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베르겐에 다녀왔어요.
거긴 칼바람이 불었어요. 7월인데!?
아마 지금은 더 추울 거에요.
제아무리 노르웨이라도 명색이 여름인데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전세계 관광객들이
감기 걸려 유스호스텔 여기 저기서 콜록콜록 하는데
면역력 약한 한국인 아줌마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바로 감기에 걸려 버렸죠.^^
아~ 유행에 민감한 몸 상태란..ㅋㅋ
감기 낫고 컨디션 좋아지면 글 쓰려 했는데..
애 둘 데리고 9시간 운전하시고
기다리는 82님들 위해 글 쓰신 소년공원님께 자극 받고(소년공원님 체력짱~!)
일단 쓰기 시작 합니다.
베르겐 사진은 정리 되는대로 올릴게요.(아직 카메라 안에 있음)
지난 겨울에 겪은 사건 입니다.
때는 이천 십오년 3월 말 어드메.
장소는 오슬로 외곽 산속 가르다네 집 3층 월세집.
날씨는 눈폭풍이 몰아침.
도로 상태, 대략 이랬구요.
집들은 이런 분위기.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계속 내렸어요.
이렇게..
이날 눈이 허벅지까지 내렸던 것 같아요.
봄을 준비하는 3월말에 갑작스러운 눈 소식에
노르웨이 뉴스도 이례적인 날씨라고 보도 했어요.
이미 손도 다친 상태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까지 부러질 수는 없어서,
남편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부탁을 했어요.
퇴근길에 마트 들러 장 봐 달라고.
품목은,
우유, 달걀, 감자, 호박, 무
총 다섯개.
심부름 난이도 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도 무난하게 미션 클리어 할 수 있는 장보기.
남편이 장 봐서 온 봉투를 기쁜 마음으로 열었는데
호박이 없고 오이가 있는 거예요.
응? 이거 오이인데?
남편이 답하기를
'마트에 호박이 없더라고. 오이나 호박이나 같은 거잖아.'
'무어라?
오이와 호박이 같아?
도대체 종속과목강문계 어느 지점에 오이와 호박이 같은데?
그런 식으로 같으면
돼지, 소, 닭은 왜 구분하고
사람까지 같이 생태계 소속인데
어허라둥둥 사이좋게 살아야지 왜 잡아 먹니?'
라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속사포처럼 나오려고 했던 그 때!
제 결심이 생각 났어요.
노르웨이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남편이 그렇게 원하는 현모양처 한 번 되어 보자고.
열심히 현모양처 코스프레 중이었는데
바꿔치기된 오이 따위에 현모양처 자리를 내어 줄 수는 없었어요.
작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어요.
'오이와 호박은 조쿰 다른데..
그래도 이 눈길에 장도 봐 주고 고마워.'
그리고 호박 없이 밥상을 차렸어요.
호박전, 호박 나물, 된장찌게에 호박 넣고..
초록색으로 깔맞춤 완벽하게 계획된 나의 상차림이 있었는데..
호박 부재로 빈곤하게 되어버린 밥상..
이날 이후로 장은 반드시 제가 봅니다.
심관 편하게..^^
우리는 보통 저녁 한끼 밥 해서 먹는데
밥을 넉넉하게 하는 편입니다.
더 먹고 싶은데 밥이 딱 떨어지면 곤란하니..
남은 밥은 냉동해 두었다가
이렇게 전으로 부쳐 먹기도 하고
볶음밥 해먹기도 합니다.
볶음밥은 그때 그때 재료 있는대로 넣어서 볶아 먹는데요.
이렇게 새우 볶음밥을 먹을 때도 있구요.
남편이 아주 좋아했어요.
해산물 사랑하시는 분.
하루는 햄이 있어서 햄과 각종 채소 넣어 볶아서
상 차렸어요.
남편이
물끄러미 보더니
'볶음밥에 햄 넣었어? 나 햄 싫은데. 가공 식품 몸에도 안 좋고 어쩌구 저쩌구...
아놔~!
이 남자가 밥상 투정을 하네? 확 숟가락 뺏어버리려다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몸에 나쁜 햄은 내가 다 먹겠다며 어르고 달래서 앉혔어요.
한 수저 떠 먹으려는데
'달걀후라이 반숙 했어? 나 반숙 싫은데.. 어쩌구 저쩌구...
오늘 이 남자가 투털이 스머프 빙의 했나?
자꾸 싫다고,,
내가 후라이 다시 해서 익혀 줄까 했더니
'됐어' 하고 먹더라구요.
그리고 뭔가 한 마디 더 하려고 하는 순간
저와 눈이 딱 마주쳤어요.
그리고 바로 밥에 코 박고 먹더군요.
제가 이렇게 쳐다봤거든요.
(임산부, 어린이, 노약자 심쿵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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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레이저 나옴.
바로 입에서 불 뿜울 기세..ㅎㅎㅎ
아~! 오해하지 마세요.
평소 우리 남편 주는대로 잘 먹어요.
단지 햄,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 싫어하고 인스턴트 안 좋아해요.
그리고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요.
분명히 내가 차린 밥상인데
저 그릇에 뭐가 담겼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깨끗하게 비웁니다.
거의 사찰음식 먹는 수준 ㅎㅎ
햄, 라면 이런거는 제가 좋아해요. 초딩 입맛이라^^
여기서 이만..
마치면 섭하죠?
문제 하나 나갑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오이일까요 호박일까요? ㅎㅎ
그럼 저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