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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열 다섯, 열 일곱 (5)-마지막
저는 제 사과가 쪼개지는 환상을 보곤 했었어요.
처음엔 저 혼자 먹을 수 있는 사과였는데
동생이 태어나면서 반으로 나뉘고
셋째가 태어나면 삼분의 일로 줄고
네째, 다섯째가 태어나면 더더욱 작아질 사과를 생각했었죠.
아무리 엄마아빠가 사랑으로 키운다 해도
사랑이란 것을 양(量)으로 나타낸다면
내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생들이 많은 것이 싫었죠.
내가 받을 사랑이 오분의 일로 줄어드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동생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이고 행복이고 축복인 것을
내 나이 열 다섯에는 알지 못했어요.
열 일곱살 때, 그런 값비싼 경험을 통해 깨닫고나서야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그저 사과를 쪼개어 나눠먹는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동생들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성숙하게 하는지
몸과 마음이 겪었으니까요.
거들떠도 안봤던 아기 기저귀를 빨기도 하고
젖이 모자라 우유를 타 먹일 때면 직접 먹이기도 했던 게 그 즈음이었어요.
똥 기저귀는 양변기에 똥을 털어버리고 애벌빨래를 해둔다는 걸,
우윳병 꼭지가 엄마젖 모양과 달라 누크라는 회사에서 엄마젖 모양의 납작한 젖꼭지가 나온다는 걸,
아기 분을 너무 바르면 오히려 땀띠가 더 심해진다는 걸,
아기 배꼽이 떨어질 때까지는 목욕할 때 조심해야한다는 걸,
우윳병으로 먹이면 꼭 트림을 시켜야하고 모유를 먹일 땐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미 둘째, 셋째 때 겪은 일인데도
처음 배우는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배웠어요.
아기 우유를 먹이고 내 어깨에 얹어놓고 토닥토닥할 때 그 포근한 기분,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나면 뿌듯하고 뽀송한 기분,
푹 잘 자고 일어난 아기가 울지도 않고 혼자 천장을 보고 배냇짓을 하면 얼마나 귀여운지...
젖 빨 때 송글송글 콧망울에 맺히던 귀여운 땀방울,
새하얗고 길다란 소창 기저귀를 탁탁 털어 널 때 그 상쾌한 기분,
이제 지난 이야기를 쓰다보니 그 느낌과 기분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네요.
막내는 어릴적 저와 함께 잠이 들었어요.
젖을 뗀 후엔 손을 빨았는데 (우리 다섯이 모두 손을 빨았대요)
제 옆에 누워 왼손 엄지는 빨고 오른손으로는 저를 토닥토닥 했어요.
여리고 작은 손톱이 달린 손으로
제 브래지어 어깨끈을 꼬물꼬물 만지면서 말이죠. ㅋㅋ
신기하죠?
그게 징그럽거나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어요.
손끝으로 끈을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잠드는 막내동생이 얼마나 귀여웠는데요.
고 보드라운 손길이 스르르 잠이 들면서 풀릴 때는
저도 함께 잠이 들곤 했지요. ㅎㅎ
녀석들은 알까요?
자신의 존재가 한 사람을
힘들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오늘 중간고사 기간이라 도서관 갔다온 넷째한테 기어코
"낼은 시험 잘 봐라."라는
재미없는 소리만 쏟아놓고 말았어요.
뭐, 일상생활에서 저는 늘...
잔소리꾼, 악마, B사감, 뭐 그럴 거에요.
이젠 키도 저보다 커졌고 힘이 애들보다 딸린 건 오래됐지요.
어쨌거나
저는 동생이 넷씩이나 있는 부자입니다.
세상 어디 가서도 바꿀 수 없는,
내 영혼의 성숙을 이루어준 소중한 존재들.
이만하면 자랑할만 하지요?
(어쩌자고 시작했던 글이었는지...
도중에 그만 두고 싶기도 했었어요.
너무 발가벗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정반대로 스스로 생략하거나 포장한 부분은 없나 고민되기도 했구요.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쏟아놓고나니
새삼스레 떠올린 옛 기억에
눈앞이 그렁그렁하다가 또 모니터 앞에서 빙그레 웃기도 하고 그랬어요.
오늘도 어제도 오남매가 다글다글 살아가는 일상은
늘 정신없고 시끄러워요.
가지 많은 나무가 언제 바람 잘 날이 있겠어요.
이번 어버이날 때는 또 무얼 해야하나...
내일은 오남매 회의를 소집해야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싸우다가 끝내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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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라레
'05.5.7 12:20 AM인우둥님 나중에 아기 낳아도 잘 기르시겠어요. ^^
준비된 예비엄마... ㅎㅎㅎ2. summer
'05.5.7 12:24 AM동생들한테는
반 부모마음이지요.
오남매라니 부럽습니다..3. 재영맘
'05.5.7 12:24 AM감동으로 안은 동생들이 넷이나 되다니 정말 인우둥은 부자네요.
전 8살 차이나는 남동생하나가 있지만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요...
형제 자매같은 혈육은 결혼을 해도 남편과는 나눌 수없는 그 뭔가가 있는것 같아요.
끈끈한 동지애랄까...4. 름름
'05.5.7 12:47 AM중간부분 애 키우는 부분만 보면은
애엄마가 글 쓴 줄 알겠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5. 쵸코크림
'05.5.7 12:47 AM잘읽었어여..
저도 형제자매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많이 부러워요..6. 빈수레
'05.5.7 12:48 AM울 큰언니도 마음이 그랬을까..?..갑자기 궁금해지는 사과조각 이야기였네요....^^;;;;
7. 아들셋
'05.5.7 1:22 AM제가 30이 훌쩍 넘어서 경험하고 깨달은 진리를 님은 일찌기 깨치셨군요.
정말로 마음이 부자이신 분입니다.8. Terry
'05.5.7 3:06 AM세상에나.... 부럽습니다. 결혼해서 엄마 되실 거 안 무서우시겠어요.
저는 아이라고는.... 제가 낳은 큰 애가 제가 봤던 애기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거든요.
조카도 없었고... 하여튼 애기가 밤에 깨서 젖 달라고 우는 것도 몰랐다니까요. 애는 낳으면 그냥 버둥버둥 크는 건 줄만 알았지 밤에 그리 자주 깨는 줄은 첨 알았답니다.
확실히 잘 모르니까..힘들대요...9. 제민
'05.5.7 5:04 AM저는 동생이 둘인데요..
둘째는 차이가 없다지만
막내랑은 11살 차이나요-
날때는 엄마가고생해서 가진걸 알았기때문에
반대할수가 업었는데 제 사춘기와 애기태어나는게 맞물리자
어찌나 애기가 밉던지... 오죽하면 엄마가 "남이니? 니동생이야" 했던적도
있어요. 뭐, 그래도 기저귀 갈고 밥먹이고 다하기는 했는데요 그 우는 소리가
무척 싫었었어요... -_ㅠ 근데 사춘기가 끝나고 고등학생쯤 되니까 그런게
사라졌어요-.. 그냥 이쁜거예요, 이유없이. 그 속옷끈 묶고 풀고 하는거
제 막내도 그렇게 해요 ㅎㅎㅎ 인우둥님 글 잘봤어요 ^^10. 퐁퐁솟는샘
'05.5.7 8:57 AM오남매의 티격태격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하네요^^
그런데 혹시 이런말 들어보셨어요?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내아이처럼 지극정성 돌보는 사람은
나중에 자기 아이를 낳아서 키울때는
마치 다른 사람의 자식 대하듯 무덤덤하게 키운다는 말을...
제자신이 그렇거든요
전부터 아이를 무척 예뻐하고 아이의 특성에 맞춰 마음을 잘 다독거려왔는데
제가 낳은 아기에게는 그렇게 안되더라구요
어떨땐 전처자식인 큰아덜넘이
"엄마가 정말 아기를 낳은 엄마 맞아요?"
라고 하거든요11. 코코샤넬
'05.5.7 9:22 AM아시다시피 저도 동생이 많습니다. 자그만치 다섯..
저 어렸을 적엔.. 엄마가 사업하시느라 바쁘셔서 저도 덩달아 늘 바빴어요.ㅡ.ㅡ
그래서 저는 맏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어도 동생들 챙기고 부태끼며 살았는데--;
인우둥님 만큼 너그럽고 이쁘게 마음은 못 썼던 것 같아요.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엄하게 키운다는 일명하에 늘 쥐잡듯이 잡고 --; 키웠었는데..(?)
다섯이나 되는 동생중에 하나만 집에 없어도 집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 적은 참 많았습니다.
어쩜 그렇게 집이 허전하던지.. 여섯 꼬맹이 중에 하나가 빠졌다고 그런 허전함이 느껴지다니..
인우둥님은 그런 기분 아시죠? 인우둥님.. 참 이쁜 언니에 누나십니다..12. hippo
'05.5.7 11:32 AM인우둥님 마음이 제 가슴에 느껴집니다.
이젠 다섯 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재밌게 살아갈 일만 남았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