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생각에 외국생활하는 한국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김치에 얽힌 사연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법하다. 때로는 우리를 웃게도 하는 김치에 얽힌 사연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잠시나마 찡하게 하는 사연들도 제법 많을것 같다. 나에게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1학년때 낯설은 한 학기를 열심히 마치고 겨울 방학 바로 시작할 무렵 엄마가 보내주신 두툼한 상자 꾸러미를 언니와 기대에 차서 열어볼때 기대이상의 이쁜옷들과 멋있는 바바리 그리고 레더 자킷들을 보며 우리는 좋아라 했다. 엄마가 겨울 따뜻하게 보내라며 우리없이 혼자 외롭게 샵핑해서 보내주신 옷들을 붙이신다고 그럴때 나와 언니는 기숙사에서 특별히 밥해먹기 힘드니까 아쉽지만 음식 같은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엄마는 붙이시는편에 조금한 밥솥도 붙이시며 그 안에 쌀조금 그리고 손수 맛있게 제서 바삭바삭 하게 구운 김뭉치와 아주 쪼금 아마도 내 주먹만큼의 김치가 또싸고 또 싸고 여러번 싸여 고이 간직되 김옆에 냄새를 은근히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메모식으로 쓰신 편지에 힘들더라도 매일 매일 말씀 대하며 찬양과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당부와 엄마는 그래도 부치면서 음식도 보내주고 싶어 아주 조금밖에 못 부친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셨다. 그걸 보는 순간 우리는 울컥했다. 정말 얼마만에 맡아보는 한국음식 냄새 같아 군침이 입에 가득 고이며 반갑기도 했지만 엄마의 정성스런 손때가 구석구석 베어 있는것 같아 잠깐동안 주최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찡했었다. 그날밤 먹은 하얀쌀밥에 김과 김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어보았던 음식중 하나로 아직도 소중히 기억된다.
그리고 한번은 언니와 내가 대학 갖 졸업해서 직장생활 할때 조금한 한국교회에서 우리는 주일 학교를 담당하며 한국말도 어린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손수 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열심히 살았던걸로 기억된다. 그때 목사님을 비롯 학부모님들은 자기 아이들을위해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이라며 고맙게도 특별히 더 참 잘해 주셨다. 그러던중 어느날 한 집사님이 저번 구역예배때 내놓은 김치를 맛있게 먹는것 같아 좀 챙겨왔다며 김치가 가득찬 큰 김치병을 건네주셨다. 우린 감사하며 신나 받아왔다. 같은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 문앞에 한 성도님이 김치를 나두고 가신걸 비롯 그렇게 여러분의 집사님들과 성도님들로 부터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많은 김치를 받아 어느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을때 이병 저병 보이는게 김치가 수북히 담긴병들로 장식되어있어 언니와 난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적도 있다. 이 두사연외에도 이렇게 여러편의 김치에 얽힌사연을 난 간직하며 한국사람이니까 이런 특별한 사연도 누려보게 되나보다하며 미소짓게된다.
오늘은 얼마전 나의 언니가 특별히 보내준 김치 사연 이야기를 풀고 싶다. 나에게는 나보다 십분 먼저 태어난 쌍동이 언니가 있다. 세상의 많은 쌍동이들이 서로 잘 지내듯 나와 언니도 세상 어느 쌍동이 부럽지않게 절친한 사이로 서로를 아껴주며 때로는 우애가 두터운 자매로 때로는 아주 사이좋은 베스트 프렌드로 우리는 늘 그렇게 서로 격려하며 아끼며 그때나 지금이나 잘 지낸다. 언니를 통해 알게된 한국 여러 사이트에 글과 사진을 어쩌다 올려 놓으면 조심스레 반가운 마음으로 댓글 달아 주고 남인양 휙 내뺀다. 그런 언니가 웃으며 어느날 언제 부터 너가 내게 언니라고 그랬냐며 언니소리 듣는것 무진장 익숙치도 않고 간질어워 못 봐주겠다며 웃는다. 난 그래도 형부도 가끔씩 우리 아이들 보여 줄려고 내가 올린 글과 사진 보여 준다며 형부보기에 야 자 하면 예의가 아니지 하며 그러는 댁은 왜 꼭 날위해 댓글달때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조심스리 깍듯하게 써놓고 냅빼는건데 하며 난 반문하며 웃었다. 언니도 않 말 않하고 조용히 또 웃는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나중에 서로의 가정이 생겨도 바로 옆집에서 담장 털고 그렇게 언제나 허물없이 살고싶다는 꿈도 같이 꿔 본적도 있다. 그런데 난 내 남편을 만나 미국에 남게 되고 언니는 형부를 서울서 만나 서울로 시집을 갔다. 그리곤 우리는 떨어져 있는 아픔을 한동안은 서로 말은 않해도 많이 느끼며 서로 보고파 외로와 한적도 많다. 어쩌다 한국가서 언니내 집을 들르면 언니 시어머니가 만들어서 꼬박꼬박 부쳐준다는 김치를 난 참 맛있게 먹었었다.
그런데 내가 얼마전 유일하게 사먹는 한군데의 한국마켓 김치가 어쩔땐 맛있는데 어쩔땐 별루라고 하는말을 언니가 안타깝게 듣고 그때 마침 언니 시어머니께서 금방 담궈 보내주신 싱싱한 김치를 나에게 잔뜩 보내주었다. 언니는 되도록이면 신선할때 빨리 받게 할려고 급하게 보내느라 집에 새로사다 놓았던 참치액 밖에는 다른음식은 같이 동봉 못했다며 오히려 미안해 했다.

아닌게 아니라 몇일후 언니가 보내준 김치가 반갑게 도착했다. 난 부랴부랴 뒤뜰에서 신나 콧노래를 부르며 김치를 꺼내어 지금 먹을것 나중 먹을것으로 차곡차곡 잘 나눠 주었다. 김치는 맛나게 잘 익어 있었다.잘 나눠주고 나니 김치국물도 조금한 반찬통으로 거의 한가득은 나왔다. 난 아까워서도 그렇치만 절대 버릴수가 없었다. 남들이 지질이 궁상이라 눈살찌쁘려도 할수없다. 찌개나 비빔용으로도 몇스푼 넣어 주면 얼마나 맛있는데 이 맛있는걸 버려 혼자 생각하며 잘 담아 놓았다.
나는 아들과 며누리 손자 손녀 맛있게 먹으라고 정성스레 보내주신 김치를 내가 낚아챈거 같아 먹을때마다 사장 어른께 늘 미안했지만 혼자 참 맛있게 먹으며 내가 늘 중얼거리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엄청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는걸 아시면 나눠준걸 뿌듯해 하실거라며 나혼자 미안한맘 그렇게라도 위로하며 맛나게 먹어주었다.

하루는 이렇게 언니가 보내준 김치와 치즈를 이용해 김치볼도 만들어 맛나게 먹어 보고

또 하루는 언니의 김치로 '복주머니' 라고 이름까지 부쳐주며 불고기를 곁들여 짭잘한 유부에 쌓아 우리집 식구들을 위해 간단히 만들어 먹어도 보고

또 어느 비오는날은 '비올때는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라는 가사가 생각나 '나도 한번' 하며 언니의 김치로 맛나게 빈대떡도 부쳐서 먹어도 보고

또 어떤날은 찌개에 언니가 보내준 김치와 김치국물을 조금 첨가해 맛나게 아이들과 한끼 해결도 할수있어 좋았고

한번은 두반장과 내가 만든 맛간장 그리고 고추기름을 이용해 매콤하게 만든 고추잡채를 다음날 한번 더 해먹으며 이렇게 김치 프라이드 라이스볼도 만들어 곁들여 먹어도 보고

또 어떤날은 김치찜을 만들어 하염없이 밥 몇공기는 배불리 거뜬이 헤치워도 보고

하나님은 우리를 쌍동이로 만들어 같은날 태어나게 하셨지만 마냥 똑같은줄만 알았던 우리도 조금한것부터 큰것까지 무진장 다른점도 의외로 많은걸 느끼며 난 때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언니는 신김치는 별로 않좋아한다. 근데 난 신김치도 먹는것 괜챦다.
언니는 금방 뭍혀논 겉절이가 샐러드를 먹는것 같이 신선해 좋다며 먹을 때마다 늘 말한다. 난 겉절이 먹기는 하지만 언니처럼 그리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난 딱 알맛게 익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언니는 라면 먹을때 "이왕이면 라면도" 하며 이렇게 그릇에 일일이 담아 이쁘게 맛나게 먹는다. 난 그런 반면에 "우리끼린데, 뭐" 하며 설걷이 하기 귀챦타는 핑계로 냄비채로 솥뚜껑에 라면 올려 후루룩 후루룩 불며 빨리 헤치운다. 그런데 오늘 난 언니를 생각하며 이렇게 나도 그릇에 담아 "이왕이면 라면도" 하며 언니가 보내준 김치와 곁들여 맛나게 먹어주며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내가 모든일을 신속 정확히 해결하는걸 좋아하는 반면에 언니는 시간이 좀 걸리 더라도 섬세하게 잘 매듭짓는걸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어쩔땐 텔레파시가 서로 너무 잘통해 소름끼칠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있고 취향 스타일이 많이 비슷한 반면에도 언니와 난 각자 각자의 주어진 삶이 다른걸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난 우리가 각자의 담장을 허물고 서로 옆에서 같이 살지 못하는것 더이상 그리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담장은 처음 우리 태어났을때 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걸 난 언제부턴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늘 서로가 함께 할수있는 쌍동이 자매를 나에게 주신 하나님께도 난 참 감사드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