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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엄마와 닭 모래집 [초간단 닭찜]

| 조회수 : 6,766 | 추천수 : 110
작성일 : 2003-12-27 19:42:34
오늘 저녁, 닭찜을 했어요, 귀차니스트의 닭찜.

강남 한 호텔에서 오후 1시에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었어요. 보통은 축의금 봉투나 비쭉 내밀고 오는데 오늘 결혼식은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결혼식 첨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밥도 먹고, 왔어요.
과년한 딸이 있는 관계로 결혼식이 그리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내가 만약 신부어머니 자리에 앉는다면 펑펑 울지 않을까'
'우리 사위는 이집 신랑처럼 착해보이는 애여야 할텐데..'
'이런 예식 비용은 얼마나 들까'
참 별 생각을 다 했네요.

암튼 그리곤 집에 들어왔는데, 확실히 칭.쉬. 만드느라 기가 빠지긴 빠졌나봐요. 사람이 조금만 많은 곳에 다녀온다든가, 조금만 멀리 운전하고 돌아오면 금방 지쳐버리거든요.
들어와선 알람을 틀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아마도 울리는 알람을 꺼버렸던 모양이더라구요.

허둥지둥 일어나서 일단 토막낸 닭을 깨끗이 씻은 후 압력솥에 담았어요. 미리 양념장에 재워뒀으면 좋으련만 자느라고...
맛간장 대충 붓고(계량이고 뭐고 할 여유도 없었어요) 생강술을 조금 넣고 다진 파 마늘 넣고 무조건 불에 올렸어요.
'생강술이 뭐에요?' '어디서 팔아요?' 하고 물으실 거죠?
생강술은요, 얇게 저민 생강에 청주를 부어둔 것으로 집에서 만들어 써요. 이게 있으면 편해요. 급하게 음식할 때 생강 편 썰지 않아도 되고.

암튼 닭부터 올려놓고 쌀 씻고, 그리고 김치니 밑반찬이니 하는 반찬 들 식탁에 차리기 시작했어요.

압력솥의 추가 마구 흔들릴 때 불을 끄고 강제로 김을 뺀 다음, 닭을 다른 냄비에 옮기고 약한 불에 올려놓고는 압력솥을 닦아서 밥을 올렸죠.
약한 불에서 끓는 닭찜 국물 맛을 보니 그럴싸 한 것 같더라구요. 단맛이 약간 부족하긴 한데 간은 적당한 것 같고...그래서 설탕 조금 더 넣고 참기름과 후추 통깨를 넣어 더 끓였어요.

완성된 닭찜을 그릇에 옮겨담는데 닭 모래집이 눈에 띄더라구요.

아, 닭 모래집!!
제가 닭 모래집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요새는 마트나 닭집에 가면 닭 모래집을 따로 팔기도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닭 한마리에 모래집 한개 뿐이고, 닭모래집은 집안의 어른이나 드시는 걸로 되어있었어요. 옛날에 닭을 잡으면 뱃속에 크고 작은 노른자가 끈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도 나오곤 했는데...

암튼 제가 그걸 좋아하니까, 저희 친정어머니는 닭요리를 하면 절 부엌으로 불러내셨어요.
그리곤 다른 형제들 몰래 제게 닭모래집을 먹이시곤 했어요.
아버지야, 닭모래집을 찾진 않으시지만 가끔 오빠나 남동생이 "닭ㄸ집, 없어요?"하고 찾으면 엄마는 짐짓 정말 모르신다는 듯, "거기 어디 없어? 어디로 갔지?"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 밖에 없는 딸에 대한 진한 애정표현이 아니었나 싶어요.
애 셋을 키우면서 늘 공평했던 엄마였지만 유독 모래집만은 제게 먹이셨던 건, 고명딸에 대한 애정과 기대, 그리고 여자로 살아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 뭐 그런게 아니었나 싶구요.
칭.쉬. 쓰느라고 진이 빠진 것 같다고 보약 좀 지어먹으라고 걱정이신 엄마, 엄마 눈에는 제가 아직도 남자형제들 몰래 부엌에서 닭모래집을 먹고 신나서 겅중겅중 뛰던 그 단발머리 딸로 보이시나봐요.
엄마가 보고 싶네요.
2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limone
    '03.12.27 8:15 PM

    에구....우리 할머니같음 어림도 없는 일이겠구만요. 어린 손녀 앞에두고도 닭다리한번 덥썩 잘라주시는 법이 없던 울 할머니, 으례껀 맛있는 반찬은 무조건 아버지나 막내삼촌 앞으로 밀면서 혹시라도 우리가 집어먹을까 째려보시던...

    역쉬나 대접받은 딸이 크게 되는건지...ㅋㅋ

  • 2. 김지연
    '03.12.27 8:20 PM

    앗! 이등??
    오랫만에 친정에 가면 그릇가득 머슴밥을 퍼주시고 뭐든지 많이~ 많이 ~ 주시는 엄마.
    2절 3절에 이은 잔소리가 귀찮기는 해도 그게 엄마 사랑이지 싶어요.
    전... 엄마 처럼은 못할것 같아요.

  • 3. 김수연
    '03.12.27 8:21 PM

    엄마,kimys,다른 가족들,친구들, 후배들,, 그릇들,,각종 음식재료들.. 선생님의 끊임없는 애정은 어디서 나오나요? 제가 그러지 못하니 제 아이라도 그렇게 만들요량으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흉내내서 되는 일은 아닌듯 싶네요...
    가족간의 그런 추억, 정말 부러워요.

  • 4. 오이마사지
    '03.12.27 8:23 PM

    읽기권한이 없다고 나와서 깜딱놀랬어요..^^
    닭모래집..저 어릴적 징글징글하게 많이도 먹었네요..
    부모님이 시골에서 백숙장사를 한적이 있는데요..

    조그만한것이 닭모래집 먹겠다고 쪼그리고 앉아 칼집넣고..
    연탄물에다 소금쳐서 석쇠에다 구워먹으면 정말 맛있었는데.. ^^
    그뒤론 그 맛있는맛을 먹어본적이 없네요..

    엄마보고 다시 백숙장사 하자고할라봐요..^^*

  • 5. 강은정
    '03.12.27 8:32 PM

    저도 이거 되게 좋아하는데요. 신랑이 별루라서, 해먹어보지를 못하네요.
    엄마가 참기름에..달달 볶아주면, 굉장히 맛있어서..
    좋았었는데요...
    저도 오늘따라 몸이 안좋아서, 하루종일.잠만 자다가,이제 일어나서 샌님의
    글을 읽어보니...엄마생각이 많이 나네요...T.T
    엄마~!큰딸,,이제부터 딸노릇 잘 할께요라구,,말해야겠어요..

  • 6. ellenlee
    '03.12.27 8:47 PM

    선생님 제 기를 받으세요~~얍~~~!!
    저도 엄마 보고싶은데 너무 멀어 볼수가 없어서 가슴이 턱!막히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닭찜 생각에 배는 주책없이 꼬르륵하네요.항상 머리와 배는 따로,,,^^;;

  • 7. peacemaker
    '03.12.27 9:19 PM

    저도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네요...

  • 8. 별짱
    '03.12.27 9:55 PM

    세상에 모든 어머니는 딸에 대한 연민이 있나봐요...
    저희엄마는 저를 낳고 우셨데요..
    또 당신과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여자라서요....
    아들이 아니라 서운하신것보다 힘든여자로 살아야하는게 안타까워서요...
    엄마가 사시던 그때보단 좋은시절이긴하지만요...지금도 걱정하세요

  • 9. 카페라떼
    '03.12.27 10:01 PM

    제 냉동실에는 항상 닭*집이 있어요...
    제가 참 좋아하거든요.. 어릴적에도 엄마가 통닭 사주면
    우리 형제들 둘러앉아 먹다 닭*집 발견하면 엄마 입에 넣어주던 기억이 나네여...
    어릴적에도 맛있는건 알아서 맛있는건 무조건 엄마입에 넣어주던...
    엄마가 저도 보고싶어지네요..

  • 10. 진쥬
    '03.12.27 11:37 PM

    아는 사람중에 고등학교 선생님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자인데 입도 거칠고 성격이 굉장하죠
    유복한 집 외딸에 성격까지 그래서 완전 조폭수준이예요.
    가르치는 아이들도 학교 특성상 역시 거칠어요
    그래서 그사람의 여러 에피소드를 들으면
    그엽기 선생님에 엽기 학생들이라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곤 했어요.
    그런데 그사람이 딸을 하나 낳았거든요.
    이제 겨우 백일 좀 지났는데
    그사람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아이들이 다 너무 귀하다고
    그 거칠고 말썽꾼인 다 자란 여드름쟁이 골치덩어리가 다 귀하고 이뻐서
    자꾸 등을 두드려주고 잘못해도 아이고 아이고하며 쓰다듬어주고 싶데요.
    엄마가 된다는게 사람을 그렇게 변하게해주네요.
    저두 이제 몇달만 있으면 엄마가되요
    아까 진미령이 나와서
    내나이 오십~딸이 시집을간다네~친정엄마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셧을가~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 프로그램..전혀 울 분위기가 아니어서 남편 보기도 챙피했어요.
    오늘 선생님의 글이 찐하게...다가와요.

  • 11. Fermata
    '03.12.27 11:44 PM

    선생님~ 저는 24살이에요.
    주변 친구들은 아주 간혹 결혼하고 선배들 결혼식을 주로 참석하게되죠.

    이십대초반에는 잘 몰랐는데,
    요즘은 결혼식에서 신부부모님께 절하는 장면만 보노라면
    그냥 눈물이 죽죽 흘러요.
    신부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부모님께 절 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 슬픈지..

    저 결혼하고 엄마 아빠 적적해 하실거 생각하면
    괜히 벌써부터 맘이 짠해요.
    선생님 글 보면서
    울 엄마 마음일까 싶어 또 코끝이 찡하네요..

  • 12. 꾸득꾸득
    '03.12.28 12:43 AM

    우리 아부지는 닭다리는 무조건 저 주셨죠...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자랐는데,,갑자기 그생각이 나네요..--

  • 13. 복사꽃
    '03.12.28 9:04 AM

    닭모래집하니까, 생각나는데...저어릴적 울엄니 제사음식할때
    고사리나물에 꼭 넣었던것이 바로 닭모래집입니다.
    나물먹을때 이것만 골라먹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오늘따라 21년전에 돌아가신 엄니 생각이 많이 나네요. -.-

  • 14. 카푸치노
    '03.12.28 1:27 PM

    닭찜 맛있겠네요..매콤하게 하셨겠죠??

    결혼식이요, 선생님도 몇년 후면 치르시겠죠..
    기쁘실거예요..

  • 15. 치즈
    '03.12.28 4:26 PM

    아이고...이제야 대왕마마 보내고 들어왔네요.
    다음주에 오면 닭x집 해줄래요..

    맏 딸로 어찌 그리 엄마랑 싸웠는 지 모르겠어요.
    상냥한 딸은 아니었던거 같아요.
    정말 시집와서 살아봐야 엄마 심정 안다고 한게 맞나봐요.
    어딜가든 맛있는거 봐도 엄마한테 택배로 바로 주문해서 부치고...
    이제야 철 들은 것 만해도 다행이지 싶어요
    내가 고집부리고 할 때 얼마나 엄마가 맘 상했을지....

    아직도 김장김치까지 받아먹는 딸이지만...
    선생님 보면 후회되고 잘 해야겠다..난 아직도 멀었다 하고 있습니다.

  • 16. 때찌때찌
    '03.12.28 8:17 PM

    여동생 도시락반찬에 자주등장하던 것이예요. 어찌나 좋아하던지..
    동생이 맛있다고 하니 제 도시락에도 넣어주셨는데..저 그거 고스란히 가져와선.
    못되게 대들었던 생각이 나네요....

  • 17. 훈이민이
    '03.12.28 8:50 PM

    엄마!!!
    정말 불러보고픈 이름이죠.
    십년도 더 지나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문득 제 얼굴을 보면서
    엄마를 느끼고
    내 행동을 보면서 엄마를 느끼고....

    선생님!
    아직도 부를 엄마가 계시다는게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요즘은 고운 스카프, 옷 보면
    너무너무 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엄마 오랜친구분의 딸 결혼식에 갔다왔는데
    다들 엄마 말씀들 하시니 더욱 짠해지네요....

  • 18. 무우꽃
    '03.12.31 12:16 PM

    "닭똥집(모래집이라 안하고 똥집이라 합니다.)하고 민어부래는 맏상주 차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편도 아니고, 나중에 자기의 노후를 책임질 맏아들에게 줬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귀하고(요새는 닭똥집이 흔하지만) 맛있었다는 뜻도 되구요.
    어머님께서 무척 아끼셨던가봐요.

  • 19. candy
    '03.12.31 5:19 PM

    혜경님.글읽고,눈물납니다.낼 엄마만나러가야지...

  • 20. 지혀니
    '04.1.2 1:09 PM

    여자로 살아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 아 가슴이 정말 찡합니다.
    저희엄만 저 낳고 울었답니다.
    이유인즉슨!~~ 아파서...(헉) 이아이도 나중에 커서 아기낳느라 일케 아파야 할거 아냐? 하고,,, ㅋㅋ
    이것도~ 여자로 살아내야하는 안쓰어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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