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손이 고생하는 마실거리.

| 조회수 : 5,827 | 추천수 : 5
작성일 : 2012-06-11 14:45:25

이 일을 고생이라 써 놓고는 사실 겸연쩍습니다.

누가 하라고 강제로 시킨적이 절대로 없었으니까요.

저녁에 식구들 잠들고  집 둘러보며 치우면서 현관 신발들 가지런히 정리하면  

주부의 일과는 여기서  퇴근시간입니다.

대략 1시가 넘기가 일쑤이지요.

그 시각에 꼭 잊지 않고 하는 마무리가 있으니 콩 담가놓기입니다.

많이 담갔다가 여러날 쓰기도 하지만 맛이 덜하기에 담날 쓸만큼 씻어 담급니다.

오전에 일이 대강 끝나면 불린 콩껍질 벗겨내고 비릿하지 않을만큼 삶아서

적당한 물을 더해서 곱게 갈아서 삶아둔 베보자기로 꼭 짜서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식구들은 들락거리며 물을 찾기도 하지만 콩국(우린 이런 이름)을 마시기도 하고

미숫가루 섞어서 헛헛할 때 얼음 띄워서 마시기도 하고 시어른들은 낮에

칼국수 삶아서 콩국수 해 드리기도 하구요.

나오는 비지도 만만찮은데 풋고추나 뭐 있는대로 보태서 전을 해 드리면

든든하다고 하시고 비지찌개도 해 먹고 몰래(!) 버린적도 있고요.

망구이신 저희 시부모님께선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신 것 같다고 늘상 말씀을 하셨어요.

가끔 친구분들 오시면 국수나 먹자~~ 하셨지요.

밀반죽 많이 해서 밀어서 냉동실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물 끓는 동안 얼렸던 반죽 녹여서 곱게 썰어서 콩국수 해 드리면 식사 준비도

수월했지요.가을이면 시골 친구에게 서리태와 메주콩 사는 일이 연중행사.

서리태로 콩국을 내면 파르스름한게 아주 맛있어 보인다시며 잘 잡수셨어요.

요즘은 담그는 콩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잡수시던 어른들께서 3년전에 그리고 지난해에 떠나셨거든요.

동갑이시던 어머님이 앞서시고 2년 후에 93세이신 아버님께서 ....

남편은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방문을 열어봅니다.

이젠 피아노방이 되었지만 사진이며 커튼이며 그대로인 방을요.

몸이 편해져도 편치 않은게 30년 시집살이 덕분이겠지요?

아침에 바쁜 남편 미숫가루 달랄때면 바로 콩 곱게 갈아서(걸르지 않고) 타주면 든든하고

맛있다고 마십니다.콩국물에 타면 꿀 설탕 안넣고 해도 되거든요.

콩국 매일해요 ... 라고 만 쓰려다가 왜 신파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참 저는 콩국을 안먹어요.아니 원래 콩을 못먹습니다.

콩이면 땅콩도 싫어하거든요.

근데 식구들 아무도 모릅니다.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나그네인생
    '12.6.11 3:57 PM

    으앙~~~~ 마지막 큰 반전 ㅠㅠ

  • 2. 덤이다
    '12.6.11 4:14 PM

    여름에 한두번 해먹기도 귀찮아 나가 사 먹는편인데..
    애 많이 쓰셨네요, 제목대로 손이 고생하는 마실거리 맞아요.
    포스팅 읽고서 바로 다른글로 못 넘어가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 3. 코로
    '12.6.11 4:14 PM

    반전이 슬프게 해요..

  • 4. 자두가좋아
    '12.6.11 5:00 PM

    ㅜㅜ 슬퍼요.. 정말 존경스럽네요. 얼마나 곱디 고운분이실지 요즘같은 세상에.. 복 받으실 거에요~
    그래도 이제는 해든곳님이 좋아하는 음식도 해드세요~~전혀 못드시는 콩 말고..

  • 5. shyiny
    '12.6.11 11:21 PM

    아름다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수고롭게 일해서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주위를 이롭게 하는 모습이
    마치 피어나는 꽃잎 같습니다.
    잡숫지 못하는 음식이지만 사랑하는 분들이 좋아하시니 계속 해 주시는 거죠.
    코가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해가 지고 또 새 계절이 와도 수십 년을 피고 지는 꽃나무같이 한결같이 고운 분이세요.

  • 6. 고독은 나의 힘
    '12.6.12 7:55 AM

    진짜 마지막에 코끝이 찡한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콩을 싫어하시는데도 30년 넘게 매일같이 콩을 불리시고 삶아서 대접하신 그 마음.. 진짜 코끝이 찡합니다.

  • 7. 바이어스
    '12.6.12 2:10 PM

    ㅠㅠ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저도 결혼전에는 몰랐거든요. 엄마가 음식을 해주시는 마음을요.

  • 8. 해든곳
    '12.6.12 5:30 PM

    어머나 어쩌면 좋아요!
    댓글 달아 주신분들 고맙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여러분들께 어리광을 부렸다 싶군요.
    워낙 노인이시라 젊은이 음식과는 다르게 소화와 영양에
    신경을 쓰다보니 콩으로 만든 음식을 많이 드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꼭 해 먹겠습니다.

  • 9. 내이름은룰라
    '12.6.13 2:16 PM

    흐엉... 콩이면 땅콩도 싫어하신다는 해든곳님

    참 결혼 11년차인 아줌이 된 저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저...



    전요... 콩국 참 좋아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129 189차 봉사후기 ) 2025년 10월 봉사 돈가스와 대패삼겹김.. 3 행복나눔미소 2025.11.05 2,605 5
41128 가을인사차 들렀어요.!! 24 챌시 2025.11.02 5,909 5
41127 요즘 중국 드라마에 빠졌어요. 22 김명진 2025.10.29 4,716 3
41126 맛있는 곶감이 되어라… 13 강아지똥 2025.10.27 5,378 4
41125 가을이 휘리릭 지나갈 것 같아요(feat. 스페인 여행) 12 juju 2025.10.26 4,392 5
41124 책 읽기와 게으른 자의 외식 9 르플로스 2025.10.26 4,084 4
41123 저도 소심하게 16 살구버찌 2025.10.24 5,996 7
41122 지난 추석. 7 진현 2025.10.22 5,355 7
41121 우엉요리 14 박다윤 2025.10.16 7,826 7
41120 세상 제일 쉬운 손님 초대음식은? 10 anabim 2025.10.12 11,497 6
41119 은하수 인생이야기 ㅡ 대학 입학하다 32 은하수 2025.10.12 5,490 11
41118 188차 봉사후기 ) 2025년 9월 봉사 새우구이와 새우튀김,.. 9 행복나눔미소 2025.10.10 6,147 8
41117 밤 밥 3 나이팅게일 2025.10.08 6,050 3
41116 저도 메리 추석입니다~ 2 andyqueen 2025.10.05 5,389 2
41115 메리 추석 ! 82님들 안전한 연휴 보내세요 9 챌시 2025.10.05 3,801 5
41114 아점으로 든든하게 감자오믈렛 먹어요 13 해리 2025.10.05 5,225 5
41113 은하수 인생이야기 ㅡ논술 첫수업 14 은하수 2025.10.05 3,206 3
41112 82님들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4 진현 2025.10.05 3,138 5
41111 키톡 글 올리는 날이 오다니! 7 웃음보 2025.10.04 3,597 5
41110 미리 해피 추석!(feat.바디실버님 녹두부침개) 20 솔이엄마 2025.09.29 8,300 5
41109 화과자를 만들어봤어요~ 15 화무 2025.09.29 5,121 3
41108 강원도여행 8 영도댁 2025.09.25 7,388 5
41107 은하수 인생이야기 ㅡ나의 대학입학기 18 은하수 2025.09.25 5,216 9
41106 마지막.. 16 수선화 2025.09.25 5,141 5
41105 수술을 곁들인 식단모음 7 ryumin 2025.09.23 6,198 5
41104 닭 요리 몇가지 17 수선화 2025.09.23 4,522 7
41103 대령숙수는 아니어도 21 anabim 2025.09.22 6,768 7
41102 꽃게철 14 수선화 2025.09.22 4,611 4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