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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응모] 아직도 못싸준 김밥...

| 조회수 : 3,447 | 추천수 : 27
작성일 : 2006-10-17 09:54:36
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 다닐때 만났던 친구인데, 키도 작고, 덩치도 작고, 그렇지만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하고 똑부러지던 내친구가 있었습니다.

몸이 많이 약하고 않좋았던 내친구는 왕복 거의 4시간 가까운 통학거리에도 지각한번, 결석한번
없이 장학금도 받아가며 그렇게 4년을 다녔습니다.

처음 1학년 입학하고선, 그 친구가 그렇게 부담스러울수가 없었습니다.
약간 낯가림이 있는 내 성격에 활달하고, 내게 달라 붙는 그 친구가
부담스러워 그친구를 가급적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버스타는 곳이 같았던 그 친구와 전 늘 동행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같은과 친구들은 그 친구와 내가 굉장히 친한 사이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1학년 겨울방학
그 친구에게서 커다란 소포박스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친구가 직접만든 그당시 유행하던 지점토인형, 책... 커다란 박스한가득
뭐가 그리도 많이 들었던지...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편지 한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1년을 지나면서, 제게 느낀 감정과 그리고 내가 그친구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그런데 전 그 편지를 읽으면서, 그친구한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고,
내가 평생 살아갈 동안 이런 친구는 다시 못만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방학을 보내고 2학년부터는 그 친구와 실과 바늘이 되었습니다.
과 예비역들이 인정한 커플(?)이 되어었지요.

한 소심 하는 내성격상 과 남학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했는데
누군가 시험기간에 제 노트를 빌려가는 학생은
두고두고 그 친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고,
그 친구가 무서워 제게 아무도 싫은 소리, 뭔가를 빌려가는 일들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예쁜 신발을 사와서 네가 신으면 예쁠것 같아서... 예쁜 티를 사와선 또 네가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하고 제게 내밀었습니다.

제가 부담스럽다고 한번 말하면 다시는 똑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던 친구...

그 친구가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휴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많이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렸을 내 친구에게 전 안된다고 끝까지 다녀야 한다고
설득을 했고, 그당시 아빠가 돌아가셔서, 제가 굉장히 힘들어 할때였는데
네가 없으면 나도 학교 다니가가 너무 힘들것 같다... 순전히 제 생각에서만
얘기를 해서 그친구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 힘든 통학길을 순전히 저 하나때문에 인내했던 내 친구...

3학년 가을에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 여정이 너무 힘이 들었던 내친구는
  설악산에 오르는 대신 자신은 쉬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남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기가 따라 나서겠다는 통에 전 그냥 그 친구를 혼자 두고 다른친구들과
산엘 올랐습니다.

들꽃 하나를 따와 여관방을 들어서던 순간 파리하게 누워 있던 내친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건강했던 친구들도 힘든 여정의 졸업여행길을 내 친구는 힘들다는 한마디 없이 따라 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갔던 주왕산...
그친구와 보조를 맞추며 걸어가는데 자기 때문에 산에도 못오르고,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못해서 어떻게 하냐며 내내 미안해 하던 내친구...

4학년이 되고 얼마 안된 어느날
수업이 일찍 끝나 친구와 우리집에 와서 김밥을 싸서 먹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맛있다를 외치며 5줄을 둘이서 그자리에서 해치웠습니다.

졸업을 하고 그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내친구는
집에서 동네에 나오는 것 조차 힘이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그 친구를 만나러 친구의 집을 찾아 갔고, 그 보다 더 몸이 안좋아 졌을땐
제가 가겠다고 하면 한사코 찾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화받는 것 조차 너무 힘이 들어 전화하면 그냥 끊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늘 궁금하고 마음에 걱정이었지만, 회사와 바쁘다는 핑계로 그 친구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4월의 어느날 그 친구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1년이 넘도록 제가 전화하거나, 아니면 전화를 해도 못받던 친구의 전화는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네가 만들어준 김밥이 먹고 싶다고...
김밥 싸서 자기집에 놀러 오라고...

마침 노동절이 있어서 쉬니까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다른 일때문에
그날 서울에 가고 말았습니다.

굉장히 그 친구가 아쉬워 했는데 결국엔 전 그 친구와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일요일 오전 그 친구의 남동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 친구 하늘나라 갔다고...

심장이 않좋아서 늘 손가락이 파아랗던 내친구...
그래서 늘 손가락에 메뉴큐어가 칠해져 있었던...
늘 퉁퉁부은 손가락 때문에 절대로 손을 내밀지 않았던 내친구...

넌 할 수 있다는 내 말한마디에 어렵고 힘든 병원생활도 열심히 견디어준 내 친구...

네가 없으면 나도 학교 못다며 그 한마디에 4년을 끝까지 내 옆에서 내게 힘이 되준 내친구...

그런데 난 내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던 그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거절했습니다...

그친구의 죽음 이후 한동안 김밥은 쳐다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너무너무 미안함 마음때문에....

그친구가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 있다면

김밥싸서 주왕산 단풍을 다시 한번 보러 가고 싶습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은미숙
    '06.10.17 12:27 PM

    님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 2. 몽돌맘
    '06.10.17 12:55 PM

    끝부분가서 설마 했는데...넘 슬퍼 눈물이 났어여..이 가을 님에겐 정말 아름답고도 슬픈 단풍같은 추억같네여..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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