) 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엄마.

하나를 집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를 더 집으려 했다 .

그 순간,

"엄마, 한 테이블에 하나만! ”  

대문자 T 작은 딸의 냉정한 한마디 .

엄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금세 삐쳤고 ,
대문자 F 큰 딸은 눈이 째지게 여동생을 흘겨봤다.

'지금 그 말을 꼭 해야 했니?'라는 질책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태세전환.

“ 엄마 , 더 드세요. 부족하면 이따가 나가서 열 개 더 사다드릴게요. ”

다정함을 장착하고, 떡 하나를 더 챙겨왔다. 

엄마는 떡 하나를 마저 다 먹고 웃었다.

그렇다 .

싸우고 , 편들고 , 다시 웃는 것까지 포함해야 모녀 여행이다 .

 

 

 

여행이 끝난 뒤  ,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 우리 좀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엄마의 한 마디에 벌써 다음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엄마와의 여행을 권해보고 싶다 .
사진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 중간에 싸움이 있어도 괜찮다 .

엄마와 딸이 아니라 어느 순간 친구처럼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 .

처음으로 보게 되는 얼굴 , 처음으로 알게 되는 취향 .

 

여행에서 가장 값지게 남은 건 풍경도 , 음식도 아닌

"우리 좀 친해진 것 같지 않니 ?” 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

여행 이후 세 모녀는 속초 바다만큼 깊어졌다 .

 

발상의 전환 (borabora)

82cook은 나의 온라인 친정.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은 K-엄마입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짱
    '26.2.26 9:00 PM

    오래전에
    엄마 칠순이라고 모시고 제주를 갔는데
    초딩이 둘과 사위까지 함께..
    손주들 챙기고 사위 눈치도 보셨을텐데
    그땐 그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걷는게 예전같지 않아 여행 가자 하기가..

    발상님..어머니 건강하실때 모녀여행 많이 다니세요..
    응원합니다~~!!!

    저도 엄마모시고
    가까운곳으로 드라이브 다녀와야겠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162 모녀 여행 후기_속초편 1 발상의 전환 2026.02.26 332 0
41161 pão de queijo 브라질리언 치즈 빵 만들기 18 소년공원 2026.02.16 6,073 3
41160 애기는 Anne가 되고,.. 13 챌시 2026.02.13 6,281 4
41159 절에서 먹은 밥 시리즈 올려봅니다 9 써니 2026.02.09 7,506 3
41158 베트남 다녀오고 쌀국수에 미친자가 되어버린 21 솔이엄마 2026.02.04 8,558 5
41157 192차 봉사후기) 2026년 1월 석화찜과 한우스테이크, 우렁.. 7 행복나눔미소 2026.01.28 5,979 5
41156 강제 디지털 디톡스... 를 준비중입니다 ㅠ.ㅠ 27 소년공원 2026.01.25 11,086 4
41155 돼지껍질 묵 만들어 봤습니다 20 주니엄마 2026.01.21 5,745 3
41154 안녕하세요, 자스민 딸입니다. (결혼식 감사인사) 45 jasminson 2026.01.17 9,813 11
41153 혼자먹는 저녁 소개 17 챌시 2026.01.15 9,822 3
41152 191차 봉사후기 ) 2025년 12월 소불고기전골과 달걀말이 7 행복나눔미소 2026.01.09 5,934 6
41151 굴 꽈리고추 알아히오 19 챌시 2026.01.07 7,585 3
41150 30 그리고 60 19 주니엄마 2026.01.06 7,940 2
41149 콩장만들어보기 7 박다윤 2026.01.06 4,648 4
41148 82님들 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6 진현 2026.01.01 8,916 4
41147 딸과 사위를 위한 한식 생일상 42 에스더 2025.12.30 12,143 6
41146 챌시네소식 27 챌시 2025.12.28 6,415 2
41145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한다 -82쿡 이모들의 결혼식 출동 후기 .. 36 발상의 전환 2025.12.21 16,394 24
41144 은하수 ㅡ 내인생의 화양연화 19 은하수 2025.12.20 7,159 4
41143 미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다이어트 기록 23 소년공원 2025.12.18 7,430 4
41142 올해김장은~ 16 복남이네 2025.12.17 6,627 5
41141 토마토스프 5 남쪽나라 2025.12.16 5,214 2
41140 솥밥 3 남쪽나라 2025.12.14 6,958 3
41139 김장때 8 박다윤 2025.12.11 7,846 3
41138 밀린 빵 사진 등 10 고독은 나의 힘 2025.12.10 7,466 3
41137 리버티 백화점에서.. 14 살구버찌 2025.12.09 7,325 5
41136 190차 봉사후기 ) 2025년 11월 갈비3종과 새우토마토달걀.. 6 행복나눔미소 2025.12.08 3,897 5
41135 케데헌과 함께 했던 명왕중학교 인터내셔널 나잇 행사 24 소년공원 2025.12.06 8,594 6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