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듯
추석 4일전에 제사가 있고,
추석 3일전엔 벌초를 갔고,
추석 2일전엔 장보러 갔고,
추석 하루전엔 음식장만을 한다.
그런데 추석전날은 내 생일이다.
추석날 차례를 치르면
시누이 식구들이 달려온다.
어차피 추석 다음날이 시어머니 생신이기 때문이다.
벌초하러 가서 남편이 예초기를 메고 하는 것을 보니,
항상 남편이 주말도 없이 출근하고 바빠서,
벌초도 공휴일에 겨우 시간내서 왔는데,
내가 예초기를 다룰 줄 알아야
비상시에 나라도 벌초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놔두라는 남편말에도 고집을 피워서 예초기를 작동시켜 보았다.
예초기를 등에 매고 날부분을 들고 비탈진 산소주변의 잡초들을 베어내는데,
재밌었다.
옆에서 시어머니가 "야야, 아들보다 며느리가 훨씬 잘한다" 면서 좋아하신다.
30분 작업하고 쉬었다가 다시 산소에 가보니, 남편이 많이 해놓았는데도 덜 된데가 있었다.
다시 예초기를 메고 잡초를 제거하였다.
원래 추석전날 내 생일이지만, 일찌기 양력으로 내 생일을 보냈었기에
그 날은 시어머니 생신상을 무엇으로 차릴까 내내 고민을 했다.
차례 음식을 장만하기에 앞서 일단 집안 대청소를 하고,
생신상과 차례상 장을 보느라 몇 번 왔다갔다 했다.
시어머니께서 "야야~ 나는 저녁에 올테니깐 네가 미리 전을 부쳐놓아라"
그런데 생각해보니, 음식들이 하룻밤 자고 담날 아침에 쓸 건데,
미리 부쳐놓으면 아무래도 신선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어머님 너무 미리 부치면 위생상 안 좋을 것 같아요. 저녁에 전을 부칠께요"
시어머니께서 의아하게 생각하시면서도 알았다고 하셨기에...
낮에는 생신상 준비에만 전념했다.
저녁에 오신 시어머니께서 얼마나 화를 내는지,
이유인즉 도착 전에 미리 음식을 해놓지 않았고,
음식을 이제서야 장만하는 법이 어딨냐고 난리다.
나도 이유를 알아듣게 설명했지만, 그 화는 오래 오래 갔다.
실은 왜 내 혼자서 음식장만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갔지만...
시어머니 기분 안 좋은 걸 풀어드릴려고,
차례음식 장만을 끝내고 저녁 9시쯤 찜질방에 가서
태국맛사지를 받게 해 드렸다.
이래저래 기분이 거의 풀린 것 같았다.
담날
차례를 마치고 오후가 되자,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친정에 가실려 해서,
아직 결혼을 안한 큰 시누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나중에 큰 시누가 말이
시어머니가 친정에서 며느리 자랑을 그렇게 하셨단다.
"울 며느리는 제사장만 보는게 아니라 꼭 내 생일상은 별도로 장봐서 어디서 맛있고 신기한 음식만 많이 차려준다. 그러고 갸가 솜씨도 얼마나 좋은지 아나?"
시누들 식구들이 오후부터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항상 밝게 웃으며 진심으로 우리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도착하기 전에 저녁 준비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남편에게 이것저것 시켰다.
남편은 야채들을 씻어서 주고, 중간에 잔설겆이를 해주었다.
둘째시누가 좀 일찍 왔다.
난 시누들이 오는 것이 좋다. 오면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시어머니 흉도 보고, 그러면 시누는 항상 내 편을 들어주고, 합리적으로 방향설정도 해 준다.
둘째시누의 시아버지도 추석다음날 생신인데,
항상 울 집에 오면 시누가..... "새언니가 이렇게 잘하면 제가 남편볼 면목이 없어요. 너무 비교되요."
그러면 내가 웃으면서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해요? 잘해야 해요? 못해야 해요?
"그래도 좋네요. 친정와서 이렇게 맛난 음식 먹으면 어쩐지 제가 남편앞에 으쓱해져요."
사실 은연중에 모두들 나를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나도 아가씨들이 일년에 두번 오는데, 이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저녁을 먹고나니 아가씨들이 설겆이를 다 해준다.
새언니는 앉아 있으란다.
그래도 설겆이는 안해도 이것저것 정리하고 치워야지, 내 살림인데...
끝나고 나서 모두 산에가서 산책을 하고 왔다.
돌아와서 술상과 다과상을 봤다.
마침 도토리묵 선물 들어온 것이 있어 묵 무침을 만들려고 하자,
시어머니가 앉아 있으란다. 본인이 만드신다구.
내가 저녁마다 매일 한시간 반씩 아들 영어공부를 가르쳐주면서, 아들 친구 2명도 함께 가르쳐준다.
그 중의 한 명의 어머니가 추석 이틀전에 와서 고맙다고 와인 2병을 사주었다.
그 와인을 술상에 내놓았는데,
시어머니가 나에게 제일 먼저 술을 따라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네가 젤 애쓴다. 항상 고마운데도 서로 생각이 다르다보니 내가 잘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여기 한잔 받아라."
그러자 고모부들도 그런다.
"맞아요. 제일 애쓰지요.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처가집에 오는 것이 누구때문이겠어요?"
실은 나도 직장다니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우리 집 애들을 안 돌봐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새벽같이 울 집에 와서 아침밥 지어서 식구들 챙겨주고,
빨래며 청소며 도와주시니, 어떤 때는 맘이 울컥 고맙기도 하다.
평소 제사음식 장만은 시어머니가 하시는데,
명절음식만이라도 외며느리인 내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이젠 전의 양을 많이 많이 줄여서 재료준비해서 한시간만 집중하면 다 해낸다.

보글보글 동파육이 끓고 있다.
돼지고기를 적당하게 삶은 후에 차례상에 올렸었다.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보니, 겉으론 다 익은 것 같아도 핏물이 베어나왔다.
옆에 지키고 서서 5분 간격으로 5번 정도 더 찌르자 마지막엔 핏물이 안나왔다. 얼른 불을 껐다.
역시나 차례상 음복하는데 푸짐하게 썰어낸 돼지고기 한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졌다.
돼지고기를 일부러 큰 걸 사서 삶았기 때문에 돼지고기가 많이 남았다.
동파육을 하기 위해서 남겨두었다.
히트 레시피는 거의 졸이는 동파육이었기 때문에
중국 전통 동파육처럼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녹는 동파육을 하기 위해서 레시피를 따로 찾아보았다.
(양념장: 간장 3큰술, 청주 3큰술, 굴소스 1큰술, 치킨파우더 1큰술, 참기름, 노두유 1큰술, 설탕, 후춧가루 조금씩, 물 2컵)
없는 재료인 치킨파우더와 노두유는 빼고,
여기에다 마늘과 생강편을 넉넉하게 추가하고, 제사때 남은 밤과 대추를 넣어서 아주 약한 불에 2시간 정도 삶았다.
고기맛의 부드러움은 " 아주 약한 불에 오랫동안 "에 비결이 있다.

요렇게 완성이 되었다. 이것을 먹은 사람들의 반응.
식탁을 차리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좀있다가 5살 조카가 한마디 했다. "정말! 맛있다."
그러자 너도나도 "정말! 맛있다."
그리고 무쌈말이를 시작하였다.
원래는 라이스페이퍼로 월날쌈을 하려다가, 뜨거운 물에 적시는 절차가 번거로워서 무쌈으로 바꾸었다.

이번 차례음식으로 들어간 표고버섯전을 채썰고, 산적구이재료도 채썰어서 추가하면서,
파프리카를 넣어서 색을 만들었다.
땅콩소스를 만들어 가운데 놓고, 깻잎으로 띠를 만들어 쌌다.
그릇 선택을 잘못했고, 별로 꼼꼼하게 작업을 안해서 (실은 내가 만 것이 아니다. ㅡㅡ)
모양은 별로인데,
이것도 인기 좋았었다. ^^
두 접시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마른 새우를 갈아서 근대국을 끓였다.
큰 시누 이야기가 해물은 하나도 없는데, 국에서 은은한 해물맛이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맛을 내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멸치나 고기는 하나도 안넣구요.
근대국은 마른새우만 갈아서 찬물에 된장이랑 마늘찧은 것을 함께 넣어서 끓이면 정말 맛있어요.^^

br>제일 먼저 없어진 음식이 콩나물 잡채였다.
흔하디 흔한 잡채는 너무 많이 해서 일부러 이걸로 했다.
잡채의 최대 단점이 좀 느끼하다는 것인데,
콩나물 잡채는 살캉살캉 씹히는 시원한 맛이 당면과 잘 어우러진다.
불린 당면을 후라이팬에 삶는다고 표현해야 맞다.
외간장+설탕+후추약간 넣은 물에다 삶아서 약간 덜 익었을 때
다듬은 생 콩나물을 후라이팬에 넣어서
물약간 참기름 약간 더 넣어서 볶는다.
콩나물이 완전히 익으면 담아낸다.

추석에 남은 배와 사과를 납작하게 썰어서
레시피대로 매실소스에 넣어서 버무렸다.
이건 별로였다. 왜냐면 고춧가루가 너무 매웠다.
다음엔 양념의 양을 바꾸어서 시도해봐야겠다.

메인 요리는 김치찜이었다.
지난겨울엔 시어머니가 가져온 김장김치가 인기가 없어서 아직도 있다.
시어머니가 버릴려고 하는 것을 못 버리게 했었는데,
요즘 그걸로 이런저런 요리를 많이 해 먹는다.
이번엔 돼지갈비를 사다가 밑에 깔고, 사골육수를 부은 후에
김치를 마지막에 덮어서 4시간을 약한 불에 익혔다.
일단 냄새부터 유혹하지만,
돼지고기냄새가 하나도 안나면서도 입에 살살녹는 돼지갈비맛도 일품이었다.
추석 밤 늦게까지 아가씨네 식구들과 놀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다같이 밥상차려 먹었다.
먹고나니, 아가씨들이 어서 친정가라고 등떠민다.
친정가서 밤늦게 오니, 역시나
온 집안에 광이 번쩍번쩍 난다.
아가씨들이 설겆이에 간단한 이불빨래에
진공청소기, 스팀청소기 다 돌려놓고 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