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게 팝니다'라는 프래카드를 건 그 트럭안에는 영덕게가 잔뜩 실려있었읍니다.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라, '아 저거 몇 마리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겠구나' 싶어서 식구수 대로 사들고 들어갔어요.
"오늘 메뉴는 영덕 대게 랍니다, 홍홍홍"
하면서 식구들을 식탁으로 불러 앉히고 영덕게를 턱 내놓았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어쩜 그렇게 살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요?
그 뒤로 영덕게 철이 되어도, 먹으려 애쓰지도 않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오늘 어부 현종님이 부쳐주신 영덕게가 도착했습니다.
스티로폼 박스에 들어있는 삶은 게를 보니, 우째 젤 먼저 친정부모님이 생각나는지...
요새 바쁘다는 핑계로 1주일에 1번도 제대로 전화하지 않은 이 불효녀...
김장 후 아직 엄마 얼굴 못봤거든요.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엄마랑 아버지 꼭 드시게 하고 싶은데, 들고 뛰어갈 수도 없고, 궁리끝에 아직 퇴근 전인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다녀가라 했어요. 아파트 현관 앞에 차대놓고 기다리는 동생 편에게 보내고 나니, 좀 맘이 편해지네요.

친정에 보내고 나서야 맘이 안정돼, 어머니 드실 게를 손질했어요.
저랑 kimys야, 쭉 잡아 뜯어 젓가락을 넣어 쑤셔서 살을 꺼내 먹어도 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드리면 불편할 것 같아, 다리의 마디마디 마다 가위집으로 내서 젓가락으로 쉽게 꺼내드실 수 있게 했어요.
아주 맛있게 잘 먹었죠. 다리의 작은 마디까지 살이 들어있는데, 옛날에 트럭행상이 팔았던 그 게는 우째 그렇게 살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오랫만에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나니, 어제 '입맛이 없네', '먹는데 뜻이 없네'하고 쓴 글이 부끄러워지네요.