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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부대찌개에 대한 소고

| 조회수 : 4,195 | 추천수 : 17
작성일 : 2003-12-30 08:42:31
   '부대찌개'란 '부대고기찌개'를 줄인 이름이다. 여기서 '부대'란 미군부대를 말하는데, 이것은 부대찌개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고기로 만든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금 시중에서 파는 부대찌개는 수입 소세지 몇조각에 김치, 당면 등을 재료로 하지만 원래의 부대찌개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한국군 부대에서 고기국이라 하면 소가 발 담그고 건너갔다는 뜻의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이었지만, 미군 식당에서는 인원수대로 정량의 고기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남는 고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미군부대 식당에서 근무하는 사람일지라도 이것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남는 음식을 잔밥통(짬밥통)에 버리면 버렸지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미군부대 밖으로 가져나왔을까?  미군 식당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에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면 부대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방법으로는 여러 사람의 이목이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은 불가능했고, 기껏해야 이삼킬로 정도를 빼내올 수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돼지키우는 사람과의 협조체제였다.  당시 미군부대 식사찌꺼기(잔밥. 군데에서는 흔히 짬밥이라고 한다)는 돼지키우는 한국사람이 가져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미군측으로서는
청소비를 주지 않으니 좋고, 돼지키우는 사람은 양질의 꿀꿀이 먹이를 조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뿐만이랴. 미군부대 밖으로 나온 이 꿀꿀이 먹이는 일단 사람이 먹을만한 부분을 골라낸 후에 돼지에게 가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꿀꿀이죽'인데, 필자가 국민학교 이학년이었던 삼십오년전만 해도 의정부에 꿀꿀이죽을 파는 곳이 두어 군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식단에는 국이 반드시 올라오기 때문에 짬밥 하면 밥과 국물이 섞여있을 것으로 연상되지만, 국을 먹지 않는 서양인의 짬밥은 건더기에 케찹이나 마요네즈가 묻어있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꿀꿀이죽을 시키면 그날의 운에 따라 파인애플 조각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뻑뻑한 고기가 많이 나오게 되는데, 가끔은 골라내지 못한 담배꽁초도 나왔다.  꿀꿀이죽은 영양가로 보면 고급에 속했지만 불결한 느낌 때문에 서민이나 찾는 음식이었다. 값은 일반 밥값의 절반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이처럼, 미군 짬밥에서는 한국사람이 먹는 '꿀꿀이죽'과 양질의 돼지먹이 두 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군부대의 짬밥통 치우는 사업(?)은 좀처럼 얻기 힘든 이권이었다.

   그러면 미군부대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과 돼지키우는 사람이 어떤 협조를 해서 남는 고기를 대량으로 빼올 수 있었을까?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은 남는 고기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비닐로 싸서 짬밥통에 던져놓는다. 그리고 부대 밖에서 위탁자(?)에게 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수고의 대가로 반출량의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온 '부대고기' 속에는, 맛있는 햄과 소시지 뿐만 아니라 우리 입맛에는 뻑뻑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그리고 당시로서는 짜고 기름기만 많아서 인기가 없었던 베이컨 들이 섞여 있었다. (가격은 당시 시중에서 파는 돼지고기값의 2/3 정도로 기억하는데, 베이컨이 많이 섞여있을 경우에는 더 쌌다. 하지만 고기를 익히면 2/3 정도로 줄어드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싼 값이었다.)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고기를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기를 두고 입맛에 맞고 안맞고를 따지는 건 사치에 속했다. 하물며, 미군부대 주방에서 썬 후에 그대로 포장되어 나온 고기임에야.

   부대고기의 용도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김치찌개에 넣어 먹는 방법이 가장 낳았다. 짠 맛, 기름기의 느끼함, 서양고기의 뻑뻑함이 김치찌개를 만나면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부대찌개라는 게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김치찌개에 부대고기를 넣어 먹는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주한미군의 규모가 감축됨에 따라 미군부대의 식당에서 밀반출된 진짜 부대고기는 사라지고, 미군 PX를 통해 나온(최근에는 수입한) 햄과 소시지로 대체되었다. 말하자면 소, 돼지, 닭고기가 빠지고 햄과 소시지 만으로 만드는 찌개가 된 것이다. 부대찌개 재료에 당면과 가래떡, 라면이 들어가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부대찌개는 미군부대가 있는 곳이면 전국어디에도 있었다.  부대찌개 사업(?)의 규모는 미군부대 규모와 비례하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단연 동두천이 최고였다.  동두천에는 부대찌개만 끓여서 파는 가게 - 요즘처럼 식사와 부대찌개를 파는 음식점이 아니라 부대찌개 한가지만 만들어서 순두부 팔 듯 덜어 파는 가게 - 가 시장에 여러 군데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의정부가 부대찌개의 원조(元朝)처럼 알려지게 됐을까? ('의정부찌개'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아마 서울사람이 가까운 의정부에 가서 먹어보고 소문을 퍼뜨린 탓이 크지 않았을까.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의정부에 가면 양주군청 옆에 부대찌개 골목이 있다. 원래 이곳은 주택가였다. 그런데 십년 전쯤 한 아주머니가 허름한 식당을 차린 후, 이름도 대충 '오뎅집'이라 짓고 무쇠솥뚜껑에 부대찌개를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차차 이름이 나면서 의정부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먹으러 오는 사람이 생겼다. 오뎅집의 부대찌개를 먹으려면 줄을 서야 할 지음 주변에도 부대찌개를 하는 식당이 하나 둘 씩 생겨나서 현재는 부대찌개 골목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마포에만 가도 '원조 마포갈비'가 수십곳이지만, 이 골목에는 '원조'라고 써붙인 곳이 한군데도 없다. 어떤 집이 원조인지 다 아는 판이라 오뎅집도 원조라고 써붙일 필요가 없고 다른 집도 뻔뻔스럽게 원조를 표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집이나 그맛이 그맛이지만 그래도 '원조'라고 오뎅집만 북적거린다.
   얼마 전에 한번 먹으러 갔는데 5000원에 밥값 별도니 둘이서 식사하는 데 만이천원이 들었다. 소고기 부페가 7000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요즘같은 때에 결코 싼 값은 아니다.  하지만 싸구려 햄 몇조각 뿐인 서울의 부대찌개 보다는, 좋은 햄을 쓰는 의정부 부대찌개 맛이 그래도 아직은 훨 낫다.

   부대찌개는 이제 햄찌개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수입 햄. 그러니 '부대찌개' 보다는 '수입햄찌개'라 불러야 하겠지만 여전히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부대찌개.
동족상잔 육이오가 남긴 음식.
주둔군 부대에서 훔치면서 살아온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름.
기어코 김치를 섞어서 동화시킨 기름기.
이것은 내가 자라난 전후 도시 의정부와 맥을 같이 한다.
부대찌개는 우리의 현대사를 담고 있는 음식이다.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홍차새댁
    '03.12.30 8:45 AM

    음식점하시는 후배어머니께 들었는데요...부대찌개 먹다보면..이맛이 아닌데..아닌데..하시잖아요. 그럴땐 라면 수프를 약간 넣으면 "바로 이맛이야~" 저절로 나온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2. 무우꽃
    '03.12.30 8:51 AM

    진짜 부대찌개를 맛보시려면 의정부 경민중고등학교 아래에 있는 동네에 가셔서
    동사무소 골목에 있는 부대찌개 집을 물어보면 됩니다.
    부대찌개 골목에서 파는 건 "햄찌개"일 뿐이죠.

  • 3. 꽃게
    '03.12.30 9:16 AM

    옛날엔 존슨탕이라고 간판 붙은 집도 봤어요.
    저는 부대찌개, 이름때문에 먹고싶어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고요.
    그냥...어쩐지 싫었어요.

  • 4. 아즘마
    '03.12.30 9:21 AM

    무우꽃님 지금 사시는 곳은 어디세요?

  • 5. 아즘마
    '03.12.30 9:32 AM

    의정부에서 부대찌개로 유명한 오뎅집을 가 봤는데
    빨래비누 크기만한 마아가린을 잔뜩 쌓아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그 네모난 마아가린을 본 후로 그 집에는 절대 안 갑니다.

    요즘엔 마트에서도 부대찌개용 햄을 팔기는 하지만
    의정부 시장 한 복판 미제물건들을 주욱 늘어놓고 파는 곳에서
    옥수수가 그려진 소시지를 사다가 김치찌개에 넣어서
    나름대로 담백한? 부대찌개를 해 먹고 있습니다.

    마가린 안 넣은 찌개로....... ^^

  • 6. 소도둑&애기
    '03.12.30 10:06 AM

    저는 햄을 싫어해서 부대찌개 안먹었는데, 글을 읽으니 어떤 맛일까 먹어보고 싶습니다.
    엄마한테 끓여달라고 하면 '웬일이니?!' 하시겠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 7. 박미련
    '03.12.30 10:45 AM

    저희 신랑 부대찌개 엄청 좋아하는데요.. 절대로 식당에선 안 먹고 집에서 끓여달라네요. 그야말로 무우꽃님의 햄찌개지요, 뭐. 스팸 반통, 비엔나 소세지 한줌, 베이컨이나 삼겹살, 당면, 강낭콩 통조림 넣고.. 고춧가루 넉넉히 풀고.. 김치도 좀 넣고, 그리고 홍차새댁님 말씀처럼 라면사리도 조금 넣고 필히 라면스프를 넣어서 끓여야지요.^^ 모.. 나름대로 찌개 마땅찮을 때도 좋고.. 밤에는 떡도 좀 넣어서 야식으로도 즐겨 먹어요.

  • 8. 공주엄마
    '03.12.30 1:41 PM

    무우꽃님,아즘마님 반갑습니다
    저도 의정부 살거든요
    부대찌개 좋아하는데 요즘은 자제하고 있어요...

  • 9. 정지문
    '03.12.30 4:09 PM

    양주군청옆 부대찌개 골목에서 제가 태어나고 자랐어요.

    제가 30대 후반을 향하고 있는데,

    저 어릴적 초등 저학년 때도 오뎅집이 있었지요.

    반찬이 없거나 할때 냄비하나 들고가서

    막걸리 받아오듣 부대찌개를 사오던 추억이 있어요.

  • 10. 무우꽃
    '03.12.30 11:07 PM

    정지문님
    그 골목에서 자라셨다구요? 흠 그러면 중앙초등학교 출신이시라는 건데... 저 48횝니다.
    30대 후반이시면, 제가 40대 후반이니, 58회 전후가 되지 않을까 여겨지네요. (흠흠)
    혹시 손 위 형제분이 계시다면 그럭저럭 아는 사이일 것 같네요. 제 이름은 정병태입니다

  • 11. 이춘희
    '03.12.31 1:25 PM

    저도 의정부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모두들 반갑습니다.처음으로 의정부이야기가 주름을 잡는거 같네요.부대찌개, 어제도 인천에서 친구들이 먹고 싶다고 찾아와서 신시가지 형네식당에서 볶음밥까지 완전히 해결하고 임신한거 같은 제 배를 붙잡고 포만감과 탐식하는 미련함에 괴로워 했었어요.맛있긴 맛있죠?
    그런데요 제 나이 이제 40대 중반인데요,언제부턴가 째즈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서 수소문을 해보아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네요. 혹시 아시는 분 도와주세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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