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글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꽃송편' 이후로 키톡에는 1년도 훨씬 넘은 것 같네요.
지난 1년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할머니와도 자연스레..^^; 멀어졌었어요.
시골 살 때는 이런저런 생각, 그런 것들이 자아내는 이야기들이 매일매일
샘솟듯 생겼었는데
할머니도 떠나고, 시골도 떠나니
생각도, 마음도... 깊지도 넓지도 못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야기거리도 없었지요.
할머니한테 너무 소홀했던가요.
그만 큰 탈이 나고 말았어요.
지난 해 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엄청 추웠던 그 날,
할머니가 시골집에서 혼자 우물가에서 넘어지셔서
큰일이 났었더랬습니다.
엉덩이를 크게 다치셔서 결국 수술을 하셔야했고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후 지금은 서울집에 오셨답니다.
다행히 제가 집에 있는 시기라서 병간호도 하고 말동무도 하고 그러긴합니다만
아직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르게 바지런히 움직이시던 할머니는
너무너무 답답해하십니다.
재작년 겨울에도 발에 깁스를 해서 힘들어하셨는데
이번엔 쾌차하시기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올 겨울 내내 서울에 계셔야할텐데
답답하고 힘드셔서 마음까지 힘들어지실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낮에
할머니한테 '간단 나박김치 만들기'를 배웠어요.
동화책 읽어드리는 것도 한 두 시간이고, 제가 이래저래 외출이라도 하면
몸을 움직이시지 못하니 지루하기가 한이 없지요.
그래서 할머니가 키우신 어른 주먹 두 개만한 무를 꺼내
간단한 나박김치를 만들었어요.
무를 나박 썰어 무게를 달아보니
328g이었어요.
배추도 같은 크기로 썰고
냉장고에 있던 먹다 남은 배, 사과, 양파, 그리고 마늘 몇 쪽과 생강 한 톨, 파 몇 뿌리도 다듬어 놓았어요.
무, 배추, 파는 할머니가 지난 해 키우셨던 것들이지요.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따로 베주머니를 쓰지 않고
이렇게 편법으로 고춧물을 내었어요.
고운 체에 고춧가루를 불려 물을 만드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원래는 믹서에 갈아서 베주머니에 넣어 국물을 내야 할 사과, 배, 양파를 굵직하게 썰어
김치통 바닥에 깔았어요.
그 위에 무와 배추 썰어놓은것을 섞어 얹고
고춧가루 불린 물에 소금과 설탕을 녹이고, 마늘과 생강을 곱게 다져 넣고, 파를 어슷 썰어 섞은 후
무와 배추 위에 붓습니다.
요렇게 조그만 김치통에 넣고 보조주방에 내놓았습니다.
곁에서 할머니가 지시(?)하시고
다듬고 썰고 하는 건 다 제가 했어요. 히히
사진도 함께 찍느라 요 조그만 김치통 하나 만들기에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할머니랑 소꿉장난 하는 기분이었지요.
이렇게 재료들을 무게 달아 일일이 적어놓았어요.
나중에 써먹으려고요.
잘 보이지 않는 국물의 양은(소금, 설탕, 마늘, 파, 생강 + 생수 = 1500g)이었고요.
락앤락 통 + 완성된 나박김치가 2687g이었어요.
할머니가 입맛을 잃으셔서 좀 달달하게 했습니다.
저는 나박김치를 처음 만들어봐요.
제사 있을 때 항상 엄마나 할머니가 담그셨는데
남의 일로만 여기고 눈여겨 보지 않은 탓에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도 잘 몰랐거든요.
할머니 말씀이 원래 무, 배추만 나박 썰어놓고
마늘, 생강, 배, 사과, 양파 등은 믹서에 갈아 베주머니에 넣어야 하며
고춧가루 물을 만들 때도 베주머니에 고춧가루를 넣어 '질금 빨듯, 콩물 빨듯' 빨아서 내어야
색이 곱다고 하셔요.
왜 두부할 때 콩 간 것을 베주머니나 면주머니에 넣어 뽀얀 국물을 빨래 빨듯 주물러 콩물을 만들잖아요.
그렇게 해야 거친 입자가 없는 고운 고춧가루물이 된다고 해요.
오늘 만든 건 완전 엉터리, 간단 버전이니까 앞으로는 제대로 담가보라고 하셔요.
돌아오는 정월 명절 차례상에 올릴 나박김치를 해보라 하시는데 (저희는 나박김치만큼은 붉게 해서 올립니다)
크크,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무 한 덩이를 더 꺼내
고춧가루 물 내리고 남은 고춧가루를 재활용하고자
무생채를 만들었습니다.
이 무는 무게를 재어보니 296g짜리에요.
아주 작고 귀여운 크기죠.
어때요, 제 채 써는 솜씨가?
할머니한테는 합격점을 받았답니다. 히히
고춧가루물 내었던 스텐 볼을 씻지 않고 그냥 무채와 고춧가루를 넣었어요.
설거지 거리를 줄이고 물을 뺀 고춧가루를 재활용한 거에요.
고춧가루 물을 먼저 들이고 소금과 설탕, 파, 마늘 등을 넣고
깨를 넣어 조물락 조물락했지요.
들기름과 고추장 조금 넣고 썩썩 비벼먹으면 맛있겠지요?
엄마가 쓰시는 양념서랍이에요.
남*에서 나오는 '1*차'라는 음료수 병을 재활용 해서 가루양념을 담아놓은 거에요.
스타벅스 커피병에 담긴 건 깨고요.
이렇게들 많이 쓰시죠?
견출지로 이름표를 붙여놓아 위에서 보아도 헷갈리지 않아요.
파슬리는 한 번 사면 많이 남으니까 남은 것을 다져서 말렸다가 조금씩 덜어씁니다.
생강가루는 생강차 끓이거나 수정과 끓인 후에 생강을 건져서
바싹 말려 분마기에 간 거에요.
맛이 진하지는 않지만 돼지고기 양념할 때 넣으면 꽤 쓸만 해요.
파슬리와 생강가루는 쓸 일이 잦지는 않으니 이런 식으로 재활용합니다.
웃으면 안되는데...
재작년에도 메주를 마지막으로 삶아 밟던 날 사고를 당하셨는데
(메주를 며칠에 걸쳐 만드시거든요)
올해에는 가을걷이 다 끝내시고 메주도 다 빚어 놓으셔서
할머니의 사고는 일거리를 항상 비껴갑니다.
꼭, 한 해 농사 다 마무리하고 다치시네요.
일복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할머니와 농담을 했답니다.
처음엔 많이 놀라 제가 울고불고 했지만 ^^;
이젠 서서히 보행기에 의지해서 화장실을 다니실 정도로 회복되셨어요.
이런 농담도 하고요.
참,
다시 말씀드리는데
나박김치는 할머니가 하도 심심해하셔서
집에 있는 재료 가지고 대강 만든 거에요.
아직 간도 제대로 안 봤어요.
할머니가 하라는대로 썰고 넣고 해봤는데
완전 소꿉놀이였답니다.
레서피는 참고할 것이 못 되니 사진만 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