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만들 때, 그리고 피자를 먹을 때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피클이다. 시중에서 먹을 수 있는 수입 피클은 메이커가 둘인데, 혹자는 이것이 좋다하고 혹자는 저것이 좋다하지만, 둘 다 우리 입맛에는 너무 시거나 달고 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내가 피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충무로 있는 '베어가든'이라는 레스토랑 때문이다. 이곳은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가격에 비해 음식맛이 너무좋아서, 시장 순대국집 체질인 필자도 만남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충무로 전철역 5번 출구로 나가서 곧장 30보 거리. 전화 2266-1669)
여기서는 직접 담근 피클을 (피자 뿐 아니라) 식사의 찬으로 내놓는데, 그 맛이 얼마나 좋던지, 얼굴을 익힐 무렵, 체면 불구하고 조금 싸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이 집은 피클 재료로 오이 뿐 아니라 무, 셀러리 등을 사용하는데, 달거나 시지 않고 향도 적당해서 담백한 맛을 낸다.
어느날 그집에 들렀을 때 용기를 내서 주방으로 가 제조법을 물었다. "저는 이집의 요리에 만족해서 자주 오는 사람입니다. 저도 요리는 좀 한다고 하는 편이지만 이 집만큼 피클을 맛있게 담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시도조차 못해봤습니다. 특별한 비밀이 아니면 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매우 실망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이었다. 별 비법이 있겠느냐는 투의 대답에는 무엇을 감추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집 피클맛이 영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가져오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 가서 물어도 "보통 만드는대로 만들었고, 같은 맛인데 왜 그러냐"는 대답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요리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것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그렇다 그저 늘 만드는대로 만들었을 뿐 비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 실험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피클 향료로는 통겨자, 정향, 월계수잎, 딜, 코리안더, 홍고추 등이 쓰이는데, 그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향료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 해도 걱정할 게 없다. 큰 시장에 가면 음식점에 재료를 대는 도매상이 한군데씩 있게 마련인데, 찾아가서 "피클링스파이스"를 달라고 하면 배합 향료를 조금씩 덜어 팔기도 하니까. 필자는 여기에다 월계수잎을 추가해서 사용한다.)
이 향료를 끓인 물에 식초, 설탕, 소금을 적당히 넣으면 피클을 담그는 국물(?)이 된다. 여기에다 소금에 살짝 절인 야채를 넣은 후 서너시간만 기다리면 맛있는 피클이 되는것이다.
다음은 반말 정도(큰 플라스틱 용기 가득)의 피클을 담그는 요리법이다.
가. 피클에 들어가는 야채
흔히 피클 재료로 오이만을 생각하는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무우, 배, 양파,
푸른 토마토 등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야채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 (심지어
배 같은 과일도 가능하지만 원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물러지기 때문에 권할
것은 못된다. 당근은 간이 배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셀러리는 베어가든의 피클에서 힌트를 얻을 것으로 피클의 또다른 맛을
낸다. 필자의 경우에는 계절에 나오는 싼 야채로 여러가지를 섞어서 만든다.
무우는 쭉 빠진 것보다 갈래진 것이 대체로 맛이 좋다. (우리 어머니 말씀)
야채는 적당한 크기로 썬 후 두어시간 소금에 절여 물기를 뺀다. (무는 소금에
오래 절여두면 풋내가 나므로 30분 정도가 적당하다.) 오이는 1 cm 조금
못되는 두께의 동그란 모양으로, 무우는 작은 깍두기 모양이면 되겠다.
셀러리의 경우는 소금에 절이지 말고 그대로 넣어 향을 살린다.
절인 야채는 꾹꾹 눌러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국물이 많이 필요 없다.
나. 국물 마련
1. 향료 한 웅큼을 약한불에 20여분간 끓여 라면 하나반 끓일 정도의 분량이 되게
한다. 향료를 하루 전쯤 찬 물에 담궈뒀다가 끓이면 더 좋다. 끓인 후에 향료
건더기는 버리지 말고 차 팩 봉투나 양파 주머니 같은 곳에 담아서 피클을
저장하는 병에 넣어두면 좋다.
2. 국물의 80% 정도의 식초(시중에서 파는 양조식초나 사과식초)와 40% 정도의
설탕을 넣는다. 식초와 설탕의 양을 조금씩 했다가 식성에 따라 더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3. 여기에 반 숟갈 정도의 흰소금을 넣는다. 소금의 양은 앞에서 설명한 야채
절이는 과정과 연계해서 생각하되, 싱거운 상태에서 간을 보며 더하는 것이 좋다.
이제는 국물에 야채를 눌러담은 후 대여섯시간 후에 먹으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설탕, 식초, 소금은 이때 최종 간을 맞추는 게 좋다. 냉장고에 두고 먹으면 몇달도 까딱없다.
피클링스파이스는 한 줌에 해당하는 20g 소포장에 1000원(경동시장) 정도 한다. 피클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1 Kg 짜리를 쓰는 것이 경제적인데, 같은 제품이라도 지역에 따라 15000~30000원으로 값 차가 크다.
양조 식초는 수퍼마켓에서 1.8 L 짜리가 1600원 정도 하는데, 역시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1말들이(7000원 정도)를 사는 게 경제적이다. (마늘, 식초, 다시마 이 세가지를 많이 먹으면 약이 필요없다.)
현재 우리동네에 있는 피자집과 치킨집 중 다섯곳은 필자가 제조한 피클 국물을 공급(?)받고 있다. 수입피클보다 우리 입맛에 맞고 재료비도 흰무김치 값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제공의 답례로 국물 한말을 배합해 줄 때마다 피자나 치킨, 또는 그 집에서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열개의 비디오를 공짜로 빌려보는 조건이 붙는다. 일종의 기술료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년간 수십만원은 버는 셈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만들어 주는 재료값도 만만치 않으니, 그에 대한 보충으로 여기고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이 비법을 우리동네에 와서 가르쳐 주는 몰지각한 분은 없을 것이라 믿고 글을 올린다.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피클 제조에 관한 나름대로의 보고서
무우꽃 |
조회수 : 3,170 |
추천수 : 10
작성일 : 2003-12-30 08:29:00

- [이런글 저런질문] 책은 아니고 ... 200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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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솜사탕
'03.12.30 9:02 AM대단하십니다~~ 저도 피클은 좋아하지만 파는 피클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꼭 님의 레시피대로 따라해 봐야 겠어요. 밑의 순대 만드는 건 따라할 자신 없지만요.. ^^;;
근데, 동네가 어디인지 알아서 실수라도 몰지각한 행동을 안하게 되는거 아닌가요? ^^;;2. 이희숙
'03.12.31 1:12 AM비법을 갈켜줘도 손맛에 따라 틀리니 넘 걱정 안하셔도 되겠네요. 근데 어느동네 사세요?
피클에 간혹 카레가루를 넣은 경우를 봅니다. 혹시 시도해 보셨는지요? 입맛따라 틀리니 저야
나쁘다 좋다란 말은 못하겠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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