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을 전후로 얼마간, 저는 여러가지로 잘 지내지를 못했었어요.
개구장이 큰아들은 갈수록 말은 징그럽게 안들어 먹고 연일 하루 한두개씩은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곤 하는데,
뭘 엎고, 깨먹고, 엄마 안경 다리를 반대로 완전히 꺽어놓아 못쓰게 만들기도 하고...ㅜ.ㅜ...
..그중 제일 큰 사고는 바로 며칠전에 씽크대에서 밀방망이를 꺼내 몰래 휘둘르다 육중한 식탁 유리를 와장창 깨먹은 사건도 있었지요.....ㅡ.ㅡ
그리고는 이번주에는 명절 후유증으로 얻어걸린 감기로 삼모자가 시름시름 앓고 며칠을 보냈답니다.
내 몸 하나 아픈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아이들 치성까지 드느라 스트레스가 머리꼭대기 까지 쌓인 어제,
남편은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들어왔어요.
온통 부시시한 모습으로 남편 들어오는것만 보고 자리라-라기 보다는 애들 재워두고 남편 오기전까지만이라도 잠시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거죠..- 마음먹고 간신히 추스리고 있던 저는,
얼굴이 뻘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 남편 얼굴도 한번 제대로 쳐다봐 줄 여유가 없었답니다.
그저 그 밤중에 라면 하나 끓여달라길래, 참으로 의무감으로 억지로 겨우겨우 만들어 던져놓다시피하고는 말도없이 방에 들어가 누워버렸지요.
뭐랄까...심하게 아프고 지치고 피곤하고..그러면서도 침대위 한 10센티쯤 위 허공에 둥둥 떠있는듯한 불편한 기분으로 , 눈을 질끈 감고..자기연민이랄까, 왠지 처량하고 쓸쓸하고 이렇게 사는것이 억울하고..뭐 이런 저런 헛생각들로 뒤척이며 잠이 들었던것 같은데, 작은아이 울음소리가 알람인지라 순식간에 아침이더군요.
비몽 사몽 작은 아이 우유를 타면서, 아, 이렇게 길고도 험하고 참으로 재미없는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뭐 그렇게 짜증을 벅벅 부리고 있었는데,
경대위 더듬어 안경을 찾으니 그 밑에 뭔가 종이 쪽지가 있어요.
뭔가 해서 보니 복사지에 대충 휘갈려 쓴 남편의 편지..
뭐.. 많이 힘드냐, 미안하다, 사랑한다, 지금 참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뭐 이런 내용의...
그리고 함께 놓여있는 흰 편지 봉투 안에는 돈 십만원.
오전 나절 정신 차리고 전화를 했어요.
-뭐하러 돈은 넣었냐, 나 쓰러갈데도 없는거 알면서..편지만도 충분히 감격했어..
그러니..
-그래서 나 용돈 다 털어 썼으니까 이번달 넉넉히 넣어줘..
-뭐..제살 깍아먹기라고 들어 봤수?? 이게 딱 그런거구먼...ㅡ.ㅡ;
그래도..기분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마치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못 보고 있다가 막 발견한듯이 든든한 기분..^^
돈 십만원..딱 저를 위해서만 쓰라는데 그걸로 뭘할까요??
기분 같아서는 쇠고기 좋은 놈으로 좀 사다가 식구들 포식이나 했음 좋겠건만...그렇게 하면 선물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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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자고... 오후에 간식으로 먹을 레몬쉬폰케이크를 구웠습니다.
18센티틀 하나짜리 반죽인데 미니틀에 나누어 구우니 사고뭉치 큰아들놈 혼자 손에 들고다니며 먹으니 좋습니다.



<계란 3개-흰자, 노른자 분리, 설탕90그람, 밀가루 100그람, 베이킹파우더 1/2작은술, 소금 약간, 레몬제스트 1개 분량, 레몬즙 2큰술+오렌지쥬스2큰술(합쳐서 60미리), 식용유 2와 2/3큰술(40미리)>
만드는 법 다 아시죠? 그냥 간단 설명으로 하자면..
** 노른자+설탕 절반 넣어 휘핑하다가, 레몬즙, 오렌지쥬스, 식용유 섞고, 가루를 채에 내려 섞고,
** 흰자에 나머지 설탕 넣어 단단하게 머랭 내어 섞고,
**180도에서 25분 구웠습니다.
뒤집어서 완전히 식힌다음 틀을 제거하는것은 다 아시죠? ^^
장식으로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려줍니다.

폭신폭신, 참 부드러워요. ^^
이 케익은 생크림 보다는 레몬커드나 레몬소르베(또는 레몬맛 아이스크림)과 아주 잘 어울릴듯 해요.

문득 돌아보니, 작은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집고 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재주가 꼭 하나씩 느는듯..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뭘 먹고 자라는지...엄마의 눈물이냐, 땀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