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맘같아서는 이름을 '상어'라 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걔의 이름은 대구였습니다. 생 대 구.
마트의 생선코너에 가면 보실 수 있죠? 커다란 대구를 토막낸 후 100g 단위로 파는 매운탕용 대구를...
그, 절단나기 전의 대구, 상상하실 수 있죠?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얘를 어찌 절단낼까 고민에 휩싸여, 일부러 다른 일부터 했습니다.
세탁기 돌리고,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옷들도 제대로 걸고, 재활용쓰레기 내다버리고....
밍기적거리고, 회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 무시무시한 칼(걔 원래 이름이 막칼이라나요...)과 젤 잘드는 가위, 그리고 거의 업소용에 가까운 커다란 도마를 꺼내 전열을 가다듬은 후 김치냉장고 안에서 상어, 아니 대구를 꺼냈습니다.
우와, 입을 보니 이빨이 장난이 아니고...오 요리의 길은 이리도 험난하단 말인가!!
이 상어, 아니 이 대구는 뭘 먹었길래 배는 그리 부른 지...
일단 배에 나있는 구멍(이거 이름이 뭐죠?)에 가위끝을 넣고 살살 배를 잘라나갔습니다.
그리고 배를 벌리니...
앗, 그 맛있는 곤이가 한바구니 쏟아지네요.
지난 주 '맛 대 맛' 보니까 명태 배를 가른 후 쓸개를 빼놓고는 모두 먹는 것이며 쓸개가 터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쓸개만 꺼내 버리고, 내장은 모두 씻어서 건졌어요.
내장을 빼내니 머리가 ⅓은 되는 것 같아요.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하는데 칼(그것도 2자루)과 가위, 그리고 맨손까지 총동원해서 천신만고끝에 분리하고 나니...혼자 맨손으로 소 한마리 잡은 기분마저 드네요.
그리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머리에서 아가미를 떼어냈어요.
대구아가미에 소금을 뿌려 아가미젓을 담근 후 설이 지난 후 깍두기 담아먹으면 맛있다는 시어머니 말씀때문에요.
그리곤 기를 쓰고 머리를 세 조각 내고, 다시 몸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하고나니, 제가 엄청난 일을 한 기분이 들더군요.

일단 오늘 저녁은 대구 머리와 꼬리쪽 살 한토막, 그리고 곤이의 ⅓정도를 넣고 지리를 끓였어요.
전 원래 지리는 즐기지 않는 편인데, 워낙 재료가 싱싱하니 지리가 좋을 것 같더라구요.
멸치국물 내고, 그 국물에 대구머리와 꼬리토막, 곤이,무 콩나물을 넣고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하고 파 마늘 넣어 다시 끓이다가 맨 마지막에 미나리를 넣고 살짝 끓여서 상에 올렸어요.
곤이를 너무 일찍 넣은 탓인지 곤이가 죄 풀어져버렸는데...그런데...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평소같으면 두끼 먹고도 남을 분량이었는데, 몽땅 먹었어요.
어머니도 잘 잡숫고, kimys도 "일식집 지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네"라며 연신 수저를 가져가고,
심지어 지리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까지, 밥은 평소의 반(코렐의 작은 공기의 ¼) 정도만 먹고, 지리를 국그릇으로 두그릇 가득 먹었어요.
먹는 동안에도 속이 훈훈하게 풀어지는 느낌...
절단의 여왕은, 오늘 대구 절단의 고통도 잊은채, 부른 배를 두드리며 행복한 밤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요. 쿄쿄쿄...
p.s.
사진의 바닥에 깔린 건 나무 매트입니다. 개당 9천원짜리...바로 그 검은 봉다리 속의... 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