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어드메 어린이집 교사가 네 살먹은 (만 나이로는 우리집 둘리양과 비슷한 것 같아요, 두 돌 넘고 곧 세 돌 되어가는...) 아이의 식사지도를 한다면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지요? 동영상도 있다던데 저는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의 사과글이며, 같은 어린이집의 다른 학부모의 글이며, 폭력 교사의 신상까지 털려서 인터넷 곳곳에 올라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일일이 다 읽거나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직 어린이집 교사로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또한, 자유게시판에서 보육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많다, 중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교사가 자칫 이성을 잃으면 그렇게 된다, 허술한 처벌이 문제다, 전업주부이면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은 그러지마라, 저 나쁜 교사를 돌로 쳐죽여야한다... 등등의 의견으로 들끓고 있는 것도 모두 이해가 가는 이야기입니다.
자, 자, 일단 진정하고 음식 이야기부터 해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한국 음식 재료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명왕성에 살고 있습니다.
네 시간만 차타고 나가면 없는 것없이 다 갖춘 한인 마트가 여러 개 있는 쌀국이지만, 왕복 여덟시간을 장보러 다녀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방학마다 장보러 한 번 가면 된장 고추장 참기름 같은 양념류를 사다가 구비해놓고, 바쁜 학기 중에는 그럭저럭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국음식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먹고 삽니다.
청경채 (명왕성 인터내셔널 마트에서는 베이비 박쵸이 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를 잘 다듬고 씻어서 살짝 데친 다음 된장, 마늘, 참기름, 깨를 넣고 무쳐서 먹으면 그런대로 한국에서 즐겨 먹던 시래기 지지미나 배추나물과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숙주나물도 미국 마트에도 간간이 나오죠. 씻어서 전자렌지에 잠깐 돌린 후 소금 설탕 식초 파 참기름으로 무치면 어릴 때 먹던 그 반찬과 비슷합니다. 저희 엄마는 숙주나물에 식초를 넣어서 무치곤 하셨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무척 특이하다고들 하시더군요. 그냥 콩나물과 똑같이 무쳐서 먹는 거 아니었냐고도 하시구요.
역시나 인터내셔널 마트에서 연근을 사다가 간장에 조리면 이 또한 조흔 밑반찬이자 도시락 반찬이 됩니다. 그냥 흙묻은 생연근도 파는데, 이렇게 바쁘게 밑반찬을 왕창 만들 때는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안배하느라 손질해서 냉동된 것을 사다가 씁니다. 원래는 인도 요리에 쓰이는 것 같더군요. 다른 인도 식재료와 함께 진열된 것으로 봐서 말이지요.
명왕성에서 맞벌이하며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실미도 육아의 초고수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꼭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데드라인이 내일까지인데, 오늘 하필이면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플 때...
"엄마, 코난군 하루만 좀 봐주세요!" 라든지, "도우미 이모님, 이번 주에는 연장 근무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하고 도움을 청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해오면 전화 한 통으로 배달되는 음식도 없고, 몸살기운이 있어도 남편더러 길건너 죽집에서 전복죽 한 그릇 사오라고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남편은 있는데 죽집이 없기 때문이죠.
"이번에 김치가 맛이 제대로 들었더구나" 하시며 택배로 보내주실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너무나 멀리 살고 계시지요. 두 아이를 임신해서 입덧을 할 때 시어머님의 나물반찬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저희 시어머님은 외며느리라 제사음식을 무척 잘 하시거든요. 참고로, 친정 어머니는 기독교 집안의 두째 며느리라 제사음식은 전혀 못하셔요 :-)
안동지방의 양반들은 제사음식이 먹고 싶어서 헛제삿밥 이라는 음식문화를 창조했다지요?
물고비를 사다가 식용유 두르고 다진 마늘 넉넉히 넣어서 볶아먹으면 명절상이나 제삿상에 올리는 고사리 나물맛을 흉내낼 수 있어요. 누군가 나눠주신 들깨 가루까지 뿌렸더니 보기에도 제법 한국음식같아 보이죠?
넓다란 전기 후라이팬을 꺼내어 각종 전도 부쳐서, 정말로 헛제삿밥을 차려먹어봅니다.
먹는 건 그럭저럭 대충 목구멍만 넘기고 배만 불리면 살 수 있지만, 아이들은...
대충 떼우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지요.
게다가 저는 유아교육 박사가 아닙니까...
전직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교사이기도 하구요...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처럼, 유아교육 박사 교수의 아이들은 엄마가 알뜰살뜰 품에 끼고 키우지 못하고 어린이집에서 키워준다는 아이러니...
큰 아이 코난군은 5개월 부터, 작은 아이 둘리양은 3개월 부터 종일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진 모두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원 첫 날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마가렛 선생님이 계셔서 마음이 놓였어요.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한 직장에 십 수년간 오래도록 계셔주시니, 일하는 엄마에게는 큰 위안이 되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제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협회에서 인증받은 기관이고, 원장 선생님은 저와 함께 지역 유아교육 연합회 일을 같이 하는 터라,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분이거든요.
어떤이는, 그래도 너무 어린 애기를 기관에 보내는 것보다는, 개인 내니를 고용해서 집에서 돌보게 하는 것이 안정적이지 않겠느냐고 권하기도 했어요. 아마, 제가 현직 교사로 일한 적이 없었다면 저도 그 의견에 수긍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어린이집을 선택했습니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들도 많지만 선생님들도 많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아이를 돌보는지를 모두가 잘 알거든요. 게다가, 교사가 순간적인 판단착오나 순간적인 이성을 상실할 위기가 있어도, 옆에 있는 다른 교사가 막아주고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교사들끼리 번갈아 휴식시간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사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잠시 동안의 휴식도 없이 하루종일 말 못하는 아이 하나만을 돌보는 어른이 자칫 마음 잘못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은 어린이집 교사의 폭력보다 더 끔찍할 수 있죠.
물론, 이 모든 것은, 돈보다는 사회에 공헌한다는 마인드를 더욱 중시하는 원장님이 운영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교사와 아동의 비율도 적정선을 넘지 않고, 교사에게 충분한 휴식시간과 복지혜택과 인격적인 존중이 확보되며,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해줄 만큼 비싼 등록금 (이 대목에선 잠시 흑흑... 미국 어린이집 종일반 등록금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답니다.) 등등의 조건이 박자를 잘 맞추었기에 가능했을겝니다.
그리고 '너 얼마나 잘하나 내가 두고보겠어!' 하고 팔짱끼고 도끼눈을 하고 있는 학부모가 아닌, '한 달에 내가 내는 돈이 얼만데 이렇게 밖에 못해?' 하고 따지는 마인드가 아닌, '내가 혹시라도 밉보여서 우리애가 구박당하려나?' 하는 비굴한 자세도 아닌,
'내가 맞벌이로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너네가 잘 되어야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이니, 내가 뭐라도 도울 수 있는 건 꼭 알려줘!' 하는 생각으로, 또한 '교사도 사람이고 엄마인 나도 똑같은 사람이지'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진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도 꼭 필요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폭언 등의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 주어지는 처벌이 매우 엄격하고 그 처벌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하는 제도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제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실습을 나가는데, 실습을 시작하기전에 반드시 신원조회를 받아야 하고, 실습 도중에 혹시라도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행동을 목격한다면 즉시 원장이나 지도교수인 제게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에 서명을 합니다. 그것은 현직 교사들도 마찬가지여서 mandatory reporter (의무 신고자) 의 의무라고 하는데,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아무에게도 신고하지 않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그 아이가 아동학대 받은 것이 뒤늦게 발견되면 신고의 의무를 게을리한 교사와 교생실습생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입니다.
이번 인천 어린이집 사건에서 제가 보기에 가장 아쉬운 점은,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작지만 분명한 전초 사건이 많았을텐데, 그 때에 원장이나 선배 교사가 그것을 바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동조했던 사실 (밥을 잘 안먹는 아이들은 일부러 그 선생님 반으로 보냈다지요? 어휴...) 입니다.
자신의 직업 윤리라는 것에 대해 아예 생각조자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인가봐요.
그런데 그 교사의 그런 행위가 처음이 아니라지요? 벌금 얼마 내고 끝,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도대체 법과 제도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참 속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한 개인의 끔찍한 부도덕 문제로만 파악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어린이집 교사를 양성하는 과정과, 교사들의 너무나 열악한 근무여건, 악덕 원장의 부도덕 경영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세상... 이런 문제를 깨닫고 개선해 나가야지, 단순하게 백 킬로그램도 넘는 년이 어린 애를 쳐서 자빠뜨리다니, 나쁜 년, 천벌 받을 년, 하고 손가락질만 백날 해봐야 곧 얼마 안가 또다른 어린이집의 또다른 폭력교사가 뉴스에 나올 뿐, 이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보육교사 근무여건 개선방안... 이런 말이 뉴스에 나오면 '저거 또 밥그릇 싸움이네' 하고 혀를 차지 말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뉴스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기회가 되면 서명도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글도 좀 남기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 쓰고 보니 뭔소린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막 쏟아져나온 느낌이네요.
그래도 열심히 꾸준히 쓰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둘리양의 플레이 하우스에 많은 관심과 찬사를 보내주신 분들께, 코난군도 트리 하우스 홈 오너 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사진 한 개 더 올리고 이만 물러갑니다.
다음번에는 보다 나은 글을 쓰도록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겠습니다.
(친정 부모님께서 방문하셨을 때네요. 손주와 야구하시는 우리 아빠...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