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말농장에서 10평짜리 농사를 시작한 건 2003년.
그리고 2016년까지 제 도시농부의 길은 중간에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때려 엎고 밭에 나가기도 싫었던 적은 여러번 있었습니다.
저는 농사 시작하면서부터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14년간 기록을 했네요.
그 기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밭에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중, 힘든 일이 터졌을 때는 더 밭에 가야했습니다.
그래야 숨이 쉬어졌으니까요.
개인적인 일은 물론이지만, 도저히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국가적인 힘든 일이 터졌을 때,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밭은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진정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였습니다.
이번 주는 원래 정말 바쁜 주간이었습니다.
외부 일 두건에다가
그렇게 기다렸던 밭 리모델링 계획까지 잡혀 있어서
속시원할 줄 알았더니만...
속 뒤집히는 기사가 터 지고, 밭에서 하려고 한 원래 잡힌 계획 도 날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안팎으로 심란해지고 말았습니다.
안그래도 부글부글한데 정말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뒤집혔습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싶어서요.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고, 할 수가 없어
몇 개의 글을 접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 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 싶어서...
그러다가 제가 2009년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국가적으로 큰 충격적인 일이 있었지요.
그때 밭에 가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분노와 절망에, 어떻게 해야하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그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일상의 힘"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며... 이번에도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시 '일상의 힘'을 믿어보기로요.
농사 짓기 이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 때려엎고
분노하고 누군가를 욕하고 먹는 것도 챙기지 않고 자포자기로 드러누워있겠지만,
텃밭 농사 14년.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는 밥 하는 것도 사치스럽게 여겨지고
집안청소조차 부질없이 여겼습니다.
일상적인 삶의 일들이 다 무가치하고 초라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태풍이 불어서 다 쓸어가버려도,
부모형제 장례를 치르는 날에도,
나라가 뒤집히는 일이 터져도,
농부는 밭으로, 논으로 가는 발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야, 그 모든 일이 지나고 난 뒤에, 태풍이 잔잔해진 뒤에
사람들이 찾을 먹을 거리를 내어줄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사람들을 먹여 다시 살아가게 해줄 먹을거리를 만들어야하니 말입니다.
저는 농사를지으면서 일상의 힘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제까지 해온 일상의 일은 그대로 해야함을요.
해가 뜨고 해가 다시 지듯이
그 부질없어 보이는 일상들을 그래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태풍이 지난 후에 다시 사람들은 회복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고
다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변하고 바뀌고 요동치는 것은 사람 뿐.
땅은 그대로 있고, 계절도 그대로 흘러가고,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각자 자기의 마음만 제대로 움켜잡고 견딘다면
결국 언젠간 바른 꼴을 보겠지요.
그래서 제 몫의 일은 흔들림 없이 하기로 했습니다.
분노로 내 일상을 망가뜨리지 말고, 내 몫의 일은 흔들림없이 해나가다보면
내 힘이 필요하단 이가 있으면 그 때 여축해둔 내 힘을 보탤 수 있겠죠.
그래서 맛난 밥상도 차리고, 집안 청소도 하고
내년 농사 준비도 하면서 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렵니다.
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겠죠.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날 기회가 있고,
우리의 힘은 일상을 살아가는 속에서 나올테니까요.
내일은 밭에서
땀 좀 흘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