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딱 십 년 전에 유학을 떠났을 때 82쿡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혜경 샘 책 열심히 다 사 모으고 요리도 따라해 보는 열렬한 팬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공부도 마치고 7개월짜리 아기 엄마가 되었네요. ^^ 전 지금도 미국 살고 있고 여전히 82쿡 열심히 보고 있지요. 그러나 지난 십 년 간 글은 딱 한 번 밖에 안 올려봤는데, 오늘 1월 24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어서 용기를 내어 글 올립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1월 24일이죠? 이미 많은 분들이 직장에 나가셨을테니 이제 와서 오늘은 보라색 옷을 입어주십사 부탁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아직 기회가 있으신 분들께 부탁 드리려고 글을 올립니다. 사연인 즉슨...50만 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난다는 엄청나게 희귀한 질환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온 저의 사랑하는 조카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고자 해서에요. 우리 나라에 열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질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희귀하답니다. 왜 하필 오늘이냐구요? 매년 1월 24일이 모비우스 신드롬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비우스 신드롬 어웨어니스 데이 거든요.
이런 희귀질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널리 알림으로써 나중에 이 아이들이 커서 세상에 나가도 색안경 끼고 놀리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이제 7개월짜리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 때문에 참 마음이 많이 무거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 조카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씩씩하게 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전에는 (또 여전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숨기느라 급급했지요. 그러나 누구 잘못도 아니고 그냥 그런 질환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가 있으며 그 부모는 또 무슨 죄가 있어서 그걸 창피해하고 숨길까요. 비록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소중하고 귀한 우리 조카. 박이수 군의 이야기입니다.
마침 제가 한국에 있던 2012년 12월에 이수 백일 잔치를 했습니다. 간소하게 집에서 백일상을 차려주고 싶어하던 동생은 제가 미국에서 저의 아이 차려 주었던 것처럼 비슷하게 차렸답니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괜찮죠? 제가 아이 백일상 차려주고 정말 열심히 검색했는데 결국 제 맘에 쏙 드는 걸 찾을 수 없었어요. 혹시라도 저처럼 좀 다른 스타일의 백일상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물론 이 차림에서 제가 직접 만든 건 몇 개 없지만요. 흐흐.
그럼 이수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게요.
제가 심혈을 다해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약간 조심스럽기도 하고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도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정말 고민하며 썼습니다. 다른 데 있는 걸 그대로 옮기게 된 마음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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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양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
제가 감히 여러분께 무슨 색깔 옷을 입어달라고 부탁을 하겠습니까만은, 앞으로는 매년 딱 하루, 1월 24일마다 보라색 옷을 입어주십사 부탁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고요? 혹시 모비우스 (뫼비우스라고도 하지요) 신드롬이라는 걸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 역시 넉 달 전만 하더라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드롬인데, 저의 사랑하는 조카 박이수 군이 2012년 9월 16일에 모비우스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답니다. 그 이후로 저희 가족에게 모비우스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 되었지요. 매년 1월 24일은 모비우스 신드롬을 가지고 있는 전세계인들에게 격려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러한 희귀질환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모비우스 신드롬을 널리 알리는 날 (Moebius Syndrome Awareness Day)'랍니다. 그냥 무작정 알리자고 하면 잘 안 되니 일단 그날은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모비우스 신드롬 파운데이션을 상징하는 색인 보라색 옷을 입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 열 명도 찾아보기 힘든 이 희귀질환은 안면신경마비가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입니다. 7번 뇌신경이 얼굴 근육을 모두 관장하는데, 태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이 7번 신경이 잘 발달하지 않아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웃을 수도 찡그릴 수도 없는 게 특징입니다. 물론 이 아이들도 감정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느끼기 때문에 까르르 웃는 소리는 얼마든지 내고 버럭 화도 낸답니다. 단지 그게 얼굴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요. 태어나자마자 가장 큰 문제는 아기가 빠는 힘이 약해서 잘 먹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수도 처음 태어났을 때 거의 못 먹어서 콧줄을 연결해 우유를 넣어줘야 했답니다. 요즘도 콧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한 번에 100cc 넘게도 먹곤 한답니다! 여기서 이수의 놀라운 재주 하나 공개할게요. 혹시라도 손으로 콧줄을 잡아 뺄까봐 이수 손에 장갑을 끼워두었고 콧줄을 반창고로 코에 잘 붙여 놓았는데도, 이수는 우리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콧줄을 확 잡아 빼곤 합니다. 아무래도 뭐가 붙어 있으니 불편한가봐요. 그런데 슬프게도 이수 아빠가 의사 선생님인 관계로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이수는 아빠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다시 콧줄을 끼게 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수가 이러이러한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면 무의식 중에 이수가 뭔가 다르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아마도 일단 질환이다 신드롬이다 하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본데, 그 분들이 깜짝 놀랄 박/이/수/군의 깜찍 사진을 공개합니다.
어때요? 여느 아기들과 다름없이...아니...솔직히 여느 아이보다 좀 더 이쁘고 잘생겼죠??!! 머릿결은 또 어떻고요. 완전 비단결 토끼털입니다. 우리 개털 머리 리아와는 완전 달라요. ㅎㅎ 이수 역시 모비우스 신드롬을 널리 알리기 위해 미국 본부에서 보내준 옷을 입고 있습니다. I am smiling on the inside라고 쓰여져 있네요. 아이구 이쁜 우리 이수~~이모가 뽀뽀 쪼옥~~!!
태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뇌신경과 손발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때가 있나봅니다. 그래서 모비우스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 중에는 손발이 약간 다르게 생긴 아이들이 많아요. 우리 이수는 다리가 골프채처럼 안쪽으로 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클럽풋(club foot. 내반족)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정밀초음파할 때 내반족인 것은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치료를 할 준비는 모두 되어 있었지요. 다행히 아이들 뼈는 말랑말랑해서 태어나자마자 기부스를 했더니 이젠 완전히 밖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런데 아이 뼈가 말랑말랑하다 보니 그냥 두면 다시 안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서 우리 이수는 지금 보조기를 차고 있어요. (위의 사진에서 보이시죠?) 스케이트 보드 같이 생긴 보조기를 차면 발과 다리를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불편한 지 영 기분이 안 좋아지지요. 그래도 우리 이수는 금세 적응해서 두 다리를 통째로 번쩍 들어올려서 막 흔들곤 한답니다.
모비우스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근육 발달이 느려서 목을 가누는 것도, 기는 것도, 걷는 것도 여러 달 혹은 1년 정도 늦게 시작한다고 해요. 하지만 100살까지 사는 요즘, 그거 1년 정도 늦는 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다행히도 모비우스 증후군을 가졌다고 해서 아이가 지능 발달이 늦거나 하는 건 아니랍니다. 단, 얼굴 근육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니 말 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비우스 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그닥 똑똑하지 못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여러분은 오해 말아주세요! ^^ 우리 이수는 얼굴 표정이 잘 안 지어지다 보니 열 받으면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합니다.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는 셈이지요. 우리 이수가 비록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고 해서 이수를 만만하게 보신다던지 하면 이수 금방 새빨갛게 됩니다. 조심하세요. 새빨갛게 되면 정말 무섭거든요. ^^
자...그럼 여기서 또 사진 하나 보여드릴게요. 지난 주에 서울집에서 미리 찍어둔 모두 보라색 옷 입고 찍은 가족 사진입니다. 흠...저는 가져간 보라색 옷이 없어서 급히 동네 마트에서 사서 입었는데 사진에는 꼭 남색처럼 나왔군요. 그나저나 리아는 완전 딴청이군요. 리아 옷도 잘 보면 보라색입니다!
이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멀리멀리 하와이에서 듣고 마냥 즐거웠는데, 그 다음날 이수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는데 뇌신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 남편과 리아와 함께 백화점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그 문자를 받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그냥 엉엉 울었답니다. 누구나 그러잖아요.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우리는 주변에서 대부분 건강한 아이만 보기 때문에 이런 질환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은 TV 다큐멘터리에나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일수입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도대체 하나님이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하는 생각에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아직 아기인 이수가 앞으로 크면서 거쳐야 할 여러 관문을 생각하니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나고, 내 동생과 제부가 이수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이 많겠구나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고, 우리 엄마 아버지는 내 동생 생각에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해서 또 눈물이 났지요. 하지만 얼마동안 이러다가 마음을 다잡기로 했습니다. 우리 이수가 예상치 못한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수의 탄생을 마음껏 축복해 주지 못한 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되었지요. 희귀질환이 있다고 그 아이와 가족이 결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행복한 건 아닐 게 분명하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보내주신 귀한 생명 이수. 이 아이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겠지요. 우리 가족과 주변 분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으로 이수가 반드시 치료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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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조카 이수야. 이번에 리아가 너한테 자꾸 호랑이 소리 내고 틈만 나면 네 콧줄 잡으려 하고 발을 꽉 잡고 얼굴도 철퍼덕 때려서 혼났지? 어서 쑥쑥 커서 이수가 리아한테 본때를 보여주렴. 이수가 우리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이수를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앞으로 이수 크면서 남들이 던지는 시선 혹은 말에 상처 받지 않게 강한 아이로 클 수 있도록 온 가족이 이수에게 사랑을 듬뿍 줄게.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을 오히려 강점으로 삼아 이수로 인해 주변이 환해지고 마음 속으로 웃는 이수를 통해 주변 사람들도 웃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커주렴. 이모도 여기 하와이에서 1월 24일 준비 열심히 하고 있어. 이모 연구소 동료들도 보라색 옷 입고 오기로 했으니 그 날 사진 찍어 보내줄게. 사랑해 우리 이수~~
(펌)
http://blog.naver.com/femora/70157090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